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배외주의
Social Chauvinism
제1차 세계대전에서 자기 나라의 전쟁을 「조국 방위」로 지지한 사회주의자들의 입장을 가리키는 레닌의 비판 용어. 「말로는 사회주의, 실제로는 배외주의」라는 뜻으로, 전쟁 공채 찬성, 전시 계급투쟁 중지(성내 평화), 부르주아 내각 참여를 묶어 부른다. 레닌은 이를 「완성된 기회주의」로 보고, 그 경제적 기반을 제국주의 초과이윤의 부스러기를 나누어 받는 노동귀족에서 찾았다. 같은 뜻으로 「사회애국주의」라는 말도 함께 썼다.
상세
레닌의 정의
1914년 8월 독일 사회민주당과 프랑스 사회당을 비롯한 교전국 사회주의 정당 대부분이 자기 정부의 전쟁을 지지했다. 슈투트가르트(1907), 코펜하겐(1910), 바젤(1912) 대회에서 전쟁에 맞서기로 한 결의는 지켜지지 않았고, 제2인터내셔널은 무너졌다. 레닌은 이렇게 돌아선 사회주의자들을 「사회배외주의자」라 불렀다. 이 말은 1914년 「죽은 배외주의와 살아 있는 사회주의」에서 처음 쓰였다.
1915년 『사회주의와 전쟁』의 정의는 이렇다. 사회배외주의는 이번 전쟁에서 「조국 방위」라는 생각을 옹호하는 것이고, 이 생각은 논리적으로 전시 계급투쟁의 포기와 전쟁 공채 찬성으로 이어진다. 사회배외주의자들은 외국의 억압에 맞선 방위가 아니라 열강이 식민지를 약탈하고 다른 민족을 억압할 「권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레닌은 어느 한쪽 교전국 정부를 옹호하는 사람뿐 아니라, 카우츠키처럼 모든 교전국의 사회주의자가 똑같이 「조국을 방위할」 권리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이 범주에 넣었다.
기회주의, 노동귀족과의 관계
레닌은 사회배외주의를 「완성된 기회주의」라 불렀다. 전쟁이 기회주의를 사회배외주의로 바꾸고, 기회주의자와 부르주아지 사이의 비밀 동맹을 공개 동맹으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둘의 경제적 기반은 같다. 자기 나라 부르주아지가 다른 민족을 약탈해 얻는 이윤의 부스러기를 받는 특권 노동자층과 소부르주아지의 이익이다. 이념적 내용도 같아서, 계급투쟁 대신 계급협조, 혁명적 투쟁 방법의 포기, 정부의 곤경을 혁명에 이용하는 대신 정부를 돕는 태도로 나타난다.
레닌이 꼽은 대표적 사회배외주의자는 러시아의 플레하노프, 독일의 렌슈와 다비트, 프랑스의 게드, 영국의 하인드먼, 벨기에의 반데르벨데였다. 1915년 치머발트 회의에서도 독일·프랑스·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 지도부의 다수와 영국의 하인드먼, 페이비언, 러시아의 플레하노프 등이 「사회애국주의자」로 지목되었다.
사회애국주의, 그 뒤의 쓰임
「사회애국주의」(social-patriotism)는 같은 대상을 가리키는 다른 이름으로 쓰였다. 레닌 자신도 두 말을 섞어 썼고, 1920년 코민테른 제2차 대회가 채택한 「가입 21개 조건」 제6조는 가입하려는 당에게 「공공연한 사회애국주의」뿐 아니라 사회평화주의의 위선도 폭로하라고 요구했다. 레닌은 사회배외주의와 결별하고 전쟁을 내란으로 바꾸자는 노선을 내세웠고, 이것이 혁명적 패전주의와 제3인터내셔널 창설로 이어졌다. 소련 정치 문헌은 뒤에도 식민주의와 군비 증강을 지지하는 서방 좌파를 이 말로 불렀고, 1920년대 말에는 사회민주주의를 「사회파시즘」이라 부르는 데까지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