Polska Partia Socjalistyczna (PPS) · 1892–1948

폴란드 사회당

Polish Socialist Party

1892년 11월 파리에서 결성된 폴란드의 사회주의 정당. 사회주의와 폴란드 독립을 함께 내세웠고, 유제프 피우수트스키가 당원이자 한때 지도자였다. 제2 폴란드 공화국의 주요 정당이었으며, 1948년 12월 폴란드 노동자당과 합당해 폴란드 통일노동자당이 되었다.

상세

폴란드 사회당은 1892년 11월 17~23일 파리에서 열린 창립 대회에서 해외폴란드사회주의자동맹이라는 이름으로 결성되었다. 이 대회에서 채택된 파리 강령은 프롤레타리아의 권력 장악과 독립된 민주공화국을 목표로 내걸고, 보통·직접·비밀 선거, 성별·민족·종교와 무관한 시민 평등, 언론·집회의 자유, 누진세, 8시간 노동제, 최저임금, 남녀 동일임금, 14세 미만 아동노동 금지 등을 요구했다. 1893년 독립 노선에 반대한 국제주의자들이 갈라져 나가 폴란드왕국 사회민주당(뒤의 폴란드왕국·리투아니아 사회민주당)을 만들었다. 당은 러시아령 폴란드에서 지하 조직으로 활동했고, 1894년부터 기관지 「로보트니크」를 펴냈다.

영어 출처에 따르면 1905년 혁명으로 당원은 수백 명에서 약 6만 명으로 늘었다. 혁명기에 독자적 무장투쟁을 주장한 피우수트스키의 「노장파」와 러시아 혁명 대중과의 협력을 기대한 「청년파」가 맞섰고, 노장파가 장악한 전투조직은 1905–1907년 수백 건의 무장 행동을 벌였다. 1906년 당은 혁명분파와 사회당-좌파로 갈라졌다. 혁명분파는 1909년 원래 당명을 되찾았고, 좌파는 1918년 폴란드왕국·리투아니아 사회민주당과 합쳐 폴란드 공산당의 모체가 되었다.

1918년 11월 사회당은 이그나치 다신스키가 이끈 첫 폴란드 정부인 임시인민정부의 중심이 되었고, 뒤이은 옝제이 모라체프스키 정부는 8시간 노동제를 법령으로 도입했다. 소비에트-폴란드 전쟁 때는 국민방위정부에 참여해 바르샤바 방위 노동자 부대를 조직했다. 당은 1926년 피우수트스키의 5월 쿠데타를 처음에는 지지했으나 1927년 5월 야당으로 돌아섰고, 1929년부터 중도좌파 야당연합의 최대 세력이 되었다. 1930년 의회 해산 뒤 여러 지도자가 체포되어 브레스트 재판에 회부되었고, 당은 1935년과 1938년 선거를 보이콧했다. 당은 1923–1940년 노동사회주의인터내셔널 회원이었다.

2차 세계대전 중 당은 「자유·평등·독립」이라는 이름의 지하 조직으로 폴란드 지하국가에 참여했고, 그 무장 부대는 국내군에 편입되어 바르샤바 봉기에 가담했다. 한편 폴란드 노동자당과 가까운 활동가들은 에드바르트 오수프카모라프스키와 유제프 치란키에비치를 앞세워 이른바 「루블린」 사회당을 세웠고, 이 당은 1945–1948년 정부에 참여해 총리를 냈다. 공산당은 사회당 안의 분열을 이용해 오수프카모라프스키를 물러나게 하고 치란키에비치를 총리로 세웠다. 폴란드어 출처에 따르면 당원 50만 명을 거느린 국내 사회당은 1948년 12월 통합 대회에서 형식상 폴란드 노동자당과 합당했으나 실제로는 흡수되어 폴란드 통일노동자당이 되었다.

합당에 반대한 세력은 망명지에서 사회당을 이어갔고, 망명 정부의 여러 내각에 참여했다. 1987년 얀 유제프 립스키 등이 국내에서 같은 이름의 당을 재건했으며, 폴란드어 출처에 따르면 1990년 국내의 여러 사회당 계열 조직이 망명 사회당과 합쳤다.

소속 인물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pl.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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