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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진 얼굴들

인물이오시프 스탈린, 니콜라이 포드보이스키, 막심 리트비노프, 니키타 흐루쇼프, 스베틀라나 알릴루예바, 미하일 투하쳅스키, 야코프 스무시케비치, 보그단 코불로프, 브세볼로드 메르쿨로프, 니콜라이 시베르니크 용어내무인민위원부(NKVD), 대숙청, 글라스노스트 사건대숙청

레닌그라드 텔레비전 촬영진이 모스크바에서 연속 방송 제작에 들어갔다. 무대는 포드보이스키, 리트비노프, 흐루쇼프, 스탈린의 딸 스베틀라나, 투하쳅스키가 저마다 다른 해에 살았던 집이다…

그들을 데리러 밤에 왔고, 그들은 사라졌다

레닌그라드의 인기 텔레비전 프로그램 「다섯 번째 바퀴」의 파란 라프(RAF) 승합차가 모스크바 세라피모비치 거리의 거대한 집으로 향했다. 1930년대에 “새로운 사회생활의 집”이라는 자랑스러운 이름을 달았고, 흔히 “정부의 집”이라고 불리던 건물이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이 집을 [판독 불가] “총살된 사람들의 집”이라고 부른다.

— 이 집의 역사와 많은 주민의 비극적인 운명, 우리 연속물의 내용을 짧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 레닌그라드 텔레비전 편집자이자 이 연속물의 작가인 이리나 홀모바가 말한다. — 우리는 전쟁 전 젊은 시절을 이 집에서 보낸 사람들의 눈으로 스탈린 탄압의 시대를 바라보려 합니다. 미하일 코르슈노프(트리포노프의 『강변의 집』에 나오는 히미우스의 원형입니다), 그의 아내 빅토리야 테레호바, 로자 스무시케비치…

그 시절의 목격자인 그들은 무엇을 기억하고 있을까?

미하일 코르슈노프: 1930년대에는 이 집 앞으로 유람선이 들어왔고, 안내원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보십시오, 건축가 이오판 동지가 새 삶의 상징인 이 집을 지었습니다, 머지않아 모든 소련 사람이 이런 생활 조건에서 살게 될 겁니다. 그러고는 작은 배가 멀리 떠나갔지요…

그런데 밤이 되면, 깊은 우물 바닥 같은 이 집은 무서웠습니다. 이 집 창문이 얼마나 큰지 보셨습니까? 밤중에 어느 집 창문에 한꺼번에 불이 확 켜져 마당을 비추면, 꼭 총소리 같았습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우리는 알았어요. 비어 버린 집 문에 찍힌 빨간 봉랍 도장… 가택 수색이 끝나면 짐을 실어 가던 트럭… 그리고 기념으로 남는 것은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사진도, 책도요. 투하쳅스키네 집에서 짐을 실어 낼 때, 나는 친구와 함께 트럭이 마당을 어떻게 돌아 나가고 어디서 속도를 늦추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짐칸에서 원수가 서명한 지도책 한 권을 용케 빼냈습니다. 기념으로 남겠거니 했지요. 천만에요. 몇 주 뒤에 친구의 의붓아버지가 잡혀갔고, 그 지도책이 꽂혀 있던 서재도 덩달아 압수되었습니다.

빅토리야 테레호바: 한 현관에 아파트가 열아홉 채였어요. 예를 들어 우리가 살던 14번 현관에는 늘 여섯에서 여덟 채가 비어 있었지요…

로자 스무시케비치: 아버지(야코프 스무시케비치. 소련 영웅 칭호를 두 번 받았고, 스페인에서 “두글라스 장군”이라는 이름으로 싸웠다. — M. V.)가 공군 총사령관이 되자, 카렐리야 자작나무 가구가 딸린 방 여덟 칸짜리 아파트로 옮기라는 제의가 왔어요. “그 직급이면” 그렇게 하도록 정해져 있었거든요. 그런데 아버지는 거절했어요…

아버지는 병원에서 곧바로 끌려갔어요. 그날 밤 엄마와 나는 침실 문간에 낯선 사람들이 서서 우리 눈에 손전등을 비추는 바람에 잠에서 깼어요. 전쟁이 터지기 몇 주 전이었지요. 그리고 1943년 2월에는 우리도 잡혀갔어요.

1939년 주택 대장. 미하일 코르슈노프에게 기적처럼 남아 있는, 그 시대의 놀라운 문서다. 보라색 잉크로 적힌 기록들. “전출”, “잘못 말소”(서둘렀다는 뜻이다. 주민이 아직 체포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라색 도장 “확인됨, 1942년”… 온 나라가 아는 주민들, 전혀 알려지지 않은 주민들, 그리고 그 시절 “그늘에 머무는” 편을 택한 사람들의 성이 적혀 있다. 이를테면 NKVD 수사국장 코불로프, 그리고 훗날 내무인민위원이 되는 메르쿨로프[1]… 형리와 희생자가 한 지붕 아래 살았다. 밤마다 여벌 열쇠로 남의 집에 몰래 숨어 들어가 재앙을 알리는 불안하고 환한 불을 켜기를 즐긴 것도 바로 그 코불로프였다.

— 여기 보세요. — 미하일 코르슈노프가 에스트라다 극장 위쪽 창문들을 가리킨다. — 전쟁 전에는 여기에 사면 위원회가 있었습니다. 바로 이 집 안에요.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그 위원회는 누구 하나 사면해 줄 수 없었습니다. 이 방들에서 편지와 청원서를 읽었는데, 그게 바로 옆 현관에서 오는 일이 많았어요. 우리 어머니가 이 위원회에서 평범한 사무원으로 일했습니다. 어머니는 우편물을 뜯어 보고 나서 밤새도록 울었어요. 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었으니까요. 나중에 어머니가 그러시더군요. 상부 지시로 위원회 직원들은 주기적으로 정신과 의사에게 검진을 받았다고요.

레닌그라드 사람들이 첫 방송을 준비하는 동안 알게 되어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 가운데 지금도 강변의 집에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코르슈노프와 테레호바는 칼리닌 대로에, 스무시케비치는 소콜에 산다.

— 집을 바꾸려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전쟁 전에 사시던 그 집의 아파트를 내준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 대담을 이끌던 이리나 홀모바가 로자 스무시케비치에게 물었다.

— 싫어요. — 로자 야코블레브나가 대답했다. — 절대로요.

그녀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나는 레닌그라드 기자들과 함께 기념 명판이 잔뜩 붙은 이 집에서 사흘을 보냈다. 그 시절부터 남아 있는 현관 문손잡이(나무와 청동)를 만져 보았고, 시베르니크 한 사람을 위해 따로 설치했다가 무슨 까닭인지 그 뒤 쓰지 않고 묶어 둔 승강기도 보았고, 비어 있는 방에 1930년대를 기리는 박물관을 열겠다는데 건물관리소 당 조직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노장들의 하소연도 들었다. 이 집의 첫 입주자들에게 내주던 비품 번호가 붙은 가구가 아직 남아 있는 아파트에도 올라가 보았다. 그리고 어느 가족 앨범에서 사진 한 장을 보게 되었다. 사진 속 얼굴 몇 개가 줄을 그어 지워져 있었다.

— 이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 나는 집주인에게 물었다.

— 이제부터 떠올려 봐야지요. — 그녀가 대답했다.

얼굴을 왜 잉크로 칠해 지웠는지는 여러분도 물론 알 것이다.

마르크 보도보조프

12월 22일 레닌그라드 텔레비전 「다섯 번째 바퀴」에서 새 연속물의 첫 꼭지를 보시기 바랍니다.

주석

  1. 옮긴이 주: 브세볼로드 메르쿨로프가 실제로 오른 자리는 내무인민위원이 아니라 국가보안인민위원(1941년, 1943~1946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