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마호가니

인물보리스 필냐크

제1장

거지들, 예언꾼들, 동냥꾼들, 떠돌이 축복객들, 나환자 같은 성자들, 순례자들, 여자 순례자들, 불구자들, 헛성자들, 절름발이 순례자들, 예언자들, 바보 여자들, 바보 남자들, 유로지비들 — 성스러운 러시아 일상생활의 꽈배기 같은 존재들을 가리키는 이 동의어들, 성스러운 러시아의 거지들, 떠돌이 절름발이들, 그리스도를 위한다는 불구자들, 성스러운 러시아의 그리스도를 위한 유로지비들 — 이 꽈배기들은 러시아가 생겨난 날들로부터, 최초의 이반 차르들의 시대부터, 러시아 천년의 일상생활을 장식해 왔다. 복자들에 대해서는 러시아의 모든 역사가, 민속학자, 작가들이 자기 펜을 적셔 왔다. 이 미치광이들 혹은 사기꾼들 — 동냥꾼들, 헛성자들, 예언자들 — 은 고전적인 러시아 역사와 문학에서 부르던 대로, 교회의 아름다움, 그리스도의 형제들, 세상을 위해 기도하는 자들로 여겨졌다.

19세기 중엽 모스크바에 살았던 유명한 모스크바 유로지비, 신학교 아카데미를 중퇴한 이반 야코블레비치는 프레오브라젠스카야 병원에서 죽었다. 그의 장례에 대해서는 기자들, 시인들, 역사가들이 썼다. 한 시인은 『베도모스티』에 이렇게 썼다.

“노란 집은 무슨 축제를 준비하는가?
어찌하여 백성의 물결이 그곳으로 흘러드는가,
수레와 란도 마차와 드로슈키와 두 발로,
모든 가슴은 어두운 불안으로 가득 찼는가?

그들 사이에서 때때로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마음의 무겁고 쓰라린 고통으로 가득한 목소리.
‘이반 야코블레비치가 때 이르게 꺼졌다!
더 나은 운명에 합당했던 예언자가 꺼졌다!’”

생활기록가 스카브론스키는 『모스크바 소묘』에서, 시신이 묻히기 전 닷새 동안 그 시신 곁에서 200회가 넘는 추도식이 거행되었다고 말한다. 많은 이들이 교회 근처에서 밤을 지새웠다. 『모스크바의 거짓 예언자, 거짓 유로지비, 바보 남자와 바보 여자 26명』이라는 연구의 저자이며 장례식의 목격자였던 N. 바르코프는 이렇게 전한다. 이반 야코블레비치를 일요일에 장사 지내자는 제안이 있었고, “『경찰 관보』에도 그렇게 공고되었다.” 그날 새벽부터 숭배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으나, 정확히 어디에 묻을 것인지를 두고 다툼이 벌어져 매장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거의 싸움이 날 뻔했고, 욕설은 이미 꽤나 오갔다. 어떤 사람들은 그를 그의 고향인 스몰렌스크로 데려가고자 했고, 다른 이들은 남자 포크롭스키 수도원에 묻어야 한다고 애썼다. 그곳에는 교회 아래에 이미 그를 위한 무덤까지 파여 있었다. 셋째 무리는 감격하여 그의 유해를 여자 알렉세예프스키 수도원에 넘겨 달라고 청했고, 넷째 무리는 관에 매달려 그것을 체르키조보 마을로 끌고 가려 했다. “이반 야코블레비치의 시신을 훔쳐 갈까 두려워했다.”

한 역사가는 이렇게 쓴다. “그동안 내내 비가 내렸고 진창이 끔찍했으나, 그럼에도 시신을 거처에서 예배당으로, 예배당에서 교회로, 교회에서 묘지로 옮기는 동안, 여자들, 처녀들, 크리놀린을 입은 아가씨들이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관 밑으로 기어 다녔다.”

이반 야코블레비치는 살아 있을 때 자기 밑으로 배설했다. “그 밑에서 흘러나왔다”고 역사가는 쓰고, 그래서 문지기들에게 바닥에 모래를 뿌리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바로 이 모래, 이반 야코블레비치 밑에서 젖은 그 모래를 숭배자들이 모아 집으로 가져갔고, 그 작은 모래는 치유력을 보이기 시작했다. 어떤 아이가 배가 아팠는데, 어머니가 죽에 모래 반 숟가락을 넣어 먹였더니 아이가 나았다. 장례 예배 뒤에는 죽은 이의 코와 귀를 막고 있던 솜을 잘게 나누어 신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많은 이들이 작은 병을 들고 관으로 와서, 고인이 수종으로 죽었기 때문에 관에서 흘러나오는 그 습기를 병에 담았다. 이반 야코블레비치가 죽을 때 입고 있던 속옷은 조각조각 찢겼다.

“교회에서 운구할 무렵이 되자 기형인들, 유로지비들, 위선자들, 순례자들, 여자 순례자들이 모여들었다. 교회 안은 비좁아 그들은 들어가지 못하고 거리마다 서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곳, 대낮에, 모여든 사람들 사이에서 백성에게 교훈이 베풀어지고, 현현과 환영이 일어나고, 예언과 모독이 선포되고, 돈이 모이고, 불길한 포효가 터져 나왔다.”

이반 야코블레비치는 생애 마지막 몇 해 동안 자기 숭배자들에게 자기가 씻은 물을 마시라고 명령했다. 그들은 마셨다. 이반 야코블레비치는 구두 예언만 한 것이 아니라, 문자 예언도 했고, 그것들은 역사 연구를 위해 보존되어 있다. 사람들은 그에게 편지를 써서 물었다. “누구누구가 결혼하겠습니까?” 그는 대답했다. “노동 없이는 종이 울리지 않는다……”

모스크바의 키타이-고로드는 유로지비라는 벌레들이 살아가는 치즈였다. 어떤 이들은 시를 썼고, 어떤 이들은 수탉, 공작, 멋쟁이새처럼 노래했으며, 셋째 부류는 주님의 이름으로 모든 사람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퍼부었다. 넷째 부류는 오직 한 문장만 알고 있었는데, 그 문장은 예언적인 것으로 여겨져 예언자들에게 이름을 주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인간의 삶은 동화, 관은 유모차, 타고 가도 덜컹이지 않는다!” 개 짖는 소리의 애호가들도 있었다. 그들은 짖음으로 하느님의 뜻을 예언했다.

이 거지들, 동냥꾼들, 예언꾼들, 떠돌이 축복객들, 나환자 같은 자들, 헛성자와 불구자들, 온 성스러운 러시아의 무리 속에는 농민도 있었고, 소시민도 있었고, 귀족도 있었고, 상인도 있었다. 아이들, 노인들, 건장한 사내들, 다산하는 아낙들도 있었다. 그들 모두는 취해 있었다. 그들 모두를 덮고 있던 것은 아시아적 러시아 제국의 양파 모양 푸른 안온함이었다. 그들, 치즈와 양파처럼 쓴 자들을. 왜냐하면 교회의 양파형 돔은 물론 양파 같은 러시아적 삶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스크바와 페테르부르크와 러시아의 다른 큰 도시들에는 또 다른 괴짜들이 있다. 그들의 계보는 차르적이라기보다 제국적이다. 표트르가 시작한 러시아 가구의 예술은 엘리자베타 시대에 생겨났다. 이 농노적 예술에는 쓰인 역사가 없고, 장인들의 이름은 시간에 의해 지워졌다. 이 예술은 홀로 일하는 자들의 일, 도시 지하실의 일, 영지 안 하인들의 오두막 뒤쪽 골방의 일이었다. 이 예술은 쓴 보드카와 잔혹함 속에서 존재했다. 자코브와 불이 스승이 되었다. 농노 소년들은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파리와 빈으로 보내졌다. 그곳에서 그들은 기예를 배웠다. 그런 다음 그들은 돌아왔다 — 파리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지하실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하인들 뒤편의 골방으로 — 그리고 창조했다.

어떤 장인은 수십 년 동안 어떤 소파 하나, 화장대 하나, 작은 책상 하나, 책장 하나를 만들었다. 그는 일했고, 술을 마셨고, 죽었다. 자기 예술을 조카에게 남긴 채. 왜냐하면 장인에게는 자식이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카는 삼촌의 예술을 베끼거나, 그것을 이어 갔다. 장인은 죽었으나, 물건들은 지주 저택과 대저택에서 한 세기를 살았다. 그 곁에서 사람들은 사랑했고, 소파 위에서 죽었다. 세크레테르의 비밀 서랍에는 비밀 서신들이 숨겨졌다. 신부들은 화장대 거울 속에서 자기 젊음을 보았고, 늙은 여자들은 자기 늙음을 보았다.

엘리자베타 — 예카테리나 — 로코코, 바로크 — 청동, 소용돌이 장식, 자단, 장미목, 흑단, 카렐리야 자작나무, 페르시아 호두나무. 파벨 — 엄격하다. 파벨은 몰타 기사다. 파벨에게는 군인다운 선, 엄격한 고요, 어둡게 광낸 마호가니, 초록 가죽, 검은 사자와 그리핀이 있다. 알렉산드르 — 엠파이어 양식, 고전, 헬라스. 니콜라이 — 다시 파벨, 자기 형 알렉산드르의 위대함에 눌린 파벨. 그렇게 시대들은 붉은 목재 위에 내려앉았다.

1861년에 농노제가 무너졌다. 농노 장인들은 가구 공장으로 대체되었다 — 레빈손, 토네트, 빈식 가구. 그러나 장인들의 조카들은 보드카를 거쳐 여전히 살아남았다. 이 장인들은 이제 아무것도 만들지 않는다. 그들은 옛것을 복원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삼촌들의 모든 기술과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 그들은 외톨이들이고, 말이 없다. 그들은 철학자처럼 자기 일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시인처럼 그것을 사랑한다. 그들은 여전히 지하실에서 산다. 그런 장인을 가구 공장으로 보낼 수는 없다. 니콜라이 1세 이후에 만들어진 물건을 수리하라고 강요할 수도 없다. 그는 골동상이고, 복원가다.

그는 모스크바 어느 집의 다락방이나 불타지 않은 영지의 헛간에서, 예카테리나 시대, 파벨 시대, 알렉산드르 시대의 탁자나 삼면거울이나 소파를 찾아낼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기 지하실에서 몇 달씩 그것을 파고들며 담배를 피우고, 생각하고, 눈으로 맞춰 볼 것이다. 죽은 물건들의 살아 있는 삶을 되살리기 위해서. 그는 그 물건을 사랑할 것이다. 운이 좋으면, 그는 작은 책상의 비밀 서랍에서 누렇게 바랜 편지 묶음을 찾아낼 것이다. 그는 복원가다. 그는 뒤를 바라본다. 물건들의 시간 속으로.

그는 반드시 괴짜다. 그리고 그는 괴짜답게 복원한 물건을 자기와 같은 괴짜 수집가에게 팔 것이다. 거래를 하면서 그는 그 수집가와 함께, 병에서 예카테리나 시대의 술병으로 옮겨 담은 코냑을, 옛 황실의 다이아몬드 세트였던 잔으로 마실 것이다.

제2장

1928년.

도시는 러시아의 브뤼헤이자 러시아의 가마쿠라였다. 300년 전 이 도시에서 류리크 왕조의 마지막 황태자가 살해되었다. 그 살해의 날, 황태자와 함께 놀던 것은 투치코프 가문의 보야르 아이들이었다. 그리고 투치코프 가문은, 수도원들과 또 그보다 덜 고귀한 출신의 수많은 가문들과 마찬가지로, 오늘날까지도 이 도시에서 살아 있다…… 러시아의 옛것들, 러시아의 지방, 볼가 상류의 물굽이, 숲, 늪, 마을, 수도원, 지주 저택들 — 트베리, 우글리치, 야로슬라블, 로스토프 벨리키로 이어지는 도시들의 사슬. 이 도시는 러시아 분령들과 골목들의 수도원적 브뤼헤였고, 약초 같은 카밀레 속에 놓인, 살인과 세기의 석조 기념물들의 도시였다. 모스크바에서 200베르스타 떨어져 있었고, 철도는 50베르스타 밖에 있었다.

여기에는 영지의 폐허와 붉은 목재가 걸려 있었다. 이곳 고대유물 박물관장은 실크해트에 헐렁한 외투, 체크무늬 바지를 입고 다녔으며, 푸시킨처럼 구레나룻을 길렀다. 그의 헐렁한 외투 주머니에는 박물관과 수도원의 열쇠들이 들어 있었다. 그는 찻집에서 차를 마셨고, 보드카는 자기 집의 벽장 같은 방에서 혼자 마셨다. 그의 집에는 성서들, 이콘들, 대수도원장들의 클로부크와 주교관, 스티하리, 오라리, 수구, 수도복, 제의, 성작 덮개, 제단 덮개, 제단 의복들이 — 13세기, 15세기, 17세기의 것들이 — 마구 쌓여 있었다. 그의 서재에는 카라진 가문의 붉은 목재 가구가 있었고, 책상 위에는 귀족 모자 모양의 재떨이가 있었다. 붉은 테두리와 흰 윗부분이 달린 귀족 모자였다.

카라진 나리, 뱌체슬라프 파블로비치는 예전에 근위기병연대에서 복무하다가, 혁명 25년쯤 전 자기 정직성 때문에 퇴역했다. 그의 동료가 공금을 훔쳤고, 그가 조사를 맡게 되었으며, 그는 상부에 진실을 보고했다. 상부는 도둑을 덮어 주었다. 카라진 나리는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두 번째 보고서를 제출했다 — 면직을 청하는 보고서였다. 그리고 그는 영지에 정착했다. 그곳에서 일주일에 한 번 자기 군郡 도시로 물건을 사러 왔다. 그는 마부가 모는 낡은 사륜마차를 타고, 하인 둘을 데리고 왔다. 가게에서 흰 장갑 낀 손가락으로 점원에게 지시하여 철갑상어 알 반 파운드, 발리크 3/4, 세브류가 한 덩어리를 싸게 했다. 하인 하나가 돈을 치르고, 다른 하인이 물건을 받았다. 어느 날 한 상인이 나리에게 손을 내밀었는데, 나리는 손을 주지 않고, 손을 주지 않는 이유를 짧은 한마디로 설명했다.

“그럴 필요 없소!”

카라진 나리는 귀족 모자를 쓰고, 니콜라이 시대의 외투를 입고 다녔다. 혁명은 그를 영지에서 도시로 내쫓았으나, 외투와 모자는 남겨 주었다. 그는 줄을 설 때도 귀족 모자를 쓰고 섰고, 하인들 대신 아내를 앞세웠다.

카라진 나리는 오래된 물건들을 팔아 연명했다. 이런 일 때문에 그는 박물관장에게 들르곤 했다. 그는 박물관장에게서 혁명의 의지로 자기 영지에서 압수된 물건들을 보았다. 그는 그것들을 경멸하듯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박물관장의 책상 위에서 귀족 모자 모양의 재떨이를 보았다.

“치우시오.” 그가 짧게 말했다.

“왜요?” 박물관장이 물었다.

“러시아 귀족의 모자는 침 뱉는 그릇이 될 수 없소.” 카라진 나리가 대답했다.

고대유물 감정가들은 논쟁했다. 카라진 나리는 분노하며 떠났다. 그 뒤로 그는 다시는 박물관장의 문턱을 넘지 않았다. 이 도시에는 마구장이가 하나 살고 있었는데, 그는 자기가 어릴 적 카라진 나리 집에서 시중드는 꼬마 하인으로 지낼 때, 굼떴다는 이유로 카라진 나리가 왼손 한 방에 자기 이빨 일곱 개를 날려 버린 일을 고맙게 기억하고 있었다.

도시에는 원시림 같은 적막이 얼어붙어 있었다. 하루 두 번 증기선의 기적 소리에 그 적막은 그리움으로 울부짖었고, 오래된 교회 종루들의 종소리로 울렸다. 1928년까지는 그랬다. 1928년에 많은 교회에서 종들이 루드메탈토르그 트러스트를 위해 내려졌기 때문이다. 도르래와 통나무와 삼밧줄로 높은 종루에서 종들을 끌어냈다. 종들은 종루에서 빠져나와 땅 위에 매달렸고, 그다음 아래로 던져졌다. 종들이 밧줄에 매달려 기어 내려오는 동안, 그것들은 원시림 같은 울음으로 노래했고, 그 울음은 도시의 원시성 위에 서 있었다. 종들은 포효와 귀먹먹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고, 떨어질 때 땅속으로 두 아르신쯤 들어갔다.

이 이야기의 사건들이 벌어지는 날들에, 도시는 바로 이 고대의 종들로 신음하고 있었다.

도시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노동조합 수첩이었다. 가게에는 두 줄이 있었다. 노동조합 수첩을 가진 사람들의 줄과, 그것이 없는 사람들의 줄. 볼가 강에서 빌리는 배는 노동조합 수첩 소지자에게는 시간당 10코페이카, 그 밖의 다른 사람들에게는 시간당 40코페이카였다. 영화표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25, 40, 60코페이카였고, 노동조합 수첩 소지자에게는 5, 10, 15코페이카였다. 노동조합 수첩이 있는 집에서는 그것이 빵 배급카드 옆, 가장 중요한 자리에 놓였다. 게다가 빵 배급카드, 따라서 빵도, 선거권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발급되었고, 하루 400그램이었다. 선거권이 없는 사람들과 그 자녀들에게는 빵이 주어지지 않았다.

영화관은 노동조합 정원 안, 보온을 한 헛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영화관에는 종이 없었고, 발전소에서 도시 전체에 한꺼번에 신호를 보냈다. 첫 번째 신호는 차 마시기를 끝내야 한다는 뜻이었고, 두 번째 신호는 옷을 입고 거리로 나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발전소는 새벽 한 시까지 돌아갔다. 하지만 집행위원회 의장, 산업콤비나트 의장, 그 밖의 높은 사람들의 명명일, 10월 기념일, 기타 뜻밖의 축하일에는 전기가 때로 밤새도록 늦게 꺼졌다. 그러면 나머지 주민들은 자기들의 축하 행사도 그런 밤에 맞추었다.

한번은 영화관에서 국내상업 담당 전권대표, 사츠인지 카츠인지 하는 사람이 완전히 술이 깨 있는 상태에서, 서툴러서 우연히 집행위원회 의장의 아내를 밀쳤다. 그녀는 경멸에 차서 그에게 말했다.

“나는 쿠바르지나예요.”

전권대표 사츠는 이 성씨의 힘을 알지 못했으므로 놀란 얼굴로 사과했다. 그리고 그는 훗날 그 놀라움 때문에 군郡에서 지워져 버렸다.

도시의 간부들은 밀집해서 살았다. 타고난 의심 때문에 나머지 주민들을 경계했고, 공공생활을 말다툼으로 대체했으며, 매년 자기들끼리 서로를 한 군郡 지도직에서 다른 지도직으로 재선출했다. 다투는 인물들의 파벌 관계에 따라, 트리시카의 카프탄 원칙으로 그렇게 했다. 경제도 같은 트리시카의 카프탄 원칙에 따라 조합되었다.

경제를 맡은 것은 콤비나트였다. 이 콤비나트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 이반 오조고프가 오흘로몬이 된 해에 생겨났다. 콤비나트 이사회 구성원은 집행위원회 의장, 즉 그 아내의 남편인 쿠바르진, 노동농민검사 담당 전권대표 프레스누힌이었다. 의장은 네도수고프였다. 그들은 혁명 전의 부를 천천히 망쳐 가며, 엉터리와 애정으로 경영했다. 착유공장은 손해를 보며 돌아갔다. 제재소도 손해를 보며 돌아갔다. 피혁공장은 손해는 보지 않았으나 이익도 없었고, 감가상각 계정도 없었다.

겨울에 눈 위로, 말 45마리와 군郡 인구 절반을 동원해 50베르스타 거리에서 이 피혁공장으로 새 보일러를 끌고 왔다. 끌고 와서는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버렸고, 그 비용을 손익계정에 적어 넣었다. 나무껍질 분쇄기를 샀다. 그것도 쓸모없다는 이유로 버리고 손익계정에 적어 넣었다. 그다음 나무껍질을 부술 목적으로 짚절단기를 샀다. 그것도 버렸다. 나무껍질은 짚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 장부에 적어 넣었다.

그들은 노동자 생활을 개선한다며 주택건설을 했다. 2층짜리 목조 주택을 사서 공장으로 옮긴 다음 — 장작으로 톱질해 버렸다. 장작 다섯 큐브가 나왔다. 집이 썩어 있었기 때문이다. 쓸 만한 통나무는 열세 개였다. 그 열세 개에 9천 루블을 더해 집을 지었다. 바로 그 무렵 공장은 닫혔다. 다른 기업들처럼 손해가 난 것은 아니었으나 수익도 없었기 때문이다. 새 집은 비어 남았다.

콤비나트는 자기 손실을 혁명 전부터 놀고 있던 기업들의 설비를 팔아 메웠다. 또한 다음과 같은 조합으로도 메웠다. 쿠바르진 의장은 쿠바르진 이사에게 숲을 고정가격에서 50퍼센트 할인하여 2만5천 루블에 팔았다. 쿠바르진 이사는 바로 그 숲을 주민들과 특히 쿠바르진 의장에게 고정가격에서 할인 없이 5만 루블 조금 넘는 값에 팔았다.

1927년에 이사회는 월계관 위에서 쉬고 싶어 했다. 그들은 쿠바르진에게 서류가방을 선물했다. 서류가방 살 돈은 회계 책임금에서 가져왔다. 그 뒤에는 그 돈을 금고에 돌려놓기 위해 토착민들 사이를 서명부 들고 뛰어다녔다.

자기들의 이해관계와 삶이 폐쇄되어 있었고, 나머지 주민들에게는 은밀히 흘러갔으므로, 이 도시의 간부들은 이 이야기에 아무런 흥미도 제공하지 않는다.

도시에서 파는 알코올은 오직 두 종류뿐이었다. 보드카와 교회 포도주. 다른 것은 없었다. 보드카는 많이 소비되었고, 교회 포도주도 그보다 덜하기는 했으나 역시 많이 소비되었다. 그리스도의 피와 따뜻함을 위해서였다. 도시에서 파는 담배는 ‘푸슈카’ 한 갑 11코페이카, ‘복스’ 14코페이카뿐이었다. 다른 것은 없었다. 보드카와 담배 모두에 줄이 있었다. 직업조합 줄과 비직업조합 줄이었다. 하루 두 번 증기선이 지나갔다. 그 배의 뷔페에서는 ‘사포’ 담배, 포트와인, 마가목술을 살 수 있었다. ‘사포’를 피우는 자들은 명백한 횡령범이었다. 도시에는 사적 상업이 없었고, 예산에는 ‘사포’가 계산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시는 지방 소도시가 될 계산으로 살았고, 텃밭과 상호부조로 서로를 섬기며 살았다.

스쿠드린 다리 곁에는 스쿠드린의 집이 있었고, 그 집에는 농민 문제 청원 대리인인 85세의 야코프 카르포비치 스쿠드린이 살고 있었다. 야코프 카르포비치 스쿠드린 외에도, 그보다 훨씬 어린 두 여동생 카피톨리나와 림마, 그리고 자신을 오조고프로 개명한 오흘로몬 형제 이반이 도시 안에 야코프 카르포비치와는 따로 살고 있었다. 그들에 관한 이야기는 뒤에 나온다.

지난 40년쯤 동안 야코프 카르포비치는 탈장으로 고생했다. 그는 걸을 때면 바지의 터진 구멍으로 오른손을 넣어 자기 탈장을 받치고 다녔다. 그의 손은 부어 있었고 푸르스름했다. 그는 공동 소금통에서 빵에 소금을 두껍게 쳐서 먹었고, 소금을 오도독 씹었다. 그러고는 남은 소금을 아껴 다시 소금통에 털어 넣었다. 지난 30년 동안 야코프 카르포비치는 정상적으로 잠자는 법을 잊었다. 그는 밤중에 깨어 새벽까지 성서 앞에서 깨어 있었고, 그다음 정오까지 잤다. 하지만 정오가 되면 그는 언제나 신문을 읽으러 독서실로 갔다. 도시에서는 신문을 팔지 않았고, 구독할 돈은 부족했기 때문에, 신문은 독서실에서 읽었다.

야코프 카르포비치는 뚱뚱했고, 완전히 백발에 대머리였으며,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는 말을 준비하는 동안 오래도록 목을 긁고 씩씩거렸다. 스쿠드린의 집은 예전에 지주 베레이스키의 것이었다. 베레이스키는 농노제 폐지 뒤 선출직 치안판사 직책에 있다가 몰락했다. 야코프 카르포비치는 개혁 이전의 병역을 마친 뒤 베레이스키 밑에서 서기로 일했고, 재판장의 서류 요령을 배웠으며, 베레이스키가 몰락했을 때 그 집과 직책을 함께 사들였다.

집은 예카테리나 시대부터 손대지 않은 채 서 있었다. 존재한 지 한 세기 반 동안 그 집은 자기 안의 붉은 목재처럼 어두워졌고, 유리창은 푸르게 변했다. 야코프 카르포비치는 농노제를 기억했다. 노인은 모든 것을 기억했다. 자기 농노 마을의 나리로부터, 세바스토폴 징병으로부터 모든 것을. 지난 50년 동안 그는 모든 러시아 장관과 인민위원들의 이름, 부칭, 성을 기억했고, 러시아 황실과 소비에트 중앙집행위원회에 파견된 모든 대사, 열강의 모든 외무장관, 모든 총리, 왕, 황제, 교황의 이름을 기억했다. 노인은 세월의 셈을 잃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니콜라이 파블로비치도, 알렉산드르 니콜라예비치도,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비치도, 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도, 블라디미르 일리치도 살아 넘겼다. 알렉세이 이바노비치도 살아 넘길 거야!”

노인에게는 아주 고약한 미소가 있었다. 비굴하면서도 동시에 악의적인 미소였다. 그가 웃을 때면 희끄무레한 눈에 눈물이 고였다. 노인은 거칠었다. 그의 아들들도 그를 닮아 거칠었다. 맏아들 알렉산드르는 1905년보다 훨씬 전, 급한 편지를 가지고 증기선 사무소에 보내졌을 때 배를 놓쳤다. 그는 아버지에게서 “꺼져라, 이 못난 놈아!”라는 말과 함께 따귀를 맞았다. 그 따귀가 마지막 꿀방울이었다. 소년은 열네 살이었다. 소년은 돌아서서 집을 나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것은 6년 뒤, 미술아카데미 학생이 되어서였다.

그 몇 해 동안 아버지는 아들에게 편지를 보내, 돌아오라고 명령하고, 영원히 저주하여 부모의 축복을 박탈하겠다고 약속했다. 바로 그 편지 위, 아버지의 서명 조금 아래에, 아들은 이렇게 덧붙였다. “당신네 축복 따위, 악마나 가져가라.” 그리고 아버지의 편지를 아버지에게 돌려보냈다.

알렉산드르가 집을 나간 지 6년 뒤, 햇살 비치는 봄날에 응접실로 들어섰을 때, 아버지는 즐거운 미소와 함께, 그리고 아들을 때리려고 치켜든 손과 함께 그를 향해 갔다. 아들은 명랑한 웃음을 띠고 자기 두 손으로 아버지의 손목을 잡았다. 다시 한 번 웃었다. 그 웃음 속에는 힘이 즐겁게 빛났다. 아버지의 두 손은 집게 속에 있었다. 아들은 손목을 살짝 누르며 아버지를 식탁 옆 안락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아들이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아버지. 뭘 그렇게 수고하십니까, 아버지? 앉으시지요, 아버지!”

아버지는 목을 긁고, 히히 웃고, 씩씩거렸다. 얼굴 위로 악한 선의가 지나갔다. 노인은 아내에게 소리쳤다.

“마류슈카, 그래, 히히, 보드카, 보드카 좀 가져오게, 여보, 지하실에서 차가운 걸로, 차가운 안주랑 같이. 컸구나, 아들놈, 컸어. 우리 재앙으로 아들놈이 돌아왔구나, 개자식!”

그의 아들들은 화가, 사제, 발레 배우, 의사, 엔지니어가 되었다. 두 어린 동생은 맏형인 화가와 아버지를 닮았다. 두 어린 아들은 맏형처럼 집을 나갔고, 막내인 엔지니어 아킴 야코블레비치는 공산주의자가 되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결코 돌아오지 않았고, 고향 도시에 올 때면 고모들인 카피톨리나와 림마의 집에 머물렀다. 1928년이 되었을 때 야코프 카르포비치의 큰손자들은 이미 결혼했지만, 막내딸은 스무 살이었다. 딸은 외동딸이었고, 혁명의 천둥 속에서 아무 교육도 받지 못했다.

집에는 노인과 그의 아내 마리야 클리모브나, 딸 카테리나가 살았다. 집의 절반과 중이층은 겨울마다 난방하지 않았다. 집은 사람들이 살던 대로 살았다. 예카테리나보다 훨씬 전, 심지어 표트르보다도 전부터 사람들이 살던 대로. 비록 집 자체는 예카테리나 시대의 붉은 목재로 침묵하고 있었지만. 노인들은 텃밭으로 살아갔다. 집 안의 산업 물품이라곤 성냥, 등유, 소금뿐이었다. 오직 그것뿐이었다. 성냥과 등유와 소금은 아버지가 관리했다. 마리야 클리모브나와 카테리나와 노인은 봄부터 가을까지 양배추, 사탕무, 순무, 오이, 당근, 그리고 설탕 대신 쓰는 감초 뿌리를 위해 일했다.

여름 새벽이면 도시 변두리 밖, 이슬과 안개 속에서 노인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속옷 차림에 맨발로, 오른손은 바지 구멍에 넣고, 왼손에는 회초리를 들고 소들을 치고 있었다. 겨울이면 노인은 자기가 깨어 있는 시간에만 램프를 켰다. 다른 시간에는 어머니와 딸이 어둠 속에 앉아 있었다. 정오가 되면 노인은 독서실로 신문을 읽으러 갔고, 공산주의 혁명의 이름들과 소식들을 자기 안으로 빨아들였다. 그때 카테리나는 클라브생 앞에 앉아 카스탈스키의 성가를 익혔다. 그녀는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했다.

노인은 해질 무렵 집에 돌아와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집은 여자들의 속삭임과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러면 카테리나는 성당으로 성가 연습을 하러 갔다. 아버지는 자정 무렵 깨어나 램프를 켜고 먹고 성서를 파고들었다. 외워 둔 것을 소리 내어 읽었다. 여섯 시쯤이면 노인은 다시 잠들었다. 노인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삶을 두려워하는 법도 잊어버리면서 시간을 잃었다.

어머니와 딸은 노인 앞에서 침묵했다. 어머니는 죽과 양배추 수프를 끓이고, 파이를 굽고, 난로를 때고, 우유를 발효시키고, 젤리 고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할머니들은 손주들을 위해 몰래 떡을 숨겼다. 말하자면 그녀는 러시아인들이 15세기와 17세기에도 그랬던 방식으로 존재했고, 음식도 15세기와 17세기의 방식으로 만들었다. 마리야 클리모브나는 말라붙은 노파였고, 놀라운 여자였다. 러시아의 마을들에 오래된 성모 이콘들과 함께 보존되어 있는 그런 유형의 여자였다.

남편의 잔혹한 의지가 있었다. 50년 전, 결혼식 다음 날 그녀가 진홍색 벨벳 누비저고리를 입었을 때 남편은 물었다.

“그건 뭐 하려고?”

그녀는 그때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건 뭐 하려고?” 남편이 다시 물었다. “벗어! 나는 네가 치장하지 않아도 아는데, 다른 놈들이 널 흘끔거릴 필요는 없지!”

그때 남편은 엄지손가락에 침을 묻혀, 그녀가 관자놀이 머리를 어떻게 빗어 넘겨야 하는지를 아프게 보여 주었다. 남편의 잔혹한 의지는 그녀로 하여금 벨벳 누비저고리를 영원히 궤짝 안에 치워 넣게 했고, 아내를 부엌으로 보냈다. 그 의지는 아내의 의지를 꺾었는가 — 아니면 복종으로 단련했는가? 아내는 영원히 말대꾸하지 않았고, 품위 있었고, 침묵했으며, 슬펐다. 그리고 결코 비뚤어진 마음을 갖지 않았다. 그녀의 세계는 사립문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사립문 밖으로 나가는 길은 오직 하나, 무덤 같은 교회로 가는 길뿐이었다. 그녀는 딸과 함께 카스탈스키의 시편을 불렀다. 그녀는 예순아홉 살이었다.

집 안에는 표트르 이전의 러시아가 얼어붙어 있었다. 노인은 밤마다 외워 둔 성서를 소리 내어 읽었다. 삶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채. 아주 드물게, 몇 달에 한 번, 침묵하는 밤의 시간에 노인은 아내의 침상으로 갔다. 그때 그는 속삭였다.

“마류슈카, 그래…… 크흐, 음! 그래, 크흐, 마류슈카, 이것이 삶이야, 마류슈카!”

그의 손에는 촛불이 있었고, 그의 눈은 눈물지으며 웃고 있었고, 그의 손은 떨렸다.

“마류슈카, 크흐, 여기 내가 있네, 그래…… 이것이 삶이야, 마류슈카, 크흐!”

마리야 클리모브나는 성호를 그었다.

“부끄러운 줄 아세요, 야코프 카르포비치!”

야코프 카르포비치는 불을 껐다.

딸 카테리나에게는 작고 노란 눈이 있었다. 그 눈은 끝없는 잠 때문에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부어오른 눈꺼풀 주변에는 일 년 내내 주근깨가 번식했다. 그녀의 손과 발은 통나무 같았고, 가슴은 스위스 젖소의 젖통처럼 컸다.

……도시는 러시아의 브뤼헤이자 러시아의 가마쿠라였다.

제3장

……모스크바는 일거리와 착수와 성취를 실은 트럭들로 우르릉거렸다. 자동차들은 집들과 함께 공간으로, 위쪽으로 질주했다. 포스터들은 고리키의 국영출판사, 영화, 대회들을 외쳐댔다. 전차와 버스와 택시의 소음은 수도를 세로와 가로로 확증했다.

기차는 그을음처럼 검은 밤 속으로 모스크바를 떠났다. 모스크바의 불빛과 천둥 같은 열기는 아주 빨리 죽어 갔고, 죽었다. 들판들은 검은 침묵으로 누웠고, 그 침묵은 객차 안으로 들어왔다. 침대차의 2인용 칸에는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두 형제 베즈데토프, 파벨 표도로비치와 스테판 표도로비치. 붉은 목재 가구 복원가들이었다. 둘 다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오스트롭스키 시대의 상인들처럼 프록코트를 입고 있었지만, 그 위에 베케샤를 걸치고 있었다. 그러나 면도한 얼굴에는 야로슬라블식 슬라브성이 남아 있었다. 두 사람의 눈은 비어 있으면서도 영리했다.

기차는 시간을 검은 들판의 공간 속으로 끌고 갔다. 객차 안에서는 무두질한 가죽과 삼 냄새가 났다. 파벨 표도로비치는 가방에서 코냑 병과 은잔을 꺼냈다. 따르고, 마셨다. 다시 따르고, 말없이 형제에게 건넸다. 형제가 마시고 잔을 돌려주었다. 파벨 표도로비치는 병과 잔을 가방에 넣었다.

“구슬 세공은 살까?” 스테판이 물었다.

“물론.” 파벨이 대답했다.

침묵 속에서 30분이 지났다. 기차는 역들로 시간을 멈춰 세우며 시간을 질질 끌고 갔다. 파벨은 병과 잔을 꺼내 마시고, 형제에게 따라 주고, 다시 넣었다.

“아가씨들 대접할까? 도자기도 살까?” 스테판 표도로비치가 물었다.

“물론.” 파벨 표도로비치가 대답했다.

또 30분의 침묵 뒤, 형제들은 한 잔씩 마셨다.

“이른바 러시아 태피스트리는 살까?” 스테판이 물었다.

“물론.” 파벨이 대답했다.

자정에 기차는 볼가로, 러시아 전역에 수공 구두 생산으로 유명한 마을로 왔다. 가죽 냄새는 점점 더 진해졌다. 파벨이 마지막 잔을 하나씩 따랐다.

“알렉산드르 이후 것은 사지 말까?” 스테판이 물었다.

“불가능하지.” 파벨 표도로비치가 대답했다.

역에는 러시아 장화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철학은 아니었으나, 러시아 도로에 대한 구체적인 확언이었다. 수공업은 타르 냄새를 풍겼다. 어둠은 그 냄새처럼 타르같이 짙었다. 역 안에서는 구두장이들이 뛰어다녔다. 역 뒤쪽의 모든 것은 진창 속으로 꺼져 들어갔다. 파벨 표도로비치는 말없이 40코페이카에 증기선 사무소까지 가는 짐수레를 빌렸다. 마부들은 구두장이들처럼 어둠 속에서 욕설을 퍼부었다. 볼가의 넓은 어둠에서 습기가 몰려왔다. 볼가 건너편은 구두장이들의 전등으로 불타고 있었다.

증기선의 뷔페에서는 유대인 중개상 무리가 술을 마시고 있었다. 원숭이털 망토를 입은 젊은 여자가 그 무리를 이끌며 보드카를 따랐다. 그 무리는 세 번째 기적 뒤에 떠났다. 증기선은 불빛을 낮췄다. 바람이 볼가의 공간을 더듬기 시작했고, 습기가 선실 안으로 기어들어왔다. 우람한 여자 뷔페 종업원이 베즈데토프 형제에게 식탁을 차려 주면서, 뷔페 식탁 위에 침상을 펴 주면서, 자기에게서 122루블을 훔쳐 간 애인 이야기를 했다. 증기선은 구두 가죽 냄새를 품고 나아갔다. 갑판 승객들은 추위 때문에 강도 노래를 불렀다.

회색 아침의 축축한 추위 속에서 풍경들이 나타났다. 14세기가 아니라, 어느 선사시대라도 좋을 풍경이었다. 사람이 손대지 않은 강둑, 소나무, 전나무, 자작나무, 바위, 점토, 물. 유럽식 연대 계산으로 14세기는 뗏목, 나룻배, 마을들로 나타났다. 정오 무렵 증기선은 러시아의 브뤼헤, 17~18세기의 도시로 들어왔다. 도시는 교회들과 크렘린과 1920년 화재의 폐허를 이끌고 볼가로 내려와 있었다. 그때, 20년에, 이 도시의 좋은 중앙 절반이 불탔다. 불은 군郡 위원회에서 시작되었다. 불을 껐어야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부르주아들을 잡아 인질로 감옥에 가두기 시작했다. 부르주아들은 사흘 동안 잡혔다. 도시가 탄 시간과 정확히 같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소방 펌프와 주민들의 개입 없이 불이 다 타 버렸을 때, 그들은 부르주아 잡기를 그만두었다.

골동상들이 증기선에서 내린 바로 그때, 도시 위에는 정신이 나간 갈까마귀 떼가 날고 있었고, 도시는 종루에서 끌어내려지는 종들의 유례없는 신음으로 앓고 있었다. 도시 위로 비가 조금 뿌릴 듯했다.

파벨 표도로비치는 말없이 스쿠드린 다리로, 야코프 카르포비치 스쿠드린의 집으로 가는 타란타스를 빌렸다. 마부는 옛 포장도로의 약초 같은 카밀레 위를 덜컹거리며 달렸고, 도시의 종 소식을 들려주었다. 그는 도시의 많은 이들이 종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일과 그 낙하의 굉음을 기다리는 일 때문에 신경장애를 겪었다고 설명했다. 총소리를 기다리느라 눈을 감아 버리는 미숙한 사수들에게 일어나는 일과 같다는 것이었다.

베즈데토프 형제는 야코프 카르포비치를 마당에서 만났다. 노인은 난로에 땔 나뭇가지를 패고 있었다. 마리야 클리모브나는 외양간에서 거름을 내던지고 있었다. 야코프 카르포비치는 베즈데토프 형제를 곧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알아보고는 기뻐했다. 웃기 시작했고, 끙끙거렸고, 씩씩댔다. 그가 말했다.

“아아, 구매자들이군! 내가 당신들을 위해 프롤레타리아트 이론을 하나 생각해 냈소!”

마리야 클리모브나는 손을 앞치마 밑에 감춘 채 허리를 굽혀 손님들에게 인사하고, 반갑게 노래하듯 말했다.

“귀한 손님들, 어서 오세요, 오래 기다린 손님들!”

카테리나는 허벅지까지 치마를 걷어붙이고 흙투성이가 된 채, 옷을 갈아입으러 황급히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집 지붕들 위로, 까마귀 떼를 흩어 놓으며, 떨어지는 종이 포효했다. 마리야 클리모브나는 성호를 그었다. 종은 대포보다 더 큰 소리로 쿵 하고 울렸고, 마당 쪽 창문의 유리들이 짤랑거렸다. 정말 신경이 상할 만했다.

모두 집 안으로 들어갔다. 마리야 클리모브나는 부집게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녀의 발밑에서 사모바르가 노래했다. 카테리나는 아가씨처럼 차려입고 손님들에게 나와 커트시를 했다. 노인은 펠트 장화를 벗고 맨발로 손님들 주위를 걸어 다니며 비둘기처럼 구구거렸다. 골동상들은 길의 먼지를 씻고, 말없이 나란히 식탁에 앉았다. 손님들의 눈은 죽은 자들처럼 비어 있었다. 마리야 클리모브나는 건강을 묻고, 17세기의 음식들을 식탁 위에 차렸다. 손님들은 코냑 병을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식탁에서는 야코프 카르포비치 혼자만 말했다. 그는 히히 웃고, 흠흠거렸으며, 오래된 물건을 어디로 찾으러 가야 하는지, 어디에서 베즈데토프 형제를 위해 그것을 봐 두었는지 알려 주었다.

파벨 표도로비치가 물었다.

“그런데 당신은 계속 버티실 겁니까? 안 파십니까?”

노인은 안절부절못하며 히히 웃고, 울먹이듯 대답했다.

“그래, 그래, 그렇소. 못 해, 아니, 못 해. 내 것은 내 곁에 있어야지, 나한테도 필요할 테니까. 살아 보면 알겠지, 그래, 크흐…… 차라리 당신들에게 이론을…… 나는 또 당신들보다 오래 살 거요!”

점심 뒤 손님들은 잠을 자러 누웠다. 삐걱거리는 문을 닫고 깃털 이불 위에 누워, 오래된 은잔으로 말없이 코냑을 마셨다. 저녁 무렵 손님들은 만취했다. 하루 종일 카테리나는 성가를 불렀다. 야코프 카르포비치는 손님들의 문 근처를 돌아다녔다. 손님들이 나오거나 말을 하기를 기다렸다가, 그들에게 들어가 이야기를 나누려는 것이었다. 하루는 까마귀들에게 실려 갔다. 해질 무렵 내내 까마귀들은 몹시 소란을 피우며 하루를 훔쳐 갔다. 황혼은 물장수 통들에 실려 퍼졌다.

손님들이 차를 마시러 나왔을 때, 그들의 눈은 완전히 죽어 있었다. 멍하고 깜빡이지 않았다. 손님들은 말없이 나란히 식탁에 앉았다. 야코프 카르포비치는 그들의 귀 가까이에 있기 위해 그들 뒤쪽에 자리를 잡았다. 손님들은 프록코트 단추를 풀고 받침 접시로 차를 마셨으며, 차에 코냑을 부었다. 예카테리나 시대의 장식 스탠드가 식탁 옆에서 그을음을 냈다. 식탁은 둥글었고, 붉은 목재였다.

야코프 카르포비치는 숨이 막힐 듯, 자기 생각을 서둘러 다 말하려 애쓰며 말했다.

“내가 당신들을 위해 생각을 준비했소, 크흐, 생각을…… 프롤레타리아트에 관한 마르크스의 이론은 곧 잊혀야 하오. 왜냐하면 프롤레타리아트 자체가 사라져야 하기 때문이오. 바로 이것이 내 생각이오! 그러니 혁명 전체도 아무 쓸모가 없지. 역사의 오류요, 크흐. 왜냐하면 두세 세대만 더 지나면 프롤레타리아트는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오. 첫째로 미국에서, 영국에서, 독일에서 말이오. 마르크스는 자기 이론을 근육노동이 번성하던 시대에 썼소. 이제 기계노동이 근육을 대체하오. 바로 이것이 내 생각이오. 곧 기계 곁에는 엔지니어들만 남을 것이고, 프롤레타리아트는 사라질 것이오. 프롤레타리아트는 전부 엔지니어들로 변할 것이오. 바로, 크흐, 이것이 내 생각이오. 그런데 엔지니어는 프롤레타리아가 아니오. 왜냐하면 사람은 교양이 높을수록 허세 부리는 욕구가 적어지고, 모든 사람과 물질적으로 똑같이 사는 편이 더 편해지기 때문이오. 물질적 재화를 평준화해서 사상을 해방시키는 거지, 그래. 저 영국인들을 보시오. 부자나 가난한 자나 똑같이 재킷을 입고 자고, 똑같은 집, 3층짜리 집에서 살지 않소. 그런데 우리한테서는 예전에는 상인과 농민을 비교해 보시오. 상인은 사제처럼 차려입고 궁전 같은 집에서 살았소. 나는 맨발로 다닐 수 있소. 그래도 내가 더 나빠지는 것은 아니오. 당신들은 말하겠지, 크흐, 그래, 착취는 남을 것이라고? 어떻게 남겠소? 착취할 수 있는 농민은, 짐승 같으니까, 기계 곁에 들여보낼 수 없소. 그는 기계를 망가뜨릴 것이오. 그런데 기계는 수백만의 값어치가 있소. 기계 곁에서 사람 하나당 5코페이카를 아끼는 것보다 기계가 더 비싸오. 사람은 기계를 알아야 하오. 기계에는 아는 사람이 필요하오. 그리고 예전의 백 명 대신 단 한 명이면 되오. 그런 사람은 귀하게 돌보게 될 것이오. 프롤레타리아트는 사라질 것이오!”

손님들은 차를 마시며 깜빡이지 않는 눈으로 들었다. 야코프 카르포비치는 꿀꿀거리고, 가래를 뱉고, 서둘렀다. 그러나 자기 생각을 끝까지 전개하지 못했다. 이반 카르포비치가 왔기 때문이다. 형제, 오흘로몬, 스쿠드린에서 오조고프로 개명한 사람. 그는 절망적인 누더기를 말쑥하게 입고, 머리를 말끔하게 깎았으며, 맨발에 고무 덧신을 신고 있었다. 그는 모두에게 정중히 인사하고 한쪽에 말없이 앉았다. 아무도 그의 인사에 답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미친 사람의 얼굴이었다. 야코프 카르포비치는 안절부절못하고 동요했다.

마리야 클리모브나가 탄식하듯 말했다.

“형님은 대체 왜 오셨어요?”

오흘로몬이 대답했다.

“반혁명의 면면을 보러 왔소, 누이.”

“여기 무슨 반혁명이 있다고요, 형님?”

“누이에 관해서라면, 누이는 생활양식상의 반혁명이오.” 오흘로몬 오조고프가 조용하고 미친 듯이 말했다. “하지만 누이는 나 때문에 울었소. 그러니 누이 안에는 공산주의의 싹이 있소. 하지만 야코프 형님은 한 번도 운 적이 없소. 그래서 나는 내 시절에 그를 벽에 세워 놓고 총살하지 않은 것을 매우 후회하오.”

마리야 클리모브나는 한숨을 쉬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드님은 어때요?”

“내 아들.” 오흘로몬은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내 아들은 대학을 마쳐 가고 있고, 나를 잊지 않소. 방학 때면 내 국가로 찾아와 난로 곁에서 몸을 녹이오. 나는 그에게 혁명시를 지어 주오.”

“부인은요?”

“나는 그 여자와 만나지 않소. 그 여자는 여성부를 맡고 있소. 우리한테 생산직 노동자 둘당 책임자가 몇 명인지 아시오?”

“몰라요.”

“일곱 명이오. 보모가 일곱이면 아이가 눈을 잃는다지.”

“그리고 당신들 손님은 역사적 반혁명이오.”

손님들은 납 같은 눈으로 차를 마셨다. 야코프 카르포비치는 보랏빛 분노로 차올라 사탕무처럼 되어 갔다. 그는 형제에게 다가가며 정중함 속에서 히히 웃고, 손을 걷어붙이고, 마치 추위 속에 있는 것처럼 부지런히 두 손을 비볐다.

“아시겠지만, 형님.” 야코프 카르포비치가 아주 정중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목이 쉬어 있었다. “여기서 악마의 어머니한테로 꺼져 주십시오.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실례하오, 야코프 형님. 나는 형님에게 온 것이 아니오. 나는 역사적 반혁명을 보고 그것과 대화하러 온 것이오.” 이반이 대답했다.

“그리고 나는 악마의 어머니한테로 꺼져 달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 여자한테 가지 않겠소!”

파벨 표도로비치 베즈데토프는 천천히 왼쪽 눈의 납빛으로 형제를 바라보고 말했다.

“우리는 유로지비들과는 대화할 수 없소. 안 나가면 스테판에게 목덜미를 잡아 내쫓으라고 하겠소.”

스테판도 형제와 똑같이 눈을 깜빡이고 의자 위에서 자세를 바로잡았다. 마리야 클리모브나는 뺨을 괴고 한숨을 쉬었다. 오흘로몬은 말없이 앉아 있었다. 스테판 표도로비치는 마지못해 식탁에서 일어나 오흘로몬에게 갔다. 오흘로몬은 겁먹은 듯 몸을 일으키고 문 쪽으로 뒷걸음질쳤다. 마리야 클리모브나는 다시 한 번 한숨을 쉬었다. 야코프 카르포비치는 히히 웃었다. 스테판이 방 한가운데에서 멈추었다. 오흘로몬은 문가에서 멈춰 서서 얼굴을 찡그렸다. 스테판이 오흘로몬 쪽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오흘로몬은 문밖으로 나갔다. 문밖에서 그는 애원하듯 말했다.

“그렇다면 보드카 살 돈으로 1루블 25코페이카를 주시오.”

스테판은 파벨을 바라보았다. 파벨이 말했다.

“반 병 살 만큼 내줘.”

오흘로몬은 떠났다. 마리야 클리모브나는 그를 배웅하러 사립문 밖으로 나가 파이 한 조각을 쥐여 주었다.

사립문 밖의 밤은 검고 움직임이 없었다. 오흘로몬 오조고프는 어두운 골목들을 지나 볼가 쪽으로 갔다. 수도원들을 지나고, 공터들을 지나고, 오직 그만 아는 오솔길들로 갔다. 밤은 몹시 검었다. 이반은 혼자 중얼거리며 자신과 이야기했다. 그는 산업콤비나트의 벽돌공장으로 내려갔다. 거기서 그는 울타리 틈으로 기어 들어가 채석장의 구덩이들 사이를 걸어갔다. 구덩이들 가운데에는 소성로가 타고 있었다. 이반은 땅속으로, 화덕 구덩이로 기어 들어갔다. 그곳은 몹시 따뜻하고 숨이 막혔다. 덮개 틈들 사이로 붉은 빛이 새어 나왔다.

여기 땅바닥에는 넝마주이들이 누워 있었다. 머리카락이 양털처럼 엉킨 자들, 이반 오조고프의 공산주의자들, 산업콤비나트와 무언의 계약을 맺은 사람들. 그들은 이 벽돌공장의 화덕, 벽돌을 굽는 그 불을 무료로 지폈다. 그리고 그들은 화덕 곁에서 무료로 살았다. 자기 시간을 전시공산주의 시대에 멈춰 세운 사람들, 이반 오조고프를 자기들의 의장으로 뽑은 사람들이었다. 짚 위, 식탁 노릇을 하는 널빤지 곁에는 셋이 누워 있었다. 쉬고 있는 넝마주이들이었다. 오조고프는 옆에 앉아, 오한에 떨 때 몸을 녹이며 사람들이 떨듯이 몸을 떨었다. 그리고 돈과 파이 조각을 식탁 위에 놓았다.

“울었나?” 넝마주이 하나가 물었다.

“아니, 울지 않았어.” 오조고프가 대답했다.

잠시 침묵했다.

“네가 가야 한다, 오그네프 동지.” 오조고프가 말했다.

수염과 콧수염이 양털처럼 엉킨 두 사람이 더 지하의 점토 속으로 기어 들어왔다. 찢어진 빈곤 속에 있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누워서 돈과 빵을 널빤지 위에 올려놓았다. 가장 어두운 온기 속에 누워 있던, 마흔 살쯤 된 — 이미 노인인 — 오그네프가 널빤지 쪽으로 기어와 돈을 세고, 지하에서 위로 기어 올라갔다. 나머지 사람들은 침묵 속에 앉거나 누워 있었다. 방금 들어온 사람 하나만이 내일 아침부터 장작을 실은 바지선을 하역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그네프는 곧 보드카 병들을 들고 돌아왔다. 그러자 오흘로몬들은 널빤지 쪽으로 다가와 머그잔을 꺼내고 둥글게 앉았다. 오그네프 동지가 보드카를 따랐다. 그들은 잔을 부딪치고 말없이 마셨다.

“이제 내가 말하겠다.” 오조고프가 말했다.

“라이트 형제라는 형제들이 있었다. 그들은 하늘로 날아오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들은 하늘에서 떨어져 땅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져 죽었다. 그들은 죽었지만, 사람들은 그들의 일을 버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하늘에 매달렸다. 그리고 사람들은 — 난다, 동지들. 그들은 새처럼, 독수리처럼 땅 위를 난다! 레닌 동지는 라이트 형제처럼 죽었다. 나는 우리 도시 최초의 집행위원회 의장이었다. 1921년에 모든 것이 끝났다. 도시 전체에서 진짜 공산주의자는 오직 우리뿐이다. 그리고 이제 우리에게 남은 자리는 지하뿐이다. 나는 이곳 최초의 공산주의자였고, 살아 있는 한 그렇게 남을 것이다. 우리의 사상은 죽지 않는다. 얼마나 대단한 사상들이었나! 이제 아무도 그것을 기억하지 않는다, 동지들, 우리를 제외하고는. 우리는 라이트 형제와 같다!”

오그네프 동지가 두 번째 보드카를 한 잔씩 따랐다. 그리고 오그네프는 오조고프의 말을 끊었다.

“이제 내가 말하겠소, 의장! 얼마나 대단한 일들이 있었나! 어떻게 싸웠던가! 나는 빨치산 부대를 지휘했지. 우리는 숲을 간다. 하루를 가고, 밤을 가고, 또 하루를 가고, 또 밤을 간다. 그리고 새벽에 우리는 듣는다 — 기관총……”

포자로프가 오그네프의 말을 끊었다. 그는 오그네프에게 물었다.

“그런데 넌 어떻게 베냐? 벨 때 엄지손가락을 어떻게 잡아? 굽혀, 아니면 곧게? 보여 봐!”

“칼날 쪽으로. 곧게.” 오그네프가 대답했다.

“다들 칼날 쪽으로 한다고 하지. 보여 봐. 여기, 칼로 보여 봐!”

오그네프는 오흘로몬들이 빵을 자르는 구두칼을 들고, 자기가 어떻게 엄지를 칼날 위에 놓는지 보여 주었다.

“넌 잘못 베는 거야!” 포자로프가 외쳤다. “나는 벨 때 사브르를 그렇게 잡지 않아. 나는 면도칼처럼 베지. 줘, 보여 주마! 넌 잘못 베는 거야!”

“동지들!” 오조고프가 조용히 말했다. 그의 얼굴은 미친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우리는 오늘 사상에 대해 말해야 한다. 위대한 사상에 대해 말해야지, 베는 법에 대해 말해서는 안 된다!”

넷째 사람이 오조고프의 말을 끊고 외쳤다.

“오그네프 동지! 넌 제3사단에 있었고, 나는 제2사단에 있었어. 너희가 신키 마을 근처 도하를 놓쳤던 거 기억하지!?”

“우리가 놓쳤다고!? 아니, 너희가 놓쳤지, 우리가 아니라!?”

“동지들!” 오조고프가 다시 조용하고 미친 듯이 말했다. “우리는 사상에 대해 말해야 한다!”

자정 무렵 화덕 곁 지하의 사람들은 잠들어 있었다. 벽돌공장 화덕 곁 지하에서 살아갈 권리를 찾아낸 이 넝마주이들은 한 덩어리로 무너져 잠들었다. 한 사람의 머리는 다른 사람의 무릎 위에 있었고, 그들은 자기 누더기로 몸을 덮고 있었다. 그들의 의장 이반 오조고프가 마지막으로 잠들었다. 그는 오랫동안 화덕 아가리 곁에서 종이 한 장을 들고 누워 있었다. 그는 배를 깔고 누워 종이를 땅 위에 올려놓았다. 연필을 침으로 적셨다. 그는 시를 쓰고 싶었다.

“우리는 세계적인 것을 들어 올렸다.” 그는 쓰고 지웠다.

“우리는 세계적인 것을 불태웠다.” 그는 쓰고 지웠다.

“도둑의 손을 녹이고 있는 너희.” 그는 쓰고 지웠다.

“너희는 하인이거나, 아니면 바보들이다.” 그는 쓰고 지웠다.

말들이 그에게 오지 않았다. 그는 낙서로 뒤덮인 종이 위에 머리를 떨어뜨리고 잠들었다. 이곳에는 전시공산주의 소집과 1921년 해산의 공산주의자들이 잠들어 있었다. 멈춰 버린 사상의 사람들, 미치광이들과 술꾼들. 자기 지하와 바지선 하역 노동, 장작 톱질 노동 속에서 가장 엄격한 형제애, 가장 엄격한 공산주의를 만들어 낸 사람들. 자기 것이라곤 아무것도 갖지 않은 사람들. 돈도, 물건도, 아내도. 사실 아내들은 그들에게서 떠나갔다. 그들의 꿈, 그들의 광기, 그들의 알코올 때문에. 지하에는 몹시 숨 막히고, 몹시 따뜻하고, 몹시 가난했다.

자정은 이 지역의 역사처럼 움직이지 않고 검게 도시 위를 지나갔다.

자정에 중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젊은 복원가 스테판 표도로비치는 카테리나를 멈춰 세웠다. 그는 그녀의 어깨를 만졌다. 말처럼 단단한 어깨였다. 그는 술 취한 손으로 그것을 더듬고 조용히 말했다.

“너, 거기, 네…… 자매들한테 말해. 다시 마련하자고. 장소를 찾으라고……”

카테리나는 순종적으로 서 있었고, 순종적으로 속삭였다.

“좋아요, 말할게요.”

그 순간 아래층에서는 야코프 카르포비치가 파벨 표도로비치에게 문명 이론을 전개하고 있었다. 응접실 둥근 탁자 위에는 유리와 청동으로 된 프리깃 모형이 서 있었다. 그 프리깃은 술을 채우도록 개조되어 있었다. 프리깃에서 꼭지를 통해 잔으로, 그리고 잔에서 인간의 목구멍으로 흘러드는 알코올을 통해, 이 프리깃을 타고 환상 속을 여행하기 위한 물건이었다. 이 프리깃은 18세기의 물건이었다. 프리깃은 코냑으로 가득 차 있었다. 파벨 표도로비치는 침묵 속에 앉아 있었다. 야코프 카르포비치는 파벨 표도로비치 주위를 부산히 맴돌고, 다리로 비둘기처럼 제자리걸음을 하며, 바지 구멍으로 탈장을 받치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크흐.” 그가 말했다. “당신 생각에는 무엇이 세계를 움직이고, 문명과 과학과 증기선을 움직입니까? 자, 무엇입니까?”

“자, 무엇입니까?” 파벨 표도로비치가 되물었다.

“당신 생각에는 무엇입니까? 노동? 지식? 굶주림? 사랑? 아니오! 문명을 움직이는 것은 — 기억입니다! 이런 그림을 상상해 보시오. 내일 아침 사람들에게서 기억이 사라진다. 본능과 이성은 남아 있다. 그런데 기억은 없다. 나는 침대에서 깨어난다. 그리고 침대에서 떨어진다. 왜냐하면 나는 기억으로 공간을 알고 있기 때문이오. 그런데 기억이 없으면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오. 의자 위에는 바지가 놓여 있다. 나는 춥다. 하지만 그 바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른다. 나는 내가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 모른다. 손으로 걸어야 하는지, 네 발로 기어야 하는지. 나는 어제의 날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을 모르니까. 엔지니어는 자기 고등수학을 전부 잊어버렸고, 모든 전차와 기관차는 멈춰 선다. 사제들은 교회로 가는 길을 찾지 못할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오. 그래, 크흐! 내게 본능은 남아 있다. 본능도 기억 비슷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치고. 나는 무엇을 먹어야 할지 모른다. 의자인지, 밤부터 의자 위에 남아 있던 빵인지. 그리고 여자를 보면 내 딸을 아내로 받아들일 것이오.”

탁자 위의 알코올 프리깃은 북동풍처럼 야코프 카르포비치의 생각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 프리깃과 함께, 응접실의 붉은 목재 속에는 18세기부터 러시아의 볼테르가 걸려 있었다. 18세기의 창밖으로는 소비에트 군郡의 밤이 가고 있었다.

또 한 시간이 지나 집 스쿠드린가는 잠들었다. 그러자 침실의 신 침묵 속에서 야코프 카르포비치의 슬리퍼가 마리야 클리모브나의 침상 쪽으로 철퍽거리며 갔다. 마리야 클리모브나, 고대의 노파는 자고 있었다. 야코프 카르포비치의 손에 든 촛불이 떨렸다. 야코프 카르포비치는 히히 웃었다. 야코프 카르포비치는 마리야 클리모브나의 양피지 같은 어깨를 건드렸다. 그의 눈은 쾌락 속에서 눈물졌다. 그가 속삭이기 시작했다.

“마류슈카, 마류슈카, 이것이 삶이야, 이것이 삶이야, 마류슈카.”

18세기는 볼테르적 어둠 속으로 꺼져 들어갔다.

다음 날 아침 도시 위에서 종들이 죽어 가며 울부짖었다. 베즈데토프 형제는 일찍 깨어났지만, 마리야 클리모브나는 그보다 더 일찍 일어났고, 차에는 버섯과 양파를 넣은 뜨거운 파이가 준비되어 있었다. 야코프 카르포비치는 자고 있었다. 카테리나는 잠에 취해 있었다. 차는 말없이 마셨다. 날은 회색이고 느리게 밝았다. 차 뒤에 베즈데토프 형제는 일하러 나갔다. 파벨 표도로비치는 종이에 가야 할 집과 가문의 작은 목록을 만들었다. 거리들은 군郡 포장도로와 돌담, 담 밑의 잡초, 화재 폐허 위의 딱총나무, 교회, 종루들의 침묵 속에 누워 있었다. 그리고 종들이 울기 시작하면 그 침묵 속에서 먹먹해졌고, 종들이 포효하며 떨어지면 침묵으로 외쳤다.

베즈데토프 형제는 집들에 말없이, 나란히 들어가서 눈먼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1

스타라야 로스토프스카야 거리에 한쪽으로 기울어진 집이 서 있었다. 그 집에서는 미시킨의 과부가 죽어 가고 있었다. 과부는 일흔 살 노파였다. 집은 거리와 비스듬히 서 있었다. 그 집은 거리가 생기기 전에 지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집은 톱질한 목재가 아니라 도끼로 다듬은 목재로 지어졌다. 러시아 목수들이 아직 톱을 쓰지 않고 오직 도끼 하나로 집을 짓던 시대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표트르 시대 이전이었다. 당시 기준으로 그 집은 보야르의 집이었다. 그 집에는 그날들로부터 보존된 타일 난로와 타일 침상이 있었다. 타일들은 양들과 보야르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황토와 유약으로 덮여 있었다.

베즈데토프 형제는 두드리지 않고 사립문 안으로 들어갔다. 미시킨 노파는 돼지 먹이통 앞 흙둑에 앉아 있었다. 돼지는 끓는 물에 데친 쐐기풀을 먹이통에서 먹고 있었다. 베즈데토프 형제는 노파에게 인사하고, 말없이 그녀 곁에 앉았다. 노파는 당황스럽고, 기쁘고, 겁먹은 듯 인사에 답했다. 그녀는 찢어진 펠트 장화에 무명 치마를 입고, 페르시아산 알록달록한 숄을 두르고 있었다.

“자, 어떻습니까, 파시겠습니까?” 파벨 베즈데토프가 물었다.

노파는 손을 숄 밑에 감추고, 돼지가 있는 땅으로 눈을 내리깔았다. 파벨과 스테판 표도로비치는 서로를 바라보았고, 스테판은 눈을 깜빡였다. 팔 것이다. 보라색 손톱이 달린 뼈 같은 손으로 노파는 입가를 닦았다. 손이 떨렸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노파가 말하고, 죄지은 듯 형제들을 바라보았다. “우리 할아버지들이 살았고 우리에게 물려주었고, 증조부들도 그랬고, 시대까지도 사라져 버릴 만큼 오래되었는데…… 그런데 내 세입자가 죽고 나니, 하늘나라 가기를, 정말 견딜 수가 없게 되었어요. 그는 방값으로 한 달에 3루블을 내고, 등유도 사 주었고, 내게는 충분했지요…… 그리고 내 아버지도 어머니도 이 침상 위에서 돌아가셨어요……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늘나라 가기를, 세입자는 조용한 사람이었고, 3루블을 냈고, 내 손에서 죽었어요……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요. 몇 밤이나 잠을 못 잤어요. 당신들이 내 평안을 흐트러뜨렸어요.”

파벨 표도로비치가 말했다.

“난로와 침상에 타일이 120개 있습니다. 약속한 대로, 타일 하나에 25코페이카. 그러면 한 번에 30루블입니다. 평생 충분할 겁니다. 우리가 난로공을 보내겠습니다. 그가 그것들을 빼내고 그 자리에 벽돌을 넣고, 회칠도 할 겁니다. 모두 우리 비용입니다.”

“값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노파가 말했다. “당신들은 후하게 값을 주고 있어요. 이곳에서는 아무도 그런 값을 안 줄 거예요…… 그리고 나 말고 누구에게 그것들이 필요하겠어요? 다만 부모님만 아니었더라면…… 나는 외로운 사람이라……”

노파는 생각에 잠겼다. 오래 생각했다. 혹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던가? 그녀의 눈은 보지 않는 눈이 되었고, 눈구멍 안으로 꺼져 들어갔다. 돼지는 쐐기풀을 다 먹고 주둥이로 노파의 펠트 장화를 툭툭 찔렀다. 베즈데토프 형제는 노파를 사무적이고 엄격하게 바라보았다. 노파는 다시 떨리는 손으로 입가를 닦았다. 그러고는 죄지은 듯 웃었고, 마당과 텃밭의 비뚤어진 작은 울타리들 쪽을 죄지은 듯 둘러보았다. 베즈데토프 형제 앞에서 죄지은 듯 눈을 내리깔았다.

“그럼, 그렇게 하지요. 하느님이 당신들에게 복 주시기를!” 노파가 말하고 파벨 표도로비치에게 손을 내밀었다. 서툴고 당황했으나, 제대로 된 상거래 전통이 요구하는 방식 그대로였다. 그녀는 타일들을 손에서 손으로 넘겨주었다.

2

성당 광장에는 자기 소유였던 집의 반지하에 지주 투치코프 가문이 살고 있었다. 예전의 그들 영지는 유제품 공장이 되었다. 이 지하에는 어른 둘과 아이 여섯이 살았다. 두 여자는 늙은 투치코바와 그녀의 며느리였다. 그 며느리의 남편, 전직 장교는 1925년에 결핵으로 죽기 직전 스스로 총을 쏘았다. 늙은 대령은 1915년 카르파티아에서 전사했다. 아이 넷은 며느리 이름인 올가 파블로브나의 아이들이었고, 나머지 둘은 반혁명 혐의로 총살된 젊은 투치코프의 아이들이었다. 올가 파블로브나는 유모였고, 저녁이면 영화관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다. 그리고 서른 살의 그녀는 노파를 닮아 있었다.

베즈데토프 형제가 왔을 때, 그 지하는 모든 가난한 집이 그러하듯 잠겨 있지 않았다. 그들을 맞은 것은 올가 파블로브나였다. 그녀는 들어오라고 고개를 끄덕이고, 이른바 식당으로 앞서 뛰어가 침대를 가렸다. 남들이 이불 아래에 침구가 없다는 것을 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올가 파블로브나는 알렉산드르 엠파이어 양식의 붉은 목재 화장대에 달린 삼면거울을 들여다보았다.

형제들은 사무적이고 능동적이었다. 스테판은 의자들을 다리가 위로 가게 들어 올리고, 소파를 밀어내고, 침대의 매트리스를 들어 올리고, 서랍장의 서랍들을 빼내 붉은 목재를 살폈다. 파벨은 미니어처화, 구슬 세공, 도자기를 뒤졌다. 젊은 노파 올가 파블로브나에게는 처녀 같은 움직임의 가벼움과 부끄러워하는 능력이 남아 있었다. 복원가들은 방 안에서 말없는 난장판을 수리하듯 일으켰고, 구석들에서 더러움과 빈곤을 끄집어냈다. 여섯 아이는 이 비범한 일에 호기심을 느껴 어머니의 치마로 달라붙었고, 큰아이 둘은 약탈에 협력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어머니는 아이들 때문에 부끄러워했다. 어린아이들은 치마 곁에서 훌쩍이며, 어머니가 부끄러워하는 일을 방해했다.

스테판은 의자 세 개와 안락의자 하나를 한쪽으로 치워 놓고 말했다.

“구색이 안 맞습니다. 세트군요.”

“뭐라고 하셨나요?” 올가 파블로브나가 되물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무력하게 소리쳤다. “얘들아, 제발 여기서 나가렴! 너희가 있을 곳이 아니야. 부탁이다……”

“구색이 안 맞습니다. 세트입니다.” 스테판 표도로비치가 말했다. “의자는 셋이고, 안락의자는 하나입니다. 물건은 좋습니다. 다투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큰 수리가 필요합니다. 직접 보시다시피, 습한 곳에 사시니까요. 게다가 세트를 모아야 합니다.”

복원가가 말하자 아이들은 조용해졌다.

“네.” 올가 파블로브나가 말하고 얼굴을 붉혔다. “전에는 다 있었어요. 하지만 모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일부는 우리가 떠날 때 영지에 남았고, 일부는 농민들한테 흩어졌고, 일부는 아이들이 부쉈고, 또…… 이 습기 때문에, 제가 헛간에 가져다 놓았어요……”

“아마 24시간 안에 떠나라는 명령을 받았겠지요?” 스테판 표도로비치가 물었다.

“네, 우리는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밤에 떠났어요. 우리는 예견했어요……”

파벨 표도로비치가 대화에 끼어들어 올가 파블로브나에게 물었다.

“프랑스어와 영어를 이해하십니까?”

“오, 네.” 올가 파블로브나가 대답했다. “저는 말할 수 있어요……”

“이 작은 미니어처들은 부셰와 코즈웨이입니까?”

“오, 네! 이 미니어처들은……”

파벨 표도로비치는 형제를 바라보고 말했다.

“각각 25루블씩 줄 수 있겠군.”

스테판 표도로비치는 엄격히 형제의 말을 끊었다.

“가구 세트, 반 세트라도 모으시면, 당신의 가구를 전부 사겠습니다. 농민들에게 있다고 말씀하셨으니, 그들에게 가 볼 수 있겠군요.”

“오, 네!” 올가 파블로브나가 대답했다. “반 세트라면…… 우리 마을까지는 13베르스타예요. 거의 산책이지요…… 반 세트는 모을 수 있을 거예요. 오늘 마을에 가서 내일 대답을 드릴게요. 하지만 몇몇 물건이 부서져 있다면……”

“그건 상관없습니다. 값을 깎으면 됩니다. 그리고 대답만 하실 게 아니라, 바로 가져오십시오. 내일 모두 이곳에서 받아 포장할 수 있도록. 소파는 15루블, 안락의자는 7루블 50코페이카, 의자는 하나에 5루블. 포장은 우리가 합니다.”

“오, 네, 오늘 가겠습니다. 우리 마을까지는 겨우 13베르스타니까요. 거의 산책이에요…… 지금 곧 가겠습니다.”

큰아이가 말했다.

“Maman, 그러면 제게 구두를 사 주실 거예요?”

창밖은 회색의 날이었고, 도시 밖에는 러시아의 시골길들이 놓여 있었다.

3

카라진 나리 뱌체슬라프 파블로비치는 식당 소파에 누워 있었다. 그는 더 이상 닳을 수 없을 만큼 닳은 다람쥐털 외투를 덮고 있었다. 그의 식당도, 그와 부인의 서재 겸 침실도, 우편마부의 아파트 안에 자리 잡은 진기한 물건들의 방이었다. 베즈데토프 형제는 문턱에 서서 인사했다. 카라진 나리는 그들을 오래 바라보다가 고함쳤다.

“나가! 사기꾼들. 여기서 나가!”

형제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카라진 나리는 피가 몰려 얼굴이 붉어졌고, 다시 고함쳤다.

“내게서 꺼져라, 못된 놈들아!”

그 고함에 아내가 나왔다. 베즈데토프 형제는 카라지나 부인에게 인사하고 문밖으로 나갔다.

“나딘, 나는 저 역겨운 놈들을 볼 수 없소.” 카라진 나리가 아내에게 말했다.

“좋아요, 뱌체슬라프. 당신은 서재로 가세요. 제가 그들과 이야기할게요. 아, 당신도 다 아시잖아요, 뱌체슬라프!” 카라지나 부인이 대답했다.

“그들이 내 휴식을 방해했소. 좋소, 서재로 가겠소. 다만 제발 저 노예들과 친하게 굴지는 마시오.”

카라진 나리는 외투를 질질 끌며 방을 나갔다. 그 뒤를 따라 베즈데토프 형제가 방으로 들어와 다시 한 번 정중히 인사했다.

“당신들의 러시아 태피스트리와, 또 작은 책상의 가격을 알려 주십시오.” 파벨 표도로비치가 말했다.

“앉으세요, 신사분들.” 카라지나 부인이 말했다.

서재 문이 벌컥 열렸고, 문밖으로 나리의 머리가 튀어나왔다. 카라진 나리는 혹시라도 베즈데토프 형제를 보게 될까 봐 창문 쪽을 바라보며 외쳤다.

“나딘, 저들에게 앉는 것을 허락하지 마시오! 저들이 예술의 아름다움을 이해할 수 있겠소! 고르게 하지 마시오! 우리가 팔 필요가 있다고 여기는 것만 팔아요. 도자기, 도자기 시계, 청동을 파시오!”

“우리는 그냥 가도 됩니다.” 표트르 표도로비치가 말했다.

“아, 기다리세요, 신사분들. 뱌체슬라프 파블로비치가 진정하게 해 주세요. 그는 완전히 병들었어요.” 카라지나 부인은 무력하게 식탁에 앉으며 말했다. “우리에게는 몇 가지 물건을 꼭 팔 필요가 있어요. 아, 신사분들!…… 뱌체슬라프 파블로비치, 부탁이에요, 문을 닫으세요. 우리 말을 듣지 마세요. 산책이라도 나가세요……”

4—5—7——

저녁이 되어 갈까마귀들이 하루를 찢어 버리고 종들이 울부짖기를 멈추었을 때, 베즈데토프 형제는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었다. 저녁 뒤 야코프 카르포비치 스쿠드린은 출정 준비를 했다. 그의 주머니에는 베즈데토프의 돈과 작은 목록이 있었다. 노인은 챙 넓은 펠트 모자와 양가죽 반외투를 입었고, 발에는 낡은 신발을 신었다. 그는 목수에게, 운반꾼에게, 밧줄과 거적을 구하러 갔다. 산 물건들을 포장하고, 모스크바로 보내기 위해 증기선 선착장으로 옮기도록 지시하러 가는 것이었다. 노인은 일의 한가운데 있었다. 그는 나가며 말했다.

“오흘로몬들에게 운반과 포장을 맡기면 좋을 텐데. 유로지비들이긴 해도 가장 정직한 사람들이거든. 하지만 안 돼. 이반 형제가 허락하지 않을 테니까. 그들의 가장 중요한 혁명가 말이야. 반혁명을 위해 일하게 두지 않을 거야, 히히!”

베즈데토프 형제는 쉬려고 응접실에 자리 잡았다. 땅은 밤으로 넘어갔다. 저녁 내내 사람들이 몰래 마리야 클리모브나의 창문을 두드렸다. 카테리나가 그들에게 나갔다. 사람들은 거지처럼 아첨하며 제안했다. “말하자면, 당신들 집에 손님들이 살고 있고, 온갖 오래된 물건들을 산다면서요.” 오래된 루블과 코페이카, 고장 난 램프, 낡은 사모바르, 책, 촛대들. 이 사람들은 옛것의 예술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모든 면에서 가난했다. 카테리나는 그들의 구리 램프 따위를 들고 손님들에게 가지 못하게 했고, 물건들은 내일까지 놓고 가라고 권했다. 손님들이 쉬고 나서 볼 것이라고 했다.

저녁은 어두웠다. 해질녘에 바람이 불고, 구름이 몰려오고, 가을의 필연성으로 보슬비가 내렸다. 숲으로, 길의 진창들로, 바로 그 진창들로 — 이날들에 아킴 스쿠드린이 빠져들 그 진창들로 — 올가 파블로브나가 가고 있었다. 노파 같은 얼굴과 처녀처럼 가벼운 움직임을 지닌 여자. 숲은 바람 속에서 술렁였고, 숲은 무서웠다. 이 여자는 숲에 대한 처녀 같은 두려움 속에서 자기 마을로 갔다. 농민들에게 필요 없는 안락의자들을 사기 위해서였다.

저녁 여덟 시쯤 카테리나는 어머니에게 허락을 받았다. 처음에는 성가 연습에 간다고 했고, 그다음에는 친구에게 간다고 했다. 그녀는 차려입고 나갔다. 그녀가 나간 지 30분 뒤, 스테판과 파벨 표도로비치가 비 속으로 나갔다. 카테리나는 다리 너머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스테판 표도로비치가 카테리나의 팔짱을 꼈다. 그들은 골짜기를 따라, 오솔길로,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도시 변두리로 갔다. 그곳에는 스쿠드린가의 노처녀 고모들이 살고 있었다. 카테리나와 베즈데토프 형제는 도둑처럼 마당으로 들어갔고, 도둑처럼 정원으로 갔다. 정원 깊숙한 곳에는 귀먹은 목욕탕이 서 있었다.

카테리나가 두드렸다. 문이 반쯤 열렸다. 목욕탕 안에는 불이 켜져 있었고, 그곳에서는 세 처녀가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처녀들은 창문을 단단히 가리고, 찜질 선반으로 올라가는 계단 곁에 식탁을 가져다 놓았다. 처녀들은 축제처럼 차려입고 엄숙하게 인사했다.

베즈데토프 형제는 주머니에서 모스크바에서 가져온 코냑과 포트와인 병들을 꺼냈다.

처녀들은 식탁 위에 — 종이 위에 — 삶은 소시지, 스프랫, 사탕, 토마토, 사과를 펼쳐 놓았다. 그 무리의 맏이인 클라브디야는 난로 뒤에서 보드카 병을 꺼냈다. 모두가 속삭이며 말했다. 베즈데토프 형제는 나란히 찜질 선반 계단에 앉았다. 선반 위에서는 쇠 램프가 타고 있었다.

한 시간이 지나 처녀들은 취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속삭이며 말했다. 술 취한 사람들, 특히 술 취한 여자들이 아주 많이 취했을 때, 알코올이 만들어 낸 같은 표정들이 얼굴에 오래 고정된다. 클라브디야는 식탁에 앉아 남자처럼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있었다. 그녀의 이빨은 드러나 있었고, 입술은 경멸 속에서 돌처럼 굳었다. 때때로 머리가 손에서 미끄러져 내리면, 그녀는 고통을 느끼지 못한 채 자기 짧게 자른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녀는 담배를 연달아 피우고 코냑을 마셨다. 그녀는 몹시 홍조를 띠고 있었고, 추하게 아름다웠다. 그녀는 역겨워하듯 말했다.

“내가 취했나? 그래, 취했어. 그러라지. 내일 나는 다시 학교에 가서 가르칠 거야. 그런데 내가 뭘 알아? 뭘 가르치지? 그리고 여섯 시에는 내가 소집한 학부모 회의에 갈 거야. 여기 내 수첩이 있어. 여기에 다 적혀 있어…… 나는 마신다. 에라, 될 대로 되라! 그래서 취했어. 당신들은 누구야? 내게 무슨 친척이야? 당신들은 붉은 목재를 사? 옛것을? 우리도 술로 사려고 해? 내가 인생이 뭔지 모른다고 생각해? 아니, 알아. 내게 곧 아이가 생길 거야…… 그런데 그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몰라…… 그래도 좋아, 그래도 좋아!”

클라브디야의 이빨은 드러나 있었고, 눈은 움직이지 않았다. 파벨은 가장 어린 지나에게 부탁하며 달라붙고 있었다. 지나는 흰 머리카락이 곱슬곱슬한, 다리가 짧은 웃음보였다. 그녀는 모두에게서 조금 떨어져 나무토막 위에 앉아, 두 다리를 벌리고 두 손을 허리에 얹고 있었다. 파벨 표도로비치가 말했다.

“너, 지나, 블라우스 안 벗지? 브래지어 안 풀지? 감히 못 하지!”

지나는 크게 웃지 않으려고 자기 입을 막고 웃으며 말했다.

“아니, 보여 줄 건데!”

“아니, 못 보여 줘! 감히 못 해!”

클라브디야가 경멸 속에서 말했다.

“보여 줄 거야. 진카, 저들에게 가슴을 보여 줘! 보게 둬. 원하면 내가 보여 줄까? 당신들은 내가 술주정뱅이라고 생각해? 아니야. 내가 마지막으로 취했던 건 당신들이 왔을 때였어. 그리고 오늘은 취하려고 왔어. 완전히, 완전히 취하려고. 알아? 완전히! 될 대로 되라! 진카, 저들에게 가슴을 보여 줘! 네 콜랴한테는 보여 주잖아…… 원하면 내가 보여 줄까!?”

클라브디야는 자기 블라우스 깃을 잡아찢었다. 처녀들이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카테리나가 분별 있게 말했다.

“클라바, 옷 찢지 마. 그러면 집에서 알게 돼.”

지나는 겨우 다리를 버티고 서 있었다. 그녀는 클라브디야를 끌어안고 두 손을 붙잡았다. 클라브디야는 지나에게 입을 맞추었다.

“찢지 말라고?” 그녀가 물었다. “좋아, 안 찢을게…… 그럼 네가 저들에게 보여 줘…… 보게 둬. 우리는 편견 앞에서 부끄러워하지 않아! 당신들은 붉은 목재를 사지?”

“좋아, 내가 보여 줄게.” 지나가 순종적으로 말하고, 사무적으로 블라우스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네 번째 처녀는 목욕탕 밖으로 나갔다. 토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베즈데토프 형제는 자신들을 구매자로 느꼈다. 그들은 사는 일밖에 할 줄 몰랐다.

목욕탕 뒤에서는 비가 내리고, 나무들이 바람 속에서 술렁였다. 그 시각 올가 파블로브나는 이미 자기 마을에 도착해 있었다. 그녀는 나자르 할아버지가 자기에게 의자들과 안락의자를 팔아 준 것에 행복해하고 감사하며, 나자르의 이즈바 바닥 짚 위에서 잠들고 있었다. 카라진 나리는 그 시각 노년의 히스테리 발작으로 몸부림치고 있었다. 오흘로몬들은 그 시각 화덕 곁 지하에서 미치광이들의 눈과 목소리로 1919년을 확증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공동의 것이었던 해, 빵도 노동도 공동의 것이었던 해, 뒤에는 아무것도 없고 앞에는 사상이 있었던 해, 돈이 없었던 해 — 돈은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시간이 지나 목욕탕은 비었다. 술 취한 여자들과 베즈데토프 형제는 집으로 갔다. 술 취한 처녀들은 자기 집들에서 소리 없이 자기 침상으로 기어들어갔다. 목욕탕 바닥에는 수첩이 하나 떨어져 있었다. 수첩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7일 6시에 학부모 회의 소집.”

“지역위원회 회의에서 산업화 차관에 월급 한 달분을 청약하도록 제안할 것.”

“알렉산드르 알렉세예비치에게 『공산주의 ABC』를 다시 읽도록 제안할 것” —

다음 날 아침 다시 종들이 신음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야코프 카르포비치의 지휘 아래, 붉은 목재의 짐마차들, 예카테리나들, 파벨들, 알렉산드르들이 증기선 선착장으로 질질 끌려갔다. 베즈데토프 형제는 정오까지 잤다. 그 시각 부엌에는 자기들의 오래된 루블, 램프, 촛대의 운명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무리가 모여 있었다.

도시는 러시아의 브뤼헤였다.

제4장

……그리고 바로 이 무렵, 베즈데토프 형제보다 이틀 늦게, 엔지니어 아킴 스쿠드린이 도시로 왔다. 야코프 카르포비치의 막내아들이었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가지 않고, 고모들인 카피톨리나와 림마의 집에 머물렀다. 엔지니어 아킴은 볼일 없이 왔다. 그에게는 자유로운 한 주가 있었다 —

……카피톨리나 카르포브나는 창가로 간다. 지방. 무너져 가는 붉은 벽돌담은 한쪽 모서리에서는 벨베데레가 달린 황토색 집에, 다른 한쪽에서는 교회에 맞닿아 있다. 그 너머에는 광장, 도시 저울, 또다시 교회가 있다. 비가 내린다. 돼지가 웅덩이 냄새를 맡는다. 모퉁이 뒤에서 물장수 수레가 나왔다. 사립문에서 클라브디야가 나왔다. 기름칠한 장화를 신고, 장화까지 내려오는 검은 외투를 입고, 머리에는 푸른 머릿수건을 두르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길을 건너 무너진 담 아래로 걸어가 광장의 모퉁이 너머로 사라졌다. 카피톨리나 카르포브나의 눈은 밝다. 그녀는 오래도록 클라브디야를 뒤따라 바라본다.

벽 너머에서는 림마 카르포브나가 손녀, 맏딸 바르바라의 딸에게 젖을 먹이고 있다. 방은 매우 가난하고 매우 깨끗하다. 정돈되어 있고, 수십 년 동안 자리를 잡은 채다. 늙은 처녀, 처녀-노파의 방이라면 그래야 하듯이. 좁은 침대, 작업대, 재봉틀, 마네킹, 커튼. 카피톨리나 카르포브나는 식당으로 간다.

“림모치카, 내가 손녀에게 젖을 먹일게. 클라브디야가 나가는 걸 봤어. 바랴도 나갔니?”

이 두 노파, 카피톨리나와 림마 카르포브나는 대대로 내려온 명예로운 토박이 소시민 계층의 여자들이자 흰 바느질꾼, 재봉사였다. 그들의 삶은 왼손 손바닥의 생명선처럼 단순했다. 자매는 한 살 차이였고, 카피톨리나가 언니였다. 카피톨리나의 삶은 소시민 도덕의 품위로 가득했다. 그녀의 전 생애는 도시 전체의 눈과 도시 전체의 규칙이 내려다보는 손바닥 위에서 지나갔다. 그녀는 존경받는 소시민이었다. 도시 전체뿐 아니라 그녀 자신도 알고 있었다. 자기의 모든 토요일은 철야기도에서 지나갔고, 모든 날들은 블라우스와 셔츠, 수천 벌의 셔츠에 메레시카와 장식을 놓으며 숙여져 있었다는 것을. 낯선 남자가 단 한 번도 그녀에게 입 맞춘 적이 없다는 것을. 그리고 오직 그녀만이 알고 있었다. 삶이라는 발효된 포도주의 그 생각들, 그 고통, 심장에 주름을 놓는 그것들을. 삶에는 젊음도 있었고, 청춘도 있었고, 여자의 가을도 있었다. 그러나 평생 그녀는 단 한 번도 사랑받지 못했고, 은밀한 죄를 알지 못했다. 그녀는 도시 전체의 법칙들의 모범으로 남았다. 처녀, 노파, 성과 신과 전통의 순결로 자기 삶을 발효시킨 여자였다.

림마 카르포브나의 삶은 다르게 이루어졌다. 그녀 역시 흰 바느질꾼이었다. 그것은 28년 전의 일이었다. 그때 그것은 3년 동안 계속되었다 — 평생 남을 치욕을 위한 3년의 치욕이었다. 그 시절 림마의 세월은 서른 너머로 기울었고, 젊음을 잃고 절망을 뿌린 뒤였다. 도시에는 재무관청 관리, 아마추어 배우, 미남이자 쓰레기 같은 남자가 살고 있었다. 그는 결혼했고, 아이들이 있었고, 술꾼이었다. 림마는 그를 사랑했고, 림마는 자기 사랑에 저항하지 못했다. 모든 것이 치욕스러웠다. 이 사랑 속에는 군郡의 법칙들이 정한 도덕 안에서 여자를 치욕스럽게 하는 모든 것이 있었고, 모든 것이 불운했다. 주변에는 비밀을 지킬 수 있을 숲들이 있었는데도, 그녀는 밤에 작은 산책길에서 그 남자에게 몸을 주었다. 그녀는 찢어지고 더러워진, 피에 젖은 속바지를 집으로 가져가는 것을 부끄러워했다. 본질적으로는 거룩한 피였지만. 그녀는 그것을 덤불 속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사내아이들이 그것을 온 동네 앞에서 찾아냈다.

그리고 그 치욕의 3년 동안 단 한 번도 그녀는 자기 애인을 집 지붕 아래에서 만나지 못했다. 숲과 거리, 무너진 집들, 비어 있는 바지선 위에서 만났다. 가을에도, 겨울에도. 형제 야코프 카르포비치는 여동생을 집에서 내쫓고 그녀와의 관계를 끊었다. 언니 카피톨리나조차 여동생에게 맞섰다. 거리에서는 사람들이 그녀를 손가락질했고, 알아보지 않는 척했다. 재무관청 배우의 합법적인 아내는 림마를 때리러 다녔고, 변두리 청년들에게도 그녀를 때리라고 부추겼다. 도시의 법칙들은 합법적인 아내 편이었다. 림마에게 딸 바르바라가 태어났다. 바르바라는 치욕의 증거이자 치욕이었다. 림마에게 둘째 여자아이 클라브디야가 태어났고, 클라브디야는 치욕의 두 번째 증거였다. 재무관청 아마추어 배우는 이 도시를 떠났다. 림마는 두 아이와 함께 홀로 남았다. 잔혹한 빈곤과 치욕 속에서. 그때 이미 서른을 훨씬 넘긴 여자였다.

그리고 이제 그때로부터 거의 30년이 더 흘렀다. 맏딸 바르바라는 결혼했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으며, 이미 아이가 둘 있다. 림마 카르포브나에게는 손주가 둘 있다. 바르바라의 남편은 근무한다. 바르바라도 근무한다. 림마 카르포브나는 큰 살림을 꾸리고 있고, 가문의 어머니가 되었다. 그리고 림마 카르포브나 — 선량한 노파 — 는 자기 삶으로 행복하다. 노년은 그녀를 작게 만들었고, 행복은 그녀를 통통하게 만들었다. 작고 통통한 노파에게는 그렇게 선량하고 생명으로 가득 찬 눈이 있다. 그리고 카피톨리나 카르포브나에게 이제 남은 생각은 단 하나다. 림마의 삶, 바르바라의 삶, 클라브디야의 삶, 손주들의 삶. 자신의 순결과 도시 전체가 인정한 정직성은 아무 쓸모도 없었다. 카피톨리나 카르포브나에게는 자기 삶이 없다.

카피톨리나 카르포브나가 말한다.

“림모치카, 내가 손녀에게 젖을 먹일게. 클라바가 나가는 걸 봤어. 바랴도 나갔니?”

창밖에는 지방, 가을, 비가 있다. 그리고 그때 현관에서 도르래가 삐걱이고, 남자 장화가 바닥에 부딪혀 습기와 진흙을 털어 낸다. 방 안으로 한 사람이 들어온다. 안경을 벗은 모든 근시안들이 그렇듯 무력하게 주위를 둘러보는 사람이다. 엔지니어 아킴 야코블레비치 스쿠드린이다. 50년 전 그의 아버지가 그랬던 모습과 똑같다. 그는 왔다 — 무슨 이유인지는 알 수 없다.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고모님들!” 아킴이 말한다. 그리고 그는 먼저 림마 고모에게 입을 맞춘다.

지방, 비, 가을, 러시아의 사모바르.

……엔지니어 아킴은 볼일 없이 왔다. 고모들은 사모바르와 급히 만든 납작빵, 그리고 러시아 지방에서 볼 수 있는 그 환대로 그를 맞았다. 아킴은 아버지에게도, 간부들에게도 가지 않았다. 도시 위에서는 죽어 가는 종들이 신음했고, 약초 같은 카밀레 속의 거리들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아킴은 이곳에서 하루를 지내고 떠났다. 조국은 그에게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채. 도시는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의 하루는 고모들과 함께, 시간을 통한 기억의 방랑 속에서, 기억의 헛됨 속에서, 고모들의 잔혹한 빈곤, 그들의 일, 그들의 생각, 그들의 꿈 속에서 지나갔다. 집 안의 물건들은 20년 전처럼, 25년 전처럼 서 있었다. 어린 시절 무서웠던 마네킹은 이제 겁나지 않았다.

황혼 무렵 클라브디야가 학교에서 돌아왔다. 그들은 둘이 소파에 앉았다. 나이 차이가 10년 나는 사촌 남매였다.

“삶은 어때?” 아킴이 물었다.

그들은 사소한 것들에 대해 말했다. 그러다가 클라브디야는 자기에게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주 단순하게 말했다. 그녀는 매우 아름답고 매우 평온했다. 황혼은 느리게 머뭇거리며 어두워졌다.

“너와 상의하고 싶어.” 클라브디야가 말했다. “나에게 아이가 생길 거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누가 그 아이의 아버지인지 몰라.”

“아버지가 누군지 모른다니?”

“나는 스물네 살이야.” 클라브디야가 말했다. “봄에 나는 여자가 될 때가 되었다고 결심했고, 여자가 되었어.”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있니?”

“아니, 없어. 몇 명 있었어. 궁금했어. 나는 호기심 때문에 그랬고, 또 — 때가 되었으니까. 나는 스물네 살이니까.”

아킴은 더 어떻게 물어야 할지 알지 못했다.

“내 관심의 중심에는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나 자신과 내 체험들이 있었어. 나는 남자들을 골랐어. 서로 다른 남자들을. 모든 것을 알기 위해서. 나는 임신하고 싶지 않았어. 성은 기쁨이야. 나는 아이를 생각하지 않았어. 하지만 임신했고, 나는 낙태하지 않기로 결정했어.”

“그래서 남편이 누군지 모른다는 거야?”

“누구인지 결정할 수 없어. 하지만 그것은 내게 중요하지 않아. 나는 어머니야. 나는 감당할 거야. 국가는 나를 도울 거고. 도덕이라…… 나는 도덕이 뭔지 모르겠어. 사람들이 내게 그것을 이해하는 법을 잊게 했어. 아니면 내게는 내 도덕이 있어. 나는 오직 나 자신에게, 나 자신으로만 책임져. 왜 몸을 주는 것이 비도덕적이지?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하고, 누구에게도 의무를 지지 않아. 남편? 나는 그에게 아무것도 의무 지우고 싶지 않아. 남편들은 내가 필요할 때, 그리고 아무 부담이 없을 때만 좋아. 나는 그가 밤 슬리퍼를 신고 내 곁에 있을 필요도 없고, 아이를 낳기 위해 필요하지도 않아. 사람들이 나를 도울 거야. 나는 사람들을 믿어. 사람들은 당당한 사람과, 그들에게 짐을 지우지 않는 사람을 사랑해. 그리고 국가는 도울 거야. 나는 마음에 드는 사람들과 가까워졌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아들이나 딸이 생길 거야. 이제 나는 누구에게도 몸을 주지 않아. 필요하지 않으니까. 어제 나는 술에 취했어. 마지막으로. 나는 생각하는 대로 너에게 말하고 있어. 어제 술에 취했다는 것이 역겨워. 하지만 — 어쩌면 아이에게는 아버지가 필요할 거야. 너는 아버지를 떠났고, 나는 아버지 없이 태어났고, 그에 대해서는 더러운 말 말고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어. 어린 시절에는 그것이 속상했고, 어머니에게 화가 났어. 그런데도 나는 낙태하지 않기로 결정했어. 내 자궁 전체가 아이로 가득 차 있어. 이것은 어쩌면…… 그보다 더 큰 기쁨이야. 나는 강하고 젊어.”

아킴은 생각들을 모을 수 없었다. 눈앞의 바닥에는 헝겊 조각으로 만든 길쭉한 깔개들이 놓여 있었다. 빈곤과 소시민성의 길들이었다. 클라브디야는 평온했고, 아름다웠고, 강했고, 매우 건강하고 매우 아름다웠다. 창밖에는 보슬비가 내렸다. 공산주의자인 아킴은 새로운 생활양식이 오고 있다고 알고 싶었다. 그러나 생활양식은 오래되었다. 하지만 클라브디야의 도덕은 그에게 비범하고 새로웠다. 그리고 클라브디야가 그렇게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옳지 않은가?

아킴이 말했다.

“낳아.”

클라브디야는 그에게 기대어 머리를 그의 어깨에 얹고, 다리를 끌어모아 아늑하고 약한 사람이 되었다.

“나는 아주 생리적인 사람이야.” 그녀가 말했다. “먹는 것을 좋아하고, 씻는 것을 좋아하고, 체조하는 것을 좋아하고, 우리 개 샤리크가 내 손과 발을 핥을 때를 좋아해. 내 무릎을 피가 날 때까지 긁는 것도 기분 좋아…… 삶은 크고, 사방에 있어. 나는 그것을 잘 모르겠어. 혁명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나는 그것들을 믿어. 삶도, 햇님도, 혁명도. 그래서 나는 평온해. 나는 나와 관련된 것만 이해해. 나머지는 내게 별로 흥미도 없어.”

고양이 한 마리가 깔개 위를 지나 소파로 와서, 익숙한 듯 클라브디야의 무릎 위로 뛰어올랐다. 창밖은 어두워졌다. 벽 너머에서 램프가 켜졌고, 재봉틀이 바느질을 시작했다. 어둠 속으로 평화가 찾아왔다.

저녁에 아킴은 삼촌 이반에게 갔다. 스쿠드린에서 오조고프로 개명한 이반이었다. 오흘로몬 오조고프는 화덕에서 조카에게 나왔다. 벽돌공장들 둘레에는 땅이 파헤쳐져 있고, 벽돌 헛간들의 지붕은 낮고 길기 때문에, 벽돌공장들은 언제나 파괴와 신비의 장소처럼 보인다. 오흘로몬은 취해 있었다. 그와는 대화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조카가 자기에게 왔다는 사실에 몹시 기뻐했고, 몹시 행복했다. 오흘로몬은 겨우 다리를 버티고 있었고, 개처럼 몸을 떨었다.

오흘로몬은 조카를 벽돌 헛간의 차양 아래로 데려갔다.

“왔구나, 왔구나.” 그가 속삭였다. 떨리는 두 손을 떨리는 가슴에 눌러 대며.

그는 조카를 손수레 위에 앉혔다. 손수레를 뒤집어 놓은 것이었다.

“쫓겨났니?” 그가 기뻐하며 물었다.

“어디서요?” 아킴이 되물었다.

“당에서.” 이반 카르포비치가 말했다.

“아니요.”

“아니라고? 쫓겨나지 않았다고?” 이반이 되물었고, 그의 목소리에는 슬픔이 생겨났다. 그러나 그는 활기차게 끝맺었다. “뭐, 지금은 아니어도 나중에는 쫓겨날 거다. 모든 레닌주의자와 트로츠키주의자는 쫓겨날 거야!”

그다음 이반 카르포비치는 헛소리를 했다. 헛소리 속에서 자기 코뮌에 대해 이야기했다. 자신이 어떻게 최초의 집행위원회 의장이었는지, 그 시절이 어떠했는지, 어떻게 그들이 멸망했는지, 그 무시무시한 시절이 어떠했는지, 그 뒤 어떻게 자신이 혁명에서 쫓겨났는지, 이제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그들로 하여금 울게 하고, 기억하게 하고, 사랑하게 만든다는 것을. 그는 다시 자기 코뮌에 대해, 그 평등과 형제애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공산주의란 무엇보다도 사랑, 인간이 인간에게 기울이는 긴장된 주의, 우정, 공동우정, 공동노동이라고 주장했다. 공산주의란 물건의 거부이며, 참된 공산주의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랑, 인간에 대한 존중, 그리고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말쑥한 작은 노인은 바람 속에서 떨었고, 마르고 역시 떨리는 손으로 재킷 깃을 만지작거렸다. 벽돌공장의 마당은 파괴를 확증하고 있었다. 엔지니어 아킴 스쿠드린은 이반 오조고프의 살 중의 살이었다.

……거지들, 동냥꾼들, 예언꾼들, 떠돌이 축복객들, 나환자 같은 자들, 순례자들, 불구자들, 절름발이들, 예언자들, 유로지비들 — 이 모두는 영원 속으로 가라앉은 성스러운 러시아 일상생활의 꽈배기들이었다. 성스러운 러시아의 거지들, 성스러운 러시아의 그리스도를 위한 유로지비들. 이 꽈배기들은 삶의 아름다움, 그리스도의 형제들, 세상을 위해 기도하는 자들이었다. 엔지니어 아킴 앞에는 — 거지 동냥꾼, 유로지비 나환자 같은 자 — 정의를 위한 소비에트 러시아의 유로지비, 세상과 공산주의를 위해 기도하는 자가 서 있었다. 삼촌 이반은 아마도 조현병자였을 것이다. 그에게는 자기만의 집착이 있었다. 그는 도시를 돌아다녔다. 그는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에게 찾아가 그들에게 울라고 청했다. 그는 공산주의에 대한 불타고 미친 연설을 했고, 시장에서는 많은 사람이 그의 연설 때문에 울었다. 그는 기관들을 찾아다녔다. 도시에서는 어떤 지도자들이 오흘로몬들을 통해 자신들에게 필요한 도시의 인기를 얻기 위해 양파로 눈을 문질렀다고 수군거렸다.

이반은 교회들을 두려워했고, 사제들을 저주했지만 사제들을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이반의 구호는 도시에서 가장 좌익적이었다. 도시 사람들은 이반을 존중했다. 러시아에서 수 세기 동안 유로지비들을 존중하는 데 익숙해졌듯이, 그들의 입을 통해 진리가 말하고, 그 진리를 위해 죽으러 갈 준비가 되어 있는 자들을 존중하듯이. 이반은 술을 마셨고, 알코올로 파괴되고 있었다. 그는 자기와 같은 자들, 혁명에 의해 내던져졌지만 혁명에 의해 만들어진 자들을 자기 주변에 모았다. 그들은 지하에서 자기 자리를 찾았다. 그들에게는 진짜 공산주의, 형제애, 평등, 우정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 각자에게는 자기만의 광기가 있었다. 한 사람은 화성의 프롤레타리아들과 서신 교환을 하는 데 집착했고, 다른 사람은 볼가의 모든 다 자란 물고기를 잡아 그 물고기로 철교 값을 치르며 볼가에 철교들을 세우자고 제안했고, 세 번째 사람은 도시에 전차를 놓는 꿈을 꾸었다.

“울어라!” 이반이 말했다.

아킴은 자기 생각에서 빠져나오느라 이반을 곧장 이해하지 못했다.

“뭐라고요?” 그가 물었다.

“울어라, 아킴, 울어라. 잃어버린 공산주의를 위해 지금 당장!” 이반이 외치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그러하듯 머리를 가슴에 떨구고 두 손을 가슴에 눌렀다.

“예, 예, 울고 있어요, 이반 삼촌.” 아킴이 대답했다.

아킴은 강하고, 키가 크고, 거대했다. 그는 이반 곁에 섰다. 아킴은 삼촌에게 입을 맞추었다.

비가 세차게 때렸다. 벽돌공장의 어둠은 파괴를 확증하고 있었다.

아킴은 오흘로몬에게서 돌아와 도시를 지나, 장터 광장을 거쳐 갔다. 외로운 창 하나에 불이 켜져 있었다. 그것은 도시 괴짜 박물관장의 집이었다. 아킴은 창으로 다가갔다. 언젠가 그는 박물관장과 함께 크렘린의 지하실들을 뒤진 적이 있었다. 그는 두드리려 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을 보고 두드리지 않았다. 방은 스티하리, 오라리, 제의, 수도복들로 어지럽게 가득 차 있었다. 방 한가운데 두 존재가 앉아 있었다. 박물관장이 1/4병에서 보드카를 따르고, 벌거벗은 사람의 입술에 잔을 가져다 댔다. 그 사람은 근육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벌거벗은 사람의 머리에는 관이 씌워져 있었다. 그제야 아킴은 박물관장이 앉아 있는 그리스도의 목조상과 단둘이 보드카를 마시고 있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그리스도는 사람 키만 한 나무로 깎여 있었다. 아킴은 기억했다. 어릴 적 디브니 수도원에서 이 그리스도를 본 적이 있었다. 이 그리스도는 17세기의 작품이었다. 박물관장은 나무 그리스도의 입술에 잔을 가져다 대며 그리스도와 보드카를 마시고 있었다. 박물관장은 자기 푸시킨식 프록코트 단추를 풀었고, 그의 구레나룻은 헝클어져 있었다. 가시관을 쓴 벌거벗은 그리스도는 아킴에게 살아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늦은 밤, 아킴에게 그의 어머니 마리야 클리모브나가 찾아왔다. 고모들은 방에서 나갔다. 어머니는 집에서 입는 낡은 평상복 차림으로 왔다. 어깨에 숄을 걸치고 달려온 것이었다. 어머니의 눈에는 실로 묶은 안경이 걸려 있었다. 아들을 더 잘 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어머니는 성찬식 때처럼 엄숙했다. 어머니는 아들을 끌어안았다. 어머니는 자기의 마른 가슴을 아들의 가슴에 눌렀다. 어머니는 자기 뼈 같은 손가락으로 아들의 머리카락을 만졌다. 어머니는 자기 머리를 아들의 목에 눌렀다. 어머니는 울지도 않았다. 그녀는 매우 진지했다. 자기 눈을 믿지 못해 손가락으로 아들을 더듬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를 축복했다.

“오지 않을 거니? 우리한테 오지 않을 거니, 아들아?” 어머니가 물었다.

아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럼 나는 대체 왜 내 삶을 살았단 말이냐?”

아들은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어머니가 아들에게 찾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어머니를 때릴 것임을. 아들은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자는 동안 어머니가 긴 시간 어둠 속에 앉아 그를, 자기 아들을 생각한다는 것을. 아들은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자기에게 아무것도 숨기지 않을 것이고, 동시에 새롭게 말할 것도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으리라는 것을. 낡은 것은 저주받았고, 그러나 어머니 — 어머니! — 가장 유일하고, 가장 놀랍고, 가장 아름다운 존재. 그의 어머니, 고행자, 유형수, 자기 전 생애로 혈육인 존재. 그리고 아들은 어머니에게 대답하지 않았고, 어머니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엔지니어 아킴은 떠났다. 증기선은 저녁에 떠날 예정이었으므로, 그는 밤 기차 시간에 맞추기 위해 말로 50베르스타를 가기로 했다. 그에게 타란타스와 밤색 말 한 쌍이 제공되었다. 날은 맑고도 변덕스러웠다. 비가 왔다가, 해가 나고, 푸른 하늘이 보였다. 길은 모스크바 가도를 따라갔다. 진흙은 바퀴통까지, 말들의 무릎까지 번져 있었다. 그들은 원시림 같은 숲들을 지나갔다. 숲들은 음울하고 젖어 있고 침묵해 있었다. 마부는 마부석에 우뚝 앉아 있었다. 늙고 말이 없었다. 말들은 걸음으로 갔다. 절반쯤 갔을 때, 아킴이 기차에 늦지 않을까 걱정하기 시작했을 무렵, 그들은 말을 먹이기 위해 멈췄다. 협동조합 찻집에서는 보드카를 팔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맞은편 밀주상에게서 보드카를 구했다. 밀주상은 마을 소비에트 서기였다.

마부는 조금 취하자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따분하게 자기 삶을 이야기했다. 자기 말로는 30년 동안 고기 일에 종사했고, 혁명과 함께 그것을 필요 없어져서 그만두었다는 이야기였다. 마부가 완전히 취하자, 그는 권력에 놀라기 시작했다.

“아니, 참, 이거 봐, 세상에, 주여 용서하소서. 나는 고기 일을 30년 했는데, 위원이라는 자가 와서는 3주 만에 모든 걸 해치웠어. 그리고 3주 뒤엔 내 형제를 밀가루 일에서 해임했지. 내 형제도 그 일에 30년을 전문으로 했는데!”

마부가 정말로 놀라는 것인지, 아니면 조롱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말을 먹이고, 다시 떠났다. 다시 침묵했다.

엔지니어 아킴은 트로츠키주의자였고, 그의 분파는 파괴되었다. 그의 고향, 그의 도시는 그에게 필요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이 한 주를 자기 생각을 위해 내어 주었다. 그는 혁명의 운명과 자기 당의 운명, 혁명가로서 자기 자신의 운명에 대해 생각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들은 오지 않았다. 그는 숲을 바라보았고 — 숲에 대해, 덤불에 대해, 늪에 대해 생각했다. 그는 하늘을 바라보았고 — 하늘, 구름, 공간들에 대해 생각했다. 말들의 갈비뼈에는 이미 오래전에 거품이 덮였고, 말들은 지친 호흡 속에서 배를 부풀렸다. 길의 진흙은 지나갈 수 없을 만큼 놓여 있었고, 길에는 호수들이 퍼져 있었다. 바로 이곳에 길이 있었기 때문에 그랬다.

이미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숲은 침묵했다. 숲에 대한 생각에서, 수천 베르스타 이어지는 시골길들에 대한 생각에서, 아킴의 생각은 고모들인 카피톨리나와 림마에게로 왔다. 그리고 천 번째로 아킴은 혁명을 정당화했다. 카피톨리나 고모에게는 이른바 정직한 삶이 있었다. 도시 앞에서도, 도시의 도덕에 반해서도 단 하나의 죄가 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삶은 텅 비고 아무에게도 필요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림마 고모에게는, 혁명 이전 러시아에서 성모 마리아가 살았다면 그녀의 여권에도 쓰였을 것처럼, 여권에 영원히 이렇게 남아 있었다. “처녀” — “아이 둘 있음.” 림마의 아이들은 그녀의 치욕이자 슬픔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슬픔은 그녀의 행복, 그녀의 품위가 되었다. 그녀의 삶은 가득 찼고, 채워졌다. 그녀, 림마 고모는 행복했다. 그리고 카피톨리나 고모는 자기 삶을 갖지 못한 채 여동생의 행복으로 살았다.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해야 한다. 행해지는 모든 것은, 쓰라린 것조차, 행복이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채로 남는다. 그리고 — 클라브디야. 그녀는 자기 어머니보다 더 행복하지 않은가? 자기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점에서. 왜냐하면 어머니는 자신이 쓰레기를 사랑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아킴은 아버지를 떠올렸다. 그를 모르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다! 그리고 아킴은 자기 생각을 붙잡았다. 아버지, 클라브디야, 고모들에 대해 생각하면서, 그는 그들에 대해 생각한 것이 아니라 혁명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혁명은 그에게 삶의 시작이자 삶 자체이자, 삶의 끝이었다.

숲과 길들이 어두워졌다. 그들은 들판으로 나왔다. 서쪽은 이미 오래전에 붉은 노을에 상처 입은 채 죽어 가고 있었다. 그들은 들판을 갔다. 500년 전과 똑같은 들판이었다. 마을로 들어갔고, 17세기의 진창 속을 질질 끌려갔다. 마을 뒤에서 길은 골짜기로 내려갔다. 다리를 건넜다. 다리 너머에는 웅덩이가 있었는데, 지나갈 수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들은 웅덩이로 들어갔다. 말들이 힘껏 당기고 멈췄다. 마부가 채찍으로 말들을 쳤다. 말들이 움찔했지만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사방은 빠져나갈 수 없는 진흙이었다. 타란타스는 웅덩이 한가운데 빠졌고, 왼쪽 앞바퀴는 린치핀보다 위까지 빠졌다. 마부는 마부석에서 몸을 비틀어 주마의 엉덩이를 장화로 찼다. 말은 움찔하고 쓰러지며 끌채를 자기 밑에 깔아뭉갰다. 말은 멍에까지 진흙 속으로 들어갔다. 마부는 주마가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 말들을 후려쳤다. 그다음 그는 말을 풀기 위해 진흙 속으로 기어 내려갔다. 그가 한 발을 디디자 다리가 무릎까지 진흙에 들어갔다. 두 번째 발을 디뎠다. 그리고 그는 빠졌다. 그는 다리를 빼낼 수 없었다. 다리만 장화에서 빠져나왔고, 장화는 진흙 속에 남았다. 노인은 균형을 잃고 웅덩이 속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노인은 — 울었다. 쓰라리고, 히스테리적이고, 무력한 분노와 절망의 눈물로 울었다. 소와 황소를 죽이는 일을 전문으로 했던 이 사람이.

기차에, 그리고 시간의 기차에, 트로츠키주의자 아킴은 늦었다.

제5장

붉은 목재의 예술은 이름 없는 예술, 물건들의 예술이었다. 장인들은 술에 절어 죽어 갔고, 물건들은 남아 살았다. 그리고 살았다 — 그 곁에서 사람들은 사랑했고, 죽었고, 그 안에 슬픔과 사랑과 일과 기쁨의 비밀들을 보관했다. 엘리자베타, 예카테리나 — 로코코, 바로크. 파벨 — 몰타 기사, 파벨은 엄격하다. 엄격한 고요, 어둡게 광낸 붉은 목재, 초록 가죽, 검은 사자들, 그리프들, 그리핀들. 알렉산드르 — 엠파이어 양식, 고전, 헬라스. 사람들은 죽지만 물건들은 산다. 그리고 옛 물건들에서는 지나간 시대의 고풍스러운 “유체”가 흘러나온다.

1928년 —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 지방 도시들에는 골동품 가게들이 생겨났다. 그곳에서는 저당포, 국영상점, 국가기금, 박물관을 통해 옛것이 사고팔렸다. 1928년에는 “유체”를 수집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혁명의 천둥 뒤에 옛 물건을 산 사람들은 자기 집에서 옛것을 어루만지고, 죽은 물건들의 살아 있는 삶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명예를 얻은 것은 파벨이었다 — 몰타 기사 파벨, 곧고 엄격하며, 청동도 소용돌이 장식도 없는 파벨.

베즈데토프 형제는 모스크바의 블라디미로-돌고루코프스카야, 옛날 이름으로는 지보데르카라 불리던 거리에서 살았다. 그들은 골동상이고 복원가였다. 그리고 물론 “괴짜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은 언제나 외톨이고 말이 없다. 그들은 철학자처럼 자기 일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베즈데토프 형제는 지하실에서 살았다. 그들은 괴짜들이었다. 그들은 파벨들, 예카테리나들, 알렉산드르들, 니콜라이들을 복원했다. 그러면 괴짜 수집가들이 그들에게 찾아왔다. 옛것과 작업을 보고, 옛것과 장인 솜씨에 대해 이야기하고, 옛것의 공기를 들이마시고,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사기 위해서였다. 괴짜 수집가들이 무언가를 사면, 그 구매는 코냑으로 축하되었다. 병에서 예카테리나 시대의 술병으로 옮겨 담은 코냑을, 옛 황실의 다이아몬드 세트였던 잔들로 마시면서.

……그리고 저기, 스쿠드린 다리 근처에서는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도시는 러시아의 브뤼헤이자 러시아의 가마쿠라다.

야코프 카르포비치는 자정 무렵 깨어나 램프를 켜고, 먹고, 성서를 읽었다. 소리 내어, 외워서, 언제나처럼, 40년 동안 그래 왔듯이. 아침이면 노인에게 그의 친구들과 청원자들, 농민들이 찾아왔다. 야코프 카르포비치는 농민 문제의 청원 대리인이었기 때문이다. 그 무렵 농민들은 다음과 같은, 그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문제적 딜레마 때문에 어리둥절해했다. 야코프 카르포비치가 표현하듯이 말이다. 이 문제의 난해함 앞에서 농민들은 대략 50퍼센트와 50퍼센트로 갈렸다.

농민들의 50퍼센트는 새벽 세 시에 일어나 밤 열한 시에 잠자리에 들었다. 그들 집에서는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두가 손을 놓지 않고 일했다. 그들이 암송아지를 살 때면, 사기 전에 열 번씩 재어 보았다. 길가의 작은 나뭇가지도 집으로 끌고 갔다. 그들의 이즈바는 수레처럼 튼튼했고, 가축은 자기들이 배불리 먹고 일에 푹 잠겨 있듯 배불리 먹고 잘 돌보아졌다. 그들은 식량세와 기타 의무를 국가에 꼬박꼬박 냈고, 권력을 두려워했다. 그리고 그들은 혁명의 적으로 여겨졌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다른 50퍼센트의 농민들은 바람에 두들겨 맞은 집 한 채와 마른 소 한 마리, 털 빠진 양 한 마리씩을 가지고 있었다. 그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봄이 되면 도시에서 국가가 그들에게 종자대부를 주었다. 자기 빵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종자대부의 절반을 먹어 버렸고, 나머지 절반을 뿌렸다. 이삭과 이삭 사이가 표와 표 사이처럼 떨어져 있었다. 그러므로 가을에는 아무것도 나지 않았다. 그들은 마른 소와 털 빠진 양에게서 나온 거름이 부족했기 때문에 흉작이 들었다고 권력에 설명했다. 국가는 그들에게서 식량세와 종자대부를 면제해 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혁명의 친구로 여겨졌다.

마을들의 “적들”은 “친구들”에 대해 이렇게 주장했다. 친구들의 35퍼센트는 술꾼이다. 여기서 물론 판단하기는 어렵다 — 빈곤이 술 때문인지, 술이 빈곤 때문인지. 5퍼센트는 운이 없는 자들이다. 혹시 모른다는 기대가 구해 줄 뿐이다! 그리고 60퍼센트는 게으름뱅이, 말꾼, 철학자, 나태한 자, 얼간이들이다. 마을마다 “적들”은 온 힘을 다해 압박받았다. 그들을 “친구들”로 바꾸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그들이 식량세를 낼 가능성을 빼앗고, 그들의 집을 바람에 두들겨 맞은 상태로 바꾸어 갔다.

야코프 카르포비치는 감상적이고도 쓸모없는 진정서를 썼다. 야코프 카르포비치에게는 조국의 적, 미쳐 버린 사람 바실리 바실리예비치도 찾아왔다. 바실리 바실리예비치는 혁명 전에는 지방자치기관, 즉 젬스트보의 서기였다. 그는 농학 서적들을 열정적으로 읽었다. 1920년에 그는 땅으로 갔다. 그에게 1데샤티나의 땅이 주어졌다. 그는 빈손과 뜨거운 마음으로 자기 1데샤티나에 왔다. 마흔 살의 사람이었다. 1923년 전러시아 농업박람회에서 그는 소와 우유, 그리고 낙농조합 의장직으로 농업인민위원부의 종이 금메달과 표창을 받았다. 1924년 봄에는 그에게 40데샤티나의 땅을 주며 모범 농장을 세우라고 제안했다. 그는 20데샤티나를 받았다. 1926년이 되자 그에게는 소가 열일곱 마리 있었다. 그때 그는 노동자를 고용했다. 그리고 — 망했다. 쿨라크가 되었기 때문이다. 1927년이 되자 그에게는 5데샤티나와 소 세 마리만 남았다. 나머지는 공과금, 차관, 세금으로 다 내주었다. 1928년 가을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도시로 돌아가 서기 신분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런데 1928년 가을, 볼가를 건너는 뗏목 위에서, 시골길에서, 선술집에서, 시장에서 농민들은 숫자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협동조합에 호밀 한 푸드를 넘기면 1루블 8그리브니크인데, 바로 그 협동조합에서 배급증으로 호밀 한 푸드를 사면 3루블 6그리브니크이고, 시장에서 한 푸드를 팔면 6루블이라는 숫자에 대해. 바실리 바실리예비치는 도시로 돌아왔고 — 쿨라크적 존재에서 빠져나올 힘이 없어 미쳐 버렸다. 이곳의 마을과 촌락은 그리 촘촘하지 않았다. 숲과 늪이 있었다.

야코프 카르포비치는 시간을 잃었고, 삶에 대한 두려움을 잃었다. 아무에게도 필요 없는 청원서들 말고도 그는 선동문과 철학 논문들을 썼다. 야코프 카르포비치 스쿠드린은 지겨울 정도로, 구역질이 날 정도로 추악했다.

도시는 러시아의 브뤼헤이자 러시아의 가마쿠라다. 이 도시에서 16세기에 황태자 드미트리가 살해되었다. 그때 보리스 고두노프는 스파스카야 크렘린 교회의 종을 끌어내렸다. 바로 그 종, 사제 오구레츠가 살인을 알리며 쳤던 그 종이었다. 보리스 고두노프는 그 종을 처형했다. 종의 귀와 혀를 뽑고, 다른 매질당한 시민들과 함께 광장에서 채찍질했으며, 시베리아 토볼스크로 유배 보냈다. 이제 도시 위의 종들은 죽어 가고 있다.

야코프 카르포비치 스쿠드린은 살아 있다. 그에게는 사건이 없다.

1744년, 중국 대상의 책임자 게라심 키릴로비치 로브라도프스키는 캬흐타 전초기지에 도착하여 그곳 대상에 야란스크 출신의 은세공사 안드레이 쿠르신이라는 자를 받아들였다. 쿠르신은 로브라도프스키의 지시에 따라 베이징으로 갔다. 당시 도자기를 부르던 이름인 포르첼렌, 곧 자기 제조의 비밀을 중국인들에게서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베이징에서 쿠르신은 러시아의 “준위 계급 학생들”을 통해 황제의 도자기 공장 장인 하나를 은 1천 냥, 즉 당시 러시아 돈 2천 루블로 매수했다. 이 중국인은 베이징에서 35리 떨어진 빈 사당들에서 쿠르신에게 포르첼렌 제조 실험을 보여 주었다. 게라심 키릴로비치 로브라도프스키는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오면서 쿠르신도 함께 데리고 왔고, 중국에서 빼낸 포르첼렌 제조의 비밀에 관해 여제에게 보고서를 썼다.

그 뒤 라주몹스키 백작이 체르카소프 남작에게 공포한 최고 칙령이 내려져, 중국에서 온 사람들을 차르스코예 셀로로 보내라고 했다. 쿠르신에 대한 대우는 대단했다. 그러나 그의 절도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실제로 밝혀진 것은 중국인이 안드레이 쿠르신을 속였다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비밀 회람에 적힌 대로 그는 “교활하게 행동했다.” 쿠르신은 채찍질을 두려워하며 자기 고향 야란스크로 돌아갔다.

이와 동시에 1744년 2월 1일, 코르프 남작은 크리스티아니아에서 크리스토포르 콘라트 군터와 비밀 계약을 맺었다. 군터는 도자기 장인으로, 자신이 작센의 마이센 공장에서 수련하고 기술을 익혔다고 말했다. 군터는 코르프 남작과 흥정을 마치고, 러시아 프리깃함을 타고 비밀리에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왔다. 군터는 훗날 제국 도자기 공장이 된 도자기 공장 건설에 착수했다. 그리고 실험 생산에 들어갔고, 그 와중에 자기 러시아 조수 비노그라도프와 몽둥이로 난동과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그는 1748년 사기와 무지로 러시아에서 추방될 때까지, 이 일을 아무 성과 없이 계속했다.

군터를 대신한 것은 러시아의 광산기사이자 표트르의 제자이며, 방탕한 술꾼이자 타고난 천재였던 드미트리 이바노비치 비노그라도프였다. 러시아 포르첼렌 생산의 일을 세운 것은 바로 그였다. 따라서 러시아 도자기는 어디에서도 빌려 온 것이 아니며, 비노그라도프의 발명이다. 하지만 그래도 러시아 도자기의 시조로는, 중국인들에게 완전히 속아 넘어간 야란스크 사람 안드레이 쿠르신과, 유럽 전체를 속이고 다닌 독일인 크리스토포르 군터를 꼽아야 한다.

그리고 러시아 도자기에는 자기 황금시대가 있었다. 제국 공장, 옛 가드너, “vieux” 포포프, 바테닌, 미클라솁스키, 유수포프, 코르닐로프, 사프로노프, 사바닌의 장인들은 농노제와 황금시대 속에서 꽃피었다. 그리고 드미트리 비노그라도프의 전통에 따라, 도자기 생산 주변에는 애호가들과 괴짜들, 술꾼들과 구두쇠들이 있었다. 공장 일을 한 것은 지극히 고귀한 유수포프들, 대대로 내려온 귀족 브세볼로시스키들, 그리고 보고로츠크의 괴짜 상인 니키타 흐라푸노프였다. 그는 수도사가 곡식단의 무게에 허리가 휘어진 모습을 한 작은 조각상 때문에 알렉산드르 1세의 칙령으로 매질을 당했다. 그 곡식단 속에는 젊은 시골 처녀가 숨겨져 있었다. 모든 장인들은 서로에게서 “비밀”을 훔쳤다. 유수포프는 제국 공장에서, 키셀료프는 포포프에게서 훔쳤고, 사프로노프는 밤늦게 도둑처럼 다락의 구멍으로 비밀을 엿보았다. 이 장인들과 괴짜들은 아름다운 물건들을 만들었다. 러시아 도자기는 지구를 장식하는 가장 놀라운 예술이다.

얌스코예 폴레 — 볼코프의 집,
1929년 1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