즈다노프, 「소비에트 문학은 가장 사상적이고 가장 전진적인 문학이다」
인물안드레이 즈다노프, 이오시프 스탈린, 알렉세이 고리키, 블라디미르 레닌,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용어사회주의 리얼리즘, 즈다노프시나
동지들,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와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인민위원회의의 이름으로, 제1차 소비에트 작가대회와, 위대한 프롤레타리아 작가 막심 고리키를 앞머리에 세운 우리 소비에트 연방의 모든 작가에게 불타는 볼셰비키의 인사를 전하는 것을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동지들, 여러분의 대회는 사회주의 건설 사업에서 우리 앞에 섰던 주된 곤란들이 이미 극복된 때에, 우리나라가 공업화 정책과 소비에트 농장·집단농장 건설의 승리와 나란히 사회주의 경제의 기초 놓기를 끝낸 때에 열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대회는 공산당의 지도 아래, 우리의 위대한 수령이자 스승인 스탈린 동지의 천재적 인도 아래 사회주의 체제가 우리나라에서 최종적으로, 돌이킬 수 없이 승리한 때에 열리고 있습니다.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승리에서 승리로, 내전의 불지옥에서 복구의 시기로, 복구의 시기에서 전체 인민경제의 사회주의적 개조로 일관되게 전진하면서, 우리 당은 나라를 자본주의적 요소들에 대한 승리로 이끌었고 그들을 경제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몰아냈습니다.
소련은 전진적 공업국이 되었고,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로 조직된 사회주의 농업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소련은 우리의 소비에트 문화가 무성한 광휘 속에 자라고 발전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사회주의 체제의 승리는 기생 계급의 소멸, 실업의 소멸, 농촌 빈궁의 소멸, 도시 빈민굴의 소멸을 가져왔습니다. 소비에트 땅의 모습 전체가 바뀌었습니다. 그 인민의 정신 구조가 뿌리부터 달라졌습니다. 우리나라의 「이름난 사람들」은 사회주의의 건설자들, 노동자와 집단농장원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사회주의가 거둔 승리들과 긴밀히 이어져 있는 것이 나라 안팎에서 소비에트 연방의 지위가 굳어진 일, 국제 문제에서 그 무게와 권위가 자란 일,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돌격대로서, 다가올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강력한 보루로서 그 의의가 커진 일입니다.
우리 당의 제17차 대회에서 스탈린 동지는 우리의 승리들과 그것을 조건 지은 요인들, 우리의 현재 위치, 계급 없는 사회주의 사회 건설의 완성을 위한 이후 사업의 강령에 대해 명수답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분석을 주었습니다. 스탈린 동지는 우리 사업의 뒤떨어진 부문들에 대해, 그리고 우리 당이, 당의 지도 아래 노동 계급과 집단농장 농민의 백만 대중이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지칠 줄 모르고 나날이 벌이고 있는 곤란들에 대해 남김없는 분석을 주었습니다.
우리는 무슨 값을 치르더라도 철도·수상 운수, 상품 유통, 비철 야금같이 인민경제의 사활이 걸린 부문들의 낙후 상태를 극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사회주의 농업의 가장 중요한 부문의 하나인 축산의 발전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스탈린 동지는 우리의 곤란과 결함의 뿌리 자체를 드러내 보였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실천적 조직 사업이 당의 정치 노선이 요구하는 수준에, 제2차 5개년 계획의 수행이 우리에게 내거는 요구에 미치지 못한다는 데서 나옵니다. 그렇기에 제17차 당대회는 우리의 조직 사업을 우리 앞에 놓인 거대한 정치적 임무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절박한 과제를 세웠습니다. 스탈린 동지의 지도 아래 당은 자본주의적 요소의 최종적 청산을 위한, 경제생활과 사람들의 의식 속 자본주의 잔재의 극복을 위한, 인민경제의 기술적 개조의 완성을 위한 투쟁으로 대중을 조직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의식 속 자본주의 잔재를 극복한다는 것은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부르주아적 영향의 온갖 유물에 맞서, 해이에 맞서, 빈둥거림에 맞서, 게으름에 맞서, 소부르주아적 방종과 개인주의에 맞서, 공공재산에 대한 사취와 부정의 태도에 맞서 싸운다는 것입니다.
우리 길에 놓인 모든 곤란을 극복할 확실한 무기가 우리 손에 있습니다. 이 무기는 우리 당과 소비에트가 삶 속에 구현하고 있는, 마르크스·엥겔스·레닌·스탈린의 위대하고 무적한 학설입니다.
마르크스·엥겔스·레닌·스탈린의 강력한 깃발은 승리했습니다. 제1차 소비에트 작가대회가 여기 모인 것도 이 깃발의 승리 덕분입니다. 이 승리가 없었다면 여러분의 대회는 열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런 대회는 우리 볼셰비키 말고는 아무도 소집할 수 없습니다.
소비에트 문학의 성공의 열쇠는 사회주의 건설의 성공에서 찾아야 합니다. 문학의 성장은 우리 사회주의 체제의 성공과 성취의 표현입니다. 우리 문학은 모든 인민, 모든 나라의 문학 가운데 가장 젊은 문학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가장 사상이 풍부하고 가장 전진적이며 가장 혁명적인 문학입니다. 온갖 착취와 임금 노예제의 멍에를 단번에 영원히 없애기 위한 투쟁으로 근로자와 피억압자를 조직한 문학은 일찍이 없었습니다. 노동 계급과 농민의 삶과 그들의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을 작품 소재의 기초로 삼은 문학은 일찍이 없었습니다. 모든 민족 근로자의 평등권 원칙, 여성의 평등권 원칙을 옹호하고 떠받든 문학은 세계 어디, 어느 나라에도 없었습니다. 우리 문학이 하고 있는 것처럼 온갖 몽매주의, 온갖 신비주의, 성직자 지배와 미신을 일관되게 쳐부수는 문학은 부르주아 나라들에는 없고 있을 수도 없습니다.
사회주의 건설과 한 몸 한 피인 소비에트 문학만이 그토록 사상이 풍부하고 그토록 전진적이며 혁명적인 문학이 될 수 있었고, 실제로 되었습니다.
소비에트 작가들은 우리 소비에트 나라의 삶을 올바르고 진실하게 그린 뛰어난 작품을 이미 적지 않게 만들어 냈습니다. 우리가 정당하게 자랑할 수 있는 이름이 이미 여럿 있습니다. 당의 지도 아래, 중앙위원회의 사려 깊은 일상적 인도와 스탈린 동지의 지칠 줄 모르는 지지와 도움 속에, 소비에트 작가의 온전한 군단이 소비에트 권력과 당 둘레에 결집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소비에트 문학의 성공의 빛 속에서, 우리의 체제 — 승리한 사회주의의 체제 — 와 죽어 가며 썩어 가는 자본주의의 체제 사이의 온전한 대조가 한층 날카롭게 도드라져 보입니다.
자본주의 나라들의 노동자가 내일을 확신하지 못한다면, 다음 날 일자리가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면, 농민이 내일 제 땅뙈기에서 일하게 될지 자본주의 공황이 제 삶을 무너뜨릴지 모른다면, 정신노동자가 오늘 일이 없고 내일 일을 얻을지 모른다면, 부르주아 작가는 무엇에 대해 쓸 수 있고 무엇을 꿈꿀 수 있으며, 어디서 영감의 원천을 찾고 어디서 그 영감을 빌려 올 수 있겠습니까?
세계가 오늘이 아니면 내일 또다시 새로운 제국주의 전쟁의 심연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을 때, 부르주아 작가는 무엇에 대해 쓸 수 있으며 그에게 무슨 영감의 원천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부르주아 문학의 현재 상태는 더는 위대한 예술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없는 지경입니다. 자본주의 체제의 붕괴와 부패에서 나오는 부르주아 문학의 퇴폐와 해체는 현 시기 부르주아 문화와 부르주아 문학의 상태의 특징적 면모, 특징적 고유성입니다. 봉건제에 대한 부르주아 체제의 승리를 반영하던 부르주아 문학이 자본주의의 개화기에 위대한 작품들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시대는 가고 다시 오지 않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이 오그라들고 있습니다 — 주제도, 재능도, 작가도, 주인공도.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대한 죽음의 공포 속에서 파시즘은 문명에 복수를 하고 있으며, 사람들을 인류 역사의 가장 흉측하고 야만적인 시대로 되돌리고, 인류의 가장 좋은 두뇌들의 작품을 장작불에 태우며 야만스럽게 파괴하고 있습니다.
부르주아 문화의 퇴폐와 부패를 특징짓는 것은 신비주의와 미신의 난장판, 포르노그래피에 대한 탐닉입니다. 자본에 붓을 팔아넘긴 부르주아 문학의 「이름난 사람들」은 이제 도둑, 경찰 끄나풀, 창부, 건달입니다.
이 모든 것은 부르주아 체제의 부패를 감추려 애쓰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덴마크 왕국」은 만사형통이며 자본주의 체제에는 아직 썩은 것이 없다고 헛되이 증명하려 드는 문학 부류의 특징입니다[「덴마크 왕국」: 셰익스피어 《햄릿》의 「덴마크 왕국에는 무언가 썩은 것이 있다」에서 온 표현 — 옮긴이]. 사태를 더 날카롭게 느끼는 부르주아 문학의 대표자들은 비관주의에, 내일에 대한 회의에, 어둠의 예찬에 빠져 있으며, 비관주의를 예술의 이론이자 실천으로 치켜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직 작은 부분 — 가장 정직하고 멀리 보는 작가들 — 만이 다른 길에서, 다른 방향에서 출구를 찾아, 자기 운명을 프롤레타리아트와 그 혁명적 투쟁에 잇대려 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나라들의 프롤레타리아트는 이미 자기 작가들, 자기 예술가들의 군대 — 혁명적 작가들 — 를 벼려 내고 있으며, 그 대표자들을 오늘 여기 제1차 소비에트 작가대회에서 맞이하게 된 것을 우리는 기쁘게 생각합니다. 자본주의 나라들의 혁명적 작가 부대는 아직 크지 않지만, 계급투쟁이 격화되고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힘이 자람에 따라 나날이 자라고 있고 앞으로도 자랄 것입니다.
오늘 여기 있는 이 수십 명의 외국 동지들이,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만들어 낼 프롤레타리아 작가의 강력한 군대의 핵심이자 중핵을 대표한다고 우리는 굳게 믿습니다.
자본주의 나라들의 사정은 그러합니다.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소비에트 작가는 자기 예술 작품의 재료를, 소재와 형상과 예술적 언어와 말을 드네프로스트로이와 마그니토스트로이의 남녀들의 삶과 경험에서 길어 옵니다. 우리 작가는 첼류스킨호 탐험의 영웅적 서사시에서, 우리 집단농장의 경험에서, 우리나라 방방곡곡에서 끓어오르는 창조적 실천에서 재료를 길어 옵니다.
우리나라에서 문학 작품의 주된 주인공은 새 삶의 능동적 건설자들입니다. 남녀 노동자, 남녀 집단농장원, 당원, 경제 일꾼, 기사, 콤소몰원, 피오네르. 이것이 우리 소비에트 문학의 기본 유형이자 기본 주인공입니다. 우리 문학은 열정과 영웅적 기개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 문학은 낙관적입니다. 그러나 어떤 「내면의」 동물적 본능을 좇는 낙관주의가 아닙니다. 본질에서 낙관적인 것입니다. 상승하는 계급, 유일하게 진보적이고 전진적인 계급인 프롤레타리아트의 문학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소비에트 문학이 강한 것은 새로운 사업 — 사회주의 건설의 사업 — 에 복무하기 때문입니다.
스탈린 동지는 우리 작가들을 인간 영혼의 기사(技師)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이 칭호는 여러분에게 어떤 의무를 지웁니까?
이것은 첫째로, 예술 작품 속에 삶을 진실하게 그릴 수 있도록 삶을 안다는 것을 뜻합니다. 스콜라식으로, 죽은 것으로, 단순히 「객관적 현실」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그 혁명적 발전 속에서 그린다는 것입니다.
이때 예술적 묘사의 진실성과 역사적 구체성은 근로하는 사람들을 사회주의 정신으로 사상적으로 개조하고 교육하는 임무와 결합되어야 합니다. 문학과 문학 비평의 이런 방법이 우리가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방법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 소비에트 문학은 경향적이라는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소비에트 문학은 경향적입니다. 계급투쟁의 시대에 계급 문학이 아닌 문학, 경향적이지 않은 문학, 이른바 비정치적인 문학은 없고 있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는 우리 소비에트 작가라면 누구나, 우리 문학이 경향적이라고 떠드는 어떤 아둔한 부르주아에게든, 어떤 속물에게든, 어떤 부르주아 작가에게든 이렇게 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 우리 소비에트 문학은 경향적이며 우리는 그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우리 경향의 목적은 근로자를, 온 인류를 자본주의 노예제의 멍에에서 해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 영혼의 기사가 된다는 것은 두 발로 현실의 삶의 기초 위에 굳게 선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곧 낡은 유형의 낭만주의와의 결별을 뜻합니다. 존재하지 않는 삶과 존재하지 않는 주인공을 그리며, 독자를 현실의 삶의 모순과 억압에서 있을 수 없는 것의 세계로, 유토피아적 몽상의 세계로 데려가던 낭만주의 말입니다. 유물론적 기초 위에 두 발로 굳게 선 우리 문학에 낭만주의가 적대적일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것은 새로운 유형의 낭만주의, 혁명적 낭만주의여야 합니다. 우리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소비에트 문학과 문학 비평의 기본 방법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혁명적 낭만주의가 구성 부분으로서 문학 창작에 들어와야 함을 전제합니다. 우리 당의 삶 전체, 노동 계급의 삶 전체와 그 투쟁은 가장 준엄하고 냉정한 실천 사업을 최고의 영웅적 기개 및 웅대한 미래 전망과 결합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당이 언제나 강했던 것은 철저히 실무적이고 실천적인 정신을 폭넓은 시야와, 앞으로 나아가려는 끊임없는 지향과, 공산주의 사회 건설을 위한 투쟁과 결합해 왔고 지금도 결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비에트 문학은 우리의 주인공들을 그릴 줄 알아야 하고, 우리의 내일을 내다볼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유토피아적 몽상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의 내일은 계획적이고 의식적인 사업으로 오늘 이미 준비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학 작업의 기술을 알지 못하고서는 인간 영혼의 기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작가 작업의 기술에는 수많은 특수한 고유성이 있다는 점을 짚어 두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는 여러 종류의 무기가 있습니다. 소비에트 문학은 이 무기의 종류들(장르, 문체, 형식, 문학 창작의 수법)을 그 다양성과 충만함 속에서 쓸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앞선 모든 시대가 이 영역에서 만들어 낸 가장 좋은 것을 골라 쓸 수 있습니다. 이 점에서 글쓰기 기술의 습득, 모든 시대의 문학 유산의 비판적 소화는, 여러분이 인간 영혼의 기사가 되고자 한다면 반드시 수행해야 할 과제입니다.
동지들, 물질문화와 정신문화의 다른 영역들에서와 마찬가지로 프롤레타리아트는 세계 문학의 보고 속 가장 좋은 모든 것의 유일한 상속자입니다. 부르주아지는 제 문학 유산을 탕진했습니다. 그것을 정성껏 그러모으고 연구하고 비판적으로 소화하여 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인간 영혼의 기사가 된다는 것은 언어의 문화를 위해, 작품의 질을 위해 능동적으로 싸운다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 문학은 아직 우리 시대의 요구에 미치지 못합니다. 우리 문학의 약점은 사람들의 의식이 경제생활보다 뒤처진다는 사실의 반영이며, 우리 작가들도 물론 이 결함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자기 자신에 대한, 사회주의 정신에서의 자기의 사상적 무장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작업은, 그것 없이는 소비에트 문학가들이 독자의 의식을 개조할 수 없고 그럼으로써 인간 영혼의 기사가 될 수 없는 필수 조건입니다.
우리에게는 높은 예술적 생산의 숙련이 필요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문학의 질을 위한, 언어의 문화를 위한 투쟁에서 막심 고리키가 당과 프롤레타리아트에 주고 있는 도움은 아무리 높이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소비에트 작가들에게는, 우리 말로 하자면 우리 시대에 값하는 작품, 우리 시대의 사람들이 배울 수 있고 미래 세대의 자랑이 될 작품을 만들어 내는 데 필요한 모든 조건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문화가 자란 대중의 요구에 답하는 작품을 소비에트 문학이 만들어 낼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조건이 만들어졌습니다. 오직 우리 문학만이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에서처럼 독자와, 근로 인구 전체의 삶과 그토록 긴밀히 이어질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 대회 자체가 특별한 의의를 지닙니다. 대회의 준비는 작가들만이 아니라 온 나라가 그들과 함께 수행했습니다. 이 준비 과정에서 당과 노동자와 집단농장 농민이 소비에트 작가를 둘러싸고 보이는 사랑과 관심을, 그리고 우리 노동 계급과 집단농장원이 소비에트 작가를 대하는 태도의 특징인 배려와 동시에 엄격한 요구를 뚜렷이 볼 수 있었습니다. 오직 우리나라에서만 문학과 작가에게 이토록 높아진 중요성이 주어집니다.
여러분의 대회의 사업과 소비에트 작가동맹의 앞으로의 사업을, 우리 작가들의 창작이 사회주의가 거둔 승리들에 걸맞도록 조직하십시오.
높은 성취의, 높은 사상적·예술적 내용의 작품을 만드십시오.
사람들의 의식을 사회주의 정신으로 개조하는 일을 능동적으로 도우십시오.
계급 없는 사회주의 사회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의 앞줄에 서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