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백위군 음모 — 전 장군 코즐롭스키와 군함 「페트로파블롭스크」의 반란 (1921년 3월 2일)

인물블라디미르 레닌, 레프 트로츠키, 그리고리 지노비예프, 미하일 투하쳅스키 사건크론시타트 봉기

노동국방회의 포고

새로운 백위대 음모

전직 장군 코즐롭스키와 페트로파블롭스크 호의 반란

이미 1921년 2월 13일, 파리 신문 『우트로』(『마탱』)에 2월 11일자 헬싱포르스발 전보가 실렸다. 그 전보는 크론시타트에서 소비에트 권력에 대항한 수병 봉기가 일어났다는 내용이었다. 프랑스 방첩기관은 사건을 조금 앞질렀을 뿐이었다. 앞서 언급된 시점이 지난 며칠 뒤, 프랑스 방첩기관이 예상하고 틀림없이 준비해 오던 사건들이 실제로 시작되었다. 크론시타트와 페트로그라드에는 백위대 전단들이 나타났다. 체포 과정에서 이미 알려진 간첩들이 구금되었다. 같은 시기 우익 사회주의자혁명가당원들은 어려운 식량·연료 사정을 이용하여 노동자들 사이에서 선동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2월 28일 크론시타트의 ‘페트로파블롭스크’ 호에서 소요가 시작되었다. 검은백인대-사회주의자혁명가당원 결의가 채택되었다. 3월 1일 ‘페트로파블롭스크’ 호에서의 소요는 계속된다. 전체 집회에서 같은 결의가 다시 채택되었다.

3월 2일 아침부터 전직 장군 코즐롭스키(포병 책임자) 일파가 이미 공개적으로 무대에 등장했다. 전직 장군 코즐롭스키는 성이 아직 확인되지 않은 장교 3명과 함께 공개적으로 반란자로 나섰다. 그들의 지휘 아래 발트함대 정치위원 쿠지민 동지, 크론시타트 소비에트 의장 바실리예프 동지, 그리고 그 밖의 여러 관리들이 체포되었다. 이로써 최근 사건들의 의미가 충분히 해명되었다. 사회주의자혁명가당원들의 배후에는 이번에도 차르 장군이 있었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하여 노동국방회의는 다음과 같이 결정한다.

1. 전직 장군 코즐롭스키와 그 추종자들을 법 밖에 있는 자로 선언한다.

2. 페트로그라드 시와 페트로그라드 주에 계엄을 선포한다.

3. 페트로그라드 요새 지역의 전권을 페트로그라드 시 방위위원회에 이관한다.

노동국방회의 의장 블라디미르 울리야노프(레닌)

공화국 혁명군사위원회 의장 트로츠키

모스크바, 크렘린

1921년 3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