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에서 살아남아 감옥에서 죽은 논객
"스탈린과 모세의 차이를 아십니까? 모세는 유대인들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왔지만, 스탈린 동지는 유대인들을 정치국에서 데리고 나왔지요." — 트로츠키와 지노비예프가 정치국에서 축출된 뒤 라데크가 바자노프에게 던진 농담.
폴란드계 유대인 출신으로 국제 사회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운동을 오간 저널리스트·외교가였다. 레닌의 측근으로 브레스트-리토프스크 협상과 코민테른 창립에 참여했고, 볼셰비키 중앙위원·코민테른 서기를 지냈다. 날카로운 논쟁과 비꼬는 유머로 이름난 좌익 반대파 지도자였으나, 1930년 공개 자아비판으로 복당했다. 대숙청 속 제2차 모스크바 재판의 중심 피고로 법정에서 연극적 자백을 펼쳐 10년형을 받았고, 1939년 옥중에서 스탈린의 지시로 살해됐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17–1923국제 공산주의·외교 활동
- 1923–1927좌익 반대파 지도부
- 1937–1939재판, 수감과 살해
관련 역사 사건
- 1907–1919제2인터내셔널의 붕괴치머발트 좌파 선언 초안좌파의 선언 초안을 쓰고 좌파 사무국에 들어갔다.
- 1917.12–1918.11브레스트 강화와 독일의 동방 점령브레스트-리토프스크 협상 참여자레닌의 측근으로 브레스트-리토프스크 협상에 참여했다.
- 1918–19231차 세계대전의 여파: 강화 조약과 혁명의 물결코민테른의 독일 전문가1923년 독일에서의 조기 봉기를 주장했다.
- 1918.10–1919.08독일 11월 혁명공산당 창당 대회의 볼셰비키 사절창당 대회에 참석하고 1월 봉기에 반대했으며 1919년 2월 체포되었다.
- 1919–1921소비에트-폴란드 전쟁코민테른의 폴란드통 · 폴란드 봉기 전망에 회의적코민테른의 폴란드 전문가로 진격 전부터 폴란드 민족주의의 힘을 경고하며 노동자 봉기 전망에 회의적이었다.
- 1919–1921코민테른의 창설집행위원회 서기창립 대회 때는 독일 감옥에 있었고, 풀려난 뒤 1920년 집행위원회 서기를 지냈다.
- 1921–1928신경제정책(네프)좌익 반대파 지도부로 네프 정책 논쟁에 참여
- 1923–1927레닌 사후 권력투쟁과 좌익 반대파좌익 반대파 지도자좌익 반대파 지도부에서 활동했다.
- 1937–1938대숙청좌익 반대파 표적1937년 재판 뒤 수감됐고 1939년 감옥에서 살해됐다.
제2차 모스크바 재판과 수감 중 죽음
1936년 9월 체포된 라데크는 1937년 1월 '반소비에트 트로츠키스트 평행중심' 사건(제2차 모스크바 재판)의 중심 피고인이 되었다. 법정에서 그는 상세한 자백을 연극적으로 풀어냈다. 참관한 독일 작가 리온 포이히트방어는 라데크가 퍄타코프를 마이크에서 밀쳐내고, 레몬을 띄운 차를 홀짝이며 '괴물 같은 범행'을 태연히 이야기하는 모습을 기록했다. 1937년 1월 30일, 예상을 깨고 사형이 아닌 10년형이 선고되었다. 이는 곧 열릴 제3차 재판에서 부하린에게 불리한 추가 증언을 확보하려는 의도였다는 해석이 있다. 라데크는 베르흐네우랄스크 정치격리소로 이감되었고, 1939년 5월 19일 같은 수감자에게 목 졸려 살해당했다. 1956~1961년 KGB 조사에서 이 살인은 스탈린의 직접 지시로 베리야와 코불로프가 조직하고, 실무는 NKVD 작전장교 쿠밧킨이 주도했으며, 실행범 '바레즈니코프'는 실제로는 NKVD 소속 요원 I.I. 스테파노프였음이 밝혀졌다. 1988년 사후 복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