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로토프의 워싱턴 회담 기록 두 건
인물뱌체슬라프 몰로토프,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조지 C. 마셜 사건제2전선과 노르망디 상륙
백악관 회의 비망록 (발췌) — 1942년 5월 30일 토요일 오전 11시
배석: 대통령, 몰로토프, 킹 제독, 마셜 장군, 홉킨스, 파블로프와 크로스.
대통령과 몰로토프의 짧은 단독 회담 뒤 오전 11시에 대화가 재개되었다. 대통령이 킹 제독에게 태평양에서 특별한 소식이 있는지 물었다. 제독은 솔로몬 제도에 대한 작전을 두고 맥아더 장군과 니미츠 제독 사이에 잠시 이견이 있었던 것 말고는 중요한 일이 없다고 답했다. 킹 제독은 니미츠 제독이 영구 점령 같은 것이 아니라 시설 파괴라는 특정 계획을 염두에 두고 있었으므로 이 이견은 오해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았다.
전체 토의를 열면서 대통령은 킹 제독과 마셜 장군에게, 먼저 몰로토프 씨가 제기한 문제들을 알려 주고 싶고, 그다음 몰로토프 씨가 직접 상황을 상세히 설명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말에 따르면, 몰로토프 씨는 런던에서 영국 당국과 서유럽의 제2(침공)전선 문제를 논의하고 막 도착했다. 정중한 대접을 받았지만 영국으로부터 아직 어떤 확정적인 약속도 얻지 못했다. 러시아 전선에서 독일군이 항공기와 기계화 장비에서 상황을 위태롭게 만들 만큼 우세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소련은 영미 연합이 대륙에 충분한 전투 병력을 상륙시켜 소련 전선에서 독일군 40개 사단을 돌려세우기를 바라고 있었다. 대통령은 상황의 어려움을 이해하며 전망을 심각하게 본다고, 이 원조의 규모가 당장은 불확실하더라도 힘닿는 데까지 소련을 돕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항구적 성공의 전망이 특별히 밝지 않더라도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문제였다. 우리의 어려움 대부분은 해상 수송의 영역에 있으며, 이와 관련해 호송선단 하나를 무르만스크까지 통과시키는 일이 이미 하나의 대규모 해군 작전이라는 점만 말해 두겠다고 했다. 대통령은 이어 몰로토프 씨가 편한 만큼 상세히 이 주제를 다루어 달라고 청했다.
이에 몰로토프 씨는 제2전선 문제가 군사적이자 정치적인 문제이지만 무엇보다 정치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1942년의 상황과 1943년의 상황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었다. 1942년의 히틀러는 몇몇 작은 나라를 빼면 전 유럽의 주인이었다. 그는 모두의 주적이었다. 물론 간절히 바라는 대로 러시아가 1942년 내내 버티며 싸울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림의 어두운 면도 보는 것이 마땅했다. 대륙 지배를 기반으로 히틀러가 병력과 물자의 증원을 쏟아부으면 붉은 군대가 나치를 막아 내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런 사태는 우리가 직면해야 할 심각한 상황을 낳을 것이었다. 소련 전선은 부차적인 것이 되고 붉은 군대는 약해질 것이며, 히틀러는 더 많은 병력만이 아니라 우크라이나의 식량과 원자재, 캅카스의 유전까지 손에 넣을 것이므로 그만큼 강해질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는 모두에게 전망이 훨씬 나빠질 것이며, 그런 사태가 가능성 밖에 있다고 꾸미지는 않겠다고 했다. 전쟁은 그만큼 더 힘들고 길어질 것이었다. 1942년의 새 전선의 가치는 히틀러가 더 유리해질 전망에 달려 있으므로, 그런 전선의 수립을 미루어서는 안 되었다. 문제 전체의 결정적 요소는 연합국에게 언제가 더 유리한가, 1942년인가 1943년인가라는 물음에 있었다.
부연하여 몰로토프 씨는 소련 전선의 병력이 크며, 객관적으로 말해 병력, 항공, 기계화 장비의 양적 균형은 히틀러 쪽으로 약간 기울어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러시아는 버틸 수 있다고 상당히 확신하고 있었다. 이것이 가장 낙관적인 전망이었고, 소련의 사기는 아직 꺾이지 않았다. 그러나 주된 위험은 히틀러가 소련에 강력한 분쇄 타격을 시도할 개연성에 있었다. 그때 영국과 미국이 동맹국으로서 새 전선을 만들어 소련 전선에서 독일군 40개 사단을 돌려세운다면, 힘의 비율이 크게 달라져 소련은 올해 안에 히틀러를 꺾거나 그의 최종 패배를 의문의 여지 없이 확실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었다.
그래서 몰로토프 씨는 이 질문을 단도직입으로 던졌다. 솔직히 말해 명백히 이류 부대일 독일군 40개 사단을 돌려세울 만한 공세 행동을 우리가 감행할 수 있는가? 답이 긍정이라면 전쟁은 1942년에 결판날 것이었다. 부정이라면 소련은 최선을 다해 홀로 싸울 것이고, 누구도 그 이상을 그들에게 기대하지 못할 것이었다. 몰로토프 씨는 런던에서 어떤 확정적인 답도 받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처칠 씨는 워싱턴에서 귀국하는 길에 런던을 다시 거쳐 가라고 제안했고, 두 번째 방문에서 더 구체적인 답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몰로토프 씨는 제2전선이 만들어지면 행동의 주된 부담을 영국이 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주요 전략의 문제에서 미국이 하는 역할과 이 나라가 행사하는 영향력도 알고 있었다. 올여름 제2전선 행동에 따르는 위험을 조금도 가볍게 여기지 않으면서, 몰로토프 씨는 자기 정부가 제2전선 문제에 대해 우리가 어떤 입장인지, 우리가 제2전선을 세울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솔직한 말로 알고 싶어 한다고 선언했다. 그는 곧은 답을 요청했다.
몰로토프 씨는 어려움이 1943년이라고 더 적지는 않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러시아가 아직 견고한 전선을 유지하는 지금이 실제로 성공의 가능성이 더 컸다. 「결정을 미루면」 그는 말했다. 「결국 전쟁의 주된 부담을 당신들이 지게 될 것이고, 히틀러가 대륙의 확고부동한 주인이 되면 내년은 틀림없이 올해보다 힘들 것입니다.」
대통령은 이어 마셜 장군에게, 우리가 제2전선을 준비하고 있다고 스탈린 씨에게 말할 수 있을 만큼 사정이 분명한지 물었다. 「그렇습니다」라고 장군이 답했다. 대통령은 이에 몰로토프 씨에게, 올해 제2전선의 형성을 기대한다고 스탈린 씨에게 알릴 권한을 주었다.
……
…대통령은 무르만스크로 가는 호송선단 하나하나가, 잠복한 독일 주력함들(티르피츠, 샤른호르스트, 그나이제나우, 프린츠 오이겐)만이 아니라 적 잠수함과 항공기에 대한 방어까지 제공해야 하는 탓에 입체적인 해전이 되었다고 말했다. 킹 제독은 상황에 대한 대통령의 평가에 동의했다. 나르비크와 트론헤임의 독일 중량함들과 북부 노르웨이의 독일 항공기지 때문에 호송선단을 무르만스크와 아르한겔스크에 들여보내는 일은 커다란 문제였다. 독일 정찰기들은 아이슬란드에서 무르만스크까지 우리 호송선단을 미행했고, 선단이 접근하면 잠수함과 수상함 양쪽의 공격을 부르곤 했다. 이 복잡한 상황은 또한 호송로 가까이 배치된 독일 중량함들의 공격에 대비해 영국 본국함대의 대병력이 바다에 머물러 있게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미국 해군은 영국이 호송 전력을 필요한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그런 중량함들로 영국 함대를 증강해야 했다. 현재 우리는 두 호송선단을 동시에 반대 방향으로 운항하고 있었다. 곧 하나가 무르만스크를 떠날 때 다른 하나가 아이슬란드를 떠나, 필요한 엄호를 한 번의 작전으로 제공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킹 제독은 소련 공군이 호송선단 원조를 위해, 특히 나르비크와 키르케네스의 독일 항공·잠수함 기지 공습으로 추가 노력을 해 준다면 도움이 되겠다고 덧붙이고, 군수품이 북부 러시아에 안전하게 도착하는 일이 미국과 영국에 갖는 중요성에 비추어 그런 추가 협력은 정당하다고 말했다. 제독은 극지 얼음이 남쪽으로 흘러내려 호송선단의 이동 범위를 제한하는 것도 상황을 명백히 복잡하게 만든다고 이어 말했다.…
……
대통령은 또한 전투기를 알래스카에서 시베리아로, 그리고 시베리아를 가로질러 서쪽으로 공수하여 소련에 인도하는 방안의 타당성을 언급했다. 그러나 몰로토프 씨는 이 방법이 소련 극동군에 대한 보급에는 적합하겠지만, 거리가 멀고 연료 저장소 마련이 어려워 서부 전선으로의 항공기 인도에는 그 실효성과 실행 가능성이 의심스럽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대화는 점심을 위해 중단되었다.
백악관 회의 비망록 — 1942년 6월 1일 월요일 오전 10시 30분
배석: 대통령, 몰로토프, 리트비노프, 홉킨스, 파블로프와 크로스.
대통령은 워싱턴의 언론인들이 몰로토프 씨의 방문을 알면서도 일절 언급하지 않는 점잖음을 보였다는 말로 대화를 열었다. 그는 몰로토프 씨가 모스크바에 무사히 돌아간 뒤 소련 정부가 마이스키와 리트비노프 두 사람에게 동시에 도착을 알리고, 런던과 워싱턴에서 방문 발표가 동시에 나갈 시각을 정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몰로토프 씨는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국무부 비망록들에 기초하여 대통령은 이어, 주로 리트비노프 씨가 유념할 몇 가지를 말하겠다고 했다. 대통령의 말에 따르면 핀란드에서, 그 나라의 대표성 있는 집단들이 소련 정부와 강화하기를 바란다는 보고가 우리에게 들어와 있었다. 그러나 모스크바나 워싱턴에서 구체적인 무엇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그들은 핀란드 여론에 강화의 가능성을 보여 줄 힘을 모을 수 없었다. 이 집단들은 가능한 강화의 기초를 알아봐 달라고 미국에 요청했으며, 소련 정부가 원한다면 미국 정부는 이 목적을 위해 주선을 제공할 것이었다.
월요일 아침 대화 내내 몰로토프 씨는 이전 회견들보다 훨씬 무뚝뚝하고 단정적이었는데, 아마도 리트비노프 씨 앞에서 거물 행세를 하려는 목적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이 사안에서 그는 곧바로 간결하고 다그치는 어조가 되었다. 「알고 싶습니다」 그가 물었다. 「그 핀란드인들은 공식적인 사람들입니까?」 「아니오」 대통령이 답했다. 「여론의 지도자 몇 사람일 뿐 핀란드 정부는 아닙니다.」 「그들이 강화를 원합니까?」 몰로토프 씨가 물었다. 대통령은 그렇다고 답했다. 「그들이 염두에 둔 특별한 조건이 있습니까?」 몰로토프 씨가 물었다. 「없습니다」 대통령이 말했다. 「강화가 체결될 기초에 관해 아무 희망도 표명하지 않는다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대통령이 답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핀란드의 안전이 지켜지는 강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핀란드 인민에게 보여 주는 일입니다.」 몰로토프 씨는 이어 그 집단들이 핀란드를 대표할 수 있는지 물었다. 대통령은 그런 대표성 있는 민간 집단이 여럿 존재한다는 진술 이상의 정보는 없다고 답했다. 몰로토프 씨는 이 문제를 스탈린 씨와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다음으로 워싱턴과 쿠이비셰프 사이의 우편 연락과 공무 여행이 느리고 어렵다고 말했다. 우리는 바스라까지 항공편을 운항하고 있으며, 소련이 테헤란까지 연결 항공기를, 이를테면 주 1회 내려보낸다면 그 노선을 테헤란까지 연장할 용의가 있었다. 몰로토프 씨는 주저 없이, 소련 정부가 쿠이비셰프-테헤란 노선을 개설하되 처음에는 2주에 1회로 하겠다고 답했다. 그는 리트비노프 씨에게 세부 준비를 맡으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은 이어 실질적으로 같은 목적에서, 워싱턴에서 놈까지, 그리고 시베리아 횡단철도 동쪽 끝의 적당한 지점, 이를테면 페트로파블롭스크까지 잇는 민간 항공 노선을 조직하고 싶다고 말했다. 미국 항공기가 페트로파블롭스크로 넘어가든 소련이 자국 항공기를 놈으로 보내든 상관없다고 대통령은 말했다. 그는 또한 놈에서 시베리아로 군용기를 나르는 민간 수송 노선을 조직하는 문제도 제기했다. 스탠들리 제독이 이미 이 주제를 스탈린 씨에게 말했고, 스탈린 씨는 검토하겠다고 답한 바 있었다. 몰로토프 씨는 두 제안 모두 검토 중이지만 어떤 결정이 내려졌는지는 아직 모른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몰로토프 씨가 스탈린 씨와 한 가지 문제를 더 다루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전후 처리에는 두 종류가 있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첫째는 연합국 사이의 처리이고, 둘째는 더 안정된 형태의 평화를 보장하기 위한 다른 나라들의 재건에 관한 조정이었다. 대통령은 오랜 경험에 기초한 새로운 생각이 있다고 이었다. 그는 전시 차관에 이자를 요구하는 대신, 모든 연합국이 원금만을 장기 상환하는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몰로토프 씨가 아무 약속 없이 이 점을 검토하기 위해 스탈린 씨와 논의해 주기를 바랐다. 몰로토프 씨는 그러겠다고 했다. 대통령은 그런 조정이 영국, 소련, 미국의 일을 쉽게 하고 다른 나라들에도 도움이 되리라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홉킨스 씨가 대통령에게 국제 신탁 아래 특별 전후 기금을 설치하는 구상을 논의할 뜻이 있는지 물었다. 이 질문은 몰로토프 씨에게 통역되지 않았고 따라서 토의에 오르지 않았다.)
대통령의 앞선 제안에 대해 몰로토프 씨는 스탈린 씨가 관심을 가지리라 생각한다고 말하고, 제안을 주의 깊게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그와 스탈린 씨는 이런 제안들의 발의에서 미국이 하는 역할을 깊이 평가하고 있었다.
대통령은 이어, 독일과 일본의 무장해제, 은밀한 재무장을 막기 위한 군수산업의 통제와 사찰, 4대국의 장래 경찰 활동, 궁극적 평화의 보증자로서의 그들의 역할에 관한 구상은 이미 밝힌 바 있다고 상기시켰다. 한 가지를 빠뜨렸는데, 곧 세계 곳곳에 우리 자신의 안전을 위해 약소국들에게서 떼어 내야 할 섬과 식민지가 많다는 점이었다. 그는 이 섬과 영지들에 대한 어떤 형태의 국제 신탁통치의 수립을 스탈린 씨가 검토해 볼 만하다고 제안했다.
답하여 몰로토프 씨는 전후 조직에 관한 대통령의 앞선 제안들을 검토해 모스크바에 보고했다고 밝혔다. 스탈린 씨에게서 답이 왔는데, 그는 적어도 영국, 미국, 소련, 그리고 가능하다면 중국이 참여하는 무장해제, 사찰, 경찰 활동에 관한 대통령의 구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것이었다. 이 구상은 소련 정부의 전폭적인 승인을 받았으며 소련 정부는 이를 전폭적으로 지지할 것이었다. 그는 대통령의 신탁통치 원칙도 모스크바에서 똑같이 환영받으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대통령은 이어 이 원칙의 수용은 위임통치 제도의 폐기를 뜻한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지난 전쟁 뒤 일본은 태평양의 옛 독일령 섬들에 대한 위임통치를 받았고 그 섬들을 요새화했다. 이 섬들은 작지만 어느 한 나라에 주어져서는 안 되었다. 물론 일본인들은 내보내야 하겠지만 우리는 이 섬들을 원하지 않았고, 영국도 프랑스도 가져서는 안 되었다. 지금 영국이 보유한 섬들에도 같은 절차를 적용해야 할지 몰랐다. 이 섬들은 명백히 어느 한 나라에 속해서는 안 되었고, 그 경제는 어디나 실질적으로 같았다. 이 섬들의 문제를 장기간 다루는 가장 쉽고 실제적인 방법은 3~5인의 국제 위원회 아래 두는 것이었다.
대통령은 이어 리트비노프 씨에게 국제연맹을 버릴 준비가 되었는지 물었다. 「공동의 대의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대사가 답했다.
식민지 문제로 넘어가며 대통령은 인도차이나, 시암, 말레이 국가들, 나아가 네덜란드령 동인도를 예로 들었다. 마지막 것은 언젠가 자치의 준비가 될 것이며 네덜란드인들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이 지역들 각각은 자치의 준비를 갖추기까지 서로 다른 시간이 걸리겠지만, 독립을 향한 뚜렷한 물결은 어디에나 있었고, 따라서 백인 국가들은 장기적으로 이 지역들을 식민지로 유지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래서 장제스 총통은 이 영토들이 자치의 준비를 갖출 때까지 어떤 형태의 잠정적 국제 신탁통치가 최선의 관리 방식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대통령은 이 지역들이 20년이면 자치의 준비가 될 수 있으며, 그동안 수탁국들은 우리가 필리핀에서 42년에 걸쳐 이룬 것을 이루려 노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니까 총통은 독립을 지향하는 신탁통치의 원칙을 생각하고 있었다. 대통령은 몰로토프 씨가 이 제안을 스탈린 씨와 논의해 주기를 바랐다.
인민위원은 이 문제가 연합국의 진지한 검토를 받을 만하며 소련에서도 틀림없이 그런 검토를 받을 것이라는 의견을 표명했다. 그가 보기에 이 문제에 관한 어떤 결정이든, 독일과 일본이 다시 무장하여 다른 나라들을 전쟁으로 위협하지 못하게 막을 통제 기능과 결합된, 영국, 소련, 미국(어쩌면 중국도 함께)이 행사하는 보장에 달려 있을 것이 분명했다. 이 원칙에서 출발하여 몰로토프 씨는 대통령의 제안들이 실효 있게 구체화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표명했다. 대통령은 평화가 이루어지고 나면 어려움이 없으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이어 12시에 윈저 공 부부를 오찬에 접대해야 하지만 논의할 것이 하나 더 있다고 말을 끼웠다. 몰로토프 씨도 제기할 문제가 하나 더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이어, 전날 참모총장들과 선복과 해운의 문제를 논의했다고 말했다. 우리는 가능한 한 빨리 영국에서 독일군을 치기 위해 매주 영국에 병력과 항공기를 쌓아 가고 있었다. 상륙주정도 실어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거기 걸리는 시간은 쓸 수 있는 배에 달려 있었다. 우리는 1942년에 제2전선을 열기를 희망하고 기대하지만, 배가 더 있어야만 더 빨리 나아갈 수 있었다. 그래서 참모총장들은 제2전선의 개설을 앞당기기 위해, 소련 정부가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앞서 제출한 무기대여 목록을 재검토할 것을 제안했다. 1942년 7월 1일부터 한 해 동안 수송될 410만 톤 가운데 이번 여름 러시아 전선에서 군사 목적에 바로 쓸 수 있는 물자는 180만 톤뿐임을 기억하라는 것이었다. 나머지는 대부분 원자재와, 이번 여름에 쓸 수 있게 되지 않을 물자 생산용 품목들이었다. 실로 230만 톤은 전투에 전혀 쓰이지 않을 품목들이었다. 그래서 대통령은 소련 정부가 무기대여 요청량을 410만 톤에서 200만 톤으로 줄이는 것을 검토하라고 제안했다. 이 감축은 많은 배를 풀어 줄 것이고, 우리는 그 배들을 제2전선용 군수품과 장비를 영국으로 나르는 데 돌려 그 전선의 수립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었다. 홉킨스 씨는 수송되는 전차와 탄약의 양에는 감축이 없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붉은 군대가 실전에 쓸 수 있는 모든 것은 그대로 나아갈 것이었다.
몰로토프 씨는 이 제안을 본국에 보고하겠지만, 금속과 철도 자재처럼 현재 전선의 견고함에 직접 관련되는 비군사 보급품은 너무 많이 줄지 않기를 바란다고, 그것들도 상당한 정도로 필수적이라고 답했다. 무기대여 목록을 검토하면서 소련 정부는 비군사 품목의 감축이 러시아의 후방에, 이를테면 발전소와 철도와 기계 생산에 어느 정도의 제약을 지울지 셈해야 할 것이었다. 그것들은 결국 비교적 사활적인 것이므로, 이 필요가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기를 바랐다. 그는 논의할 문제가 두어 가지 있다고 다시 말했다.
대통령은 우리가 1942년에 제2전선을 세울 것을 기대하지만, 영국 항로로 돌릴 수 있는 배 한 척 한 척이 제2전선의 실현을 그만큼 앞당긴다고 되풀이했다. 결국 배는 두 곳에 동시에 있을 수 없으므로, 총 410만 톤에서 아낄 수 있는 1톤 1톤이 그만큼의 이득이었다. 소련은 케이크를 먹으면서 동시에 가지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이 말에 몰로토프 씨는 다소 힘주어, 첫째 전선이 굳건히 버텨야 제2전선도 강해진다고 받아치고, 소련이 요청량을 줄였는데 제2전선이 실현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느냐고 일부러 비꼬는 듯이 물었다. 그리고 더욱 다그치며, 자신이 영국에서 새 조약을 가지고 왔음을 강조했다. 「제기된 전반적 문제에 대해」 그가 물었다. 「런던과 모스크바에 어떤 답을 가지고 돌아가야 합니까? 제2전선에 관한 대통령의 답은 무엇입니까?」
이 직설적인 질문에 대통령은, 몰로토프 씨가 런던에서 이렇게 말해도 좋다고 답했다. 영국은 지금 이 순간에도 상륙주정, 식량 등의 문제로 우리 참모 장교들과 직접 협의하고 있다. 우리는 제2전선을 세울 것을 기대한다. 아널드 장군이 이튿날(6월 2일 화요일) 런던에서 도착할 것이고, 마운트배튼 경, 포털 원수, 리틀 장군이 함께 오는데, 그들과 제2전선의 창설에 관한 합의에 이를 계획이다. 몰로토프 씨는 런던에서 또한, 소련 정부가 우리가 더 많은 배를 영국 항로에 투입할 수 있게 해 준다면 그 창설을 향해 그만큼 더 빨리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의 말로는, 몰로토프 씨가 화요일이나 수요일(6월 2일 또는 3일)에 뉴욕에서 돌아올 것이므로, 아널드 장군이 마셜 장군에게 보고한 뒤 몰로토프 씨가 마셜 장군과 후속 조정을 논의해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대화는 이렇게 러시아 쪽의 긴장이 줄어든 채 끝났다. 대통령은 몰로토프 씨에게 다정하게 작별을 고하고 무사한 귀국을 빌며 인민위원에게 자신의 사진을 선물했다. 회의는 낮 12시 10분쯤 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