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머발트 회의 문서 (1915)
인물블라디미르 레닌, 카를 라데크, 레프 트로츠키, 로베르트 그림, 파벨 악셀로드, 크리스티안 라콥스키, 바실 콜라로프, 야코프 가네츠키, 안젤리카 발라바노바, 장 조레스, 카를 리프크네히트, 로자 룩셈부르크, 클라라 체트킨, 카를 카우츠키, 게오르기 플레하노프 용어치머발트 운동, 제국주의 전쟁, 제2인터내셔널, 독일 사회민주당 (SPD) 사건제2인터내셔널의 붕괴 학습사회주의의 분기 · 13장 전쟁에 반대하는 사회주의자는 평화를 외치는 것으로 충분할까?
치머발트 선언: 유럽의 프롤레타리아여!
유럽의 프롤레타리아여!
전쟁이 일 년 넘게 계속되고 있다. 수백만의 주검이 싸움터를 뒤덮고, 수백만의 사람이 평생 불구가 되었다. 유럽은 거대한 인간 도살장이 되었다. 여러 세대의 노동으로 이룩한 문화 전체가 황폐해질 운명에 놓였다. 가장 사나운 야만이 오늘날 지금까지 인류의 자랑이던 모든 것 위에서 개가를 올리고 있다.
이 전쟁이 터진 직접적 책임에 관한 진실이 무엇이든,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 혼돈을 낳은 전쟁은 제국주의의 결과, 곧 각 나라 자본가 계급이 인간의 노동과 지구 전체의 천연자원을 착취하여 이윤욕을 채우려 한 결과다.
경제적으로 뒤처졌거나 정치적으로 약한 민족들은 그 과정에서 열강에게 예속된다. 열강은 이 전쟁에서 세계 지도를 자기들의 착취 이익에 맞게 피와 철로 다시 그리려 한다. 그리하여 벨기에, 폴란드, 발칸 국가들, 아르메니아처럼 민족과 나라 전체가 보상 거래의 노획물로서 통째로 또는 조각조각 찢겨 병합될 운명에 처해 있다.
전쟁을 움직이는 힘은 전쟁이 진행될수록 그 비열함을 남김없이 드러낸다. 이 세계적 파국의 의미를 민중의 의식에서 가리던 장막이 한 조각씩 떨어져 나간다. 민중이 흘린 피로 전쟁 이윤이라는 붉은 금화를 찍어 내는 모든 나라의 자본가들은 이 전쟁이 조국과 민주주의를 지키고 억압받는 민족을 해방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실제로 그들은 폐허가 된 땅에 자기 민족의 자유를 다른 민족들의 독립과 함께 묻고 있다. 새로운 족쇄, 새로운 사슬, 새로운 짐이 생겨나고, 이긴 나라든 진 나라든 모든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가 그것을 짊어져야 할 것이다. 전쟁이 터질 때 사람들은 번영이 커질 것이라고 들었다. 실제 결과는 궁핍과 결핍, 실업과 물가고, 영양실조와 전염병이다.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전쟁 비용이 민중의 가장 좋은 힘을 삼키고, 사회 개혁의 성과를 위협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모든 걸음을 가로막을 것이다.
문화의 황폐, 경제의 쇠퇴, 정치적 반동, 이것이 이 끔찍한 민족 간 격투가 내리는 축복이다.
이렇게 전쟁은 현대 자본주의의 벌거벗은 모습을 드러낸다. 현대 자본주의는 노동자 대중의 이익, 역사 발전의 요구와 양립할 수 없게 되었을 뿐 아니라 인간 공동체의 가장 기초적인 조건과도 양립할 수 없게 되었다.
민중의 운명을 손에 쥐고 있던 자본주의 사회의 지배 세력, 군주제 정부와 공화제 정부, 비밀 외교, 강력한 기업가 단체, 부르주아 정당, 자본가 신문, 교회, 이 모두가 이 전쟁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져야 한다. 이 전쟁은 그들을 먹여 살리고 그들이 지켜 온 사회 질서에서 생겨났고, 그들의 이익을 위해 수행되고 있다.
노동자여! 전쟁이 터지고 너희를 도살장으로, 죽음으로 끌고 가야 할 때가 오자, 착취당하고 권리를 빼앗기고 멸시받던 너희를 저들은 형제요 전우라고 불렀다. 그리고 군국주의가 너희를 불구로 만들고 갈가리 찢고 짓밟고 없애는 지금, 지배자들은 너희에게 너희의 이익과 목표와 이상을 내버리라고, 한마디로 성내 평화에 노예처럼 복종하라고 요구한다. 너희는 생각과 감정과 고통을 말할 길을 빼앗겼고, 요구를 내걸고 지켜 낼 길을 막혔다. 언론에는 재갈이 물렸고 정치적 권리와 자유는 짓밟혔다. 오늘날 이렇게 군사독재가 철권으로 다스리고 있다.
유럽과 인류의 미래 전체를 위협하는 이 상태를 우리는 더 이상 손 놓고 바라볼 수 없고, 바라보아서도 안 된다. 수십 년 동안 사회주의 프롤레타리아트는 군국주의에 맞서 싸워 왔다. 그 대표들은 각국과 국제 회합에서 제국주의로부터 점점 더 위협적으로 자라나는 전쟁의 위험을 갈수록 깊이 걱정하며 논의했다. 슈투트가르트에서, 코펜하겐에서, 바젤에서 국제 사회주의 대회는 프롤레타리아트가 걸어야 할 길을 그려 주었다.
이 길을 함께 정한 여러 나라의 사회주의 정당과 노동자 조직은 전쟁이 시작된 뒤로 거기서 나오는 의무를 저버렸다. 그 대표자들은 노동자들에게 프롤레타리아 해방의 유일하게 가능하고 효과적인 수단인 계급투쟁을 멈추라고 촉구했다. 그들은 지배계급에게 전쟁 수행을 위한 공채를 승인해 주었고, 정부에 온갖 봉사를 자청했으며, 자기 신문과 특사를 통해 중립국들을 자국 정부의 정책 편으로 끌어들이려 했고, 성내 평화를 지키는 인질로 사회주의자 장관들을 정부에 내주었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노동계급 앞에서, 노동계급의 현재와 미래 앞에서 이 전쟁과 그 목적과 방법에 대한 책임을 떠맡았다. 그리고 개별 정당들이 그랬듯이, 모든 나라 사회주의자들을 대표할 가장 정당한 기관인 국제사회주의사무국도 제 구실을 하지 못했다.
이런 사실들도 탓이 되어, 전쟁 첫 시기의 민족적 공황에 휩쓸리지 않았거나 거기서 벗어난 국제 노동계급마저 민족 학살 두 해째인 지금까지 모든 나라에서 동시에 평화를 위한 적극적 투쟁에 나설 수단과 방도를 찾지 못했다.
이 견딜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 사회주의 정당들과 노동조합들과 그 소수파의 대표들, 우리 독일인, 프랑스인, 이탈리아인, 러시아인, 폴란드인, 라트비아인, 루마니아인, 불가리아인, 스웨덴인, 노르웨이인, 네덜란드인, 스위스인, 착취계급과의 민족적 연대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의 국제적 연대와 계급투쟁의 토대 위에 선 우리는, 끊어진 국제 관계의 실을 다시 잇고 노동계급에게 제정신을 차리고 평화를 위해 싸우라고 호소하려고 함께 모였다.
이 투쟁은 자유를 위한, 민족 간 형제애를 위한,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이다. 평화를 위한 이 싸움, 병합과 배상금 없는 평화를 위한 싸움에 나서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평화는 민족들의 권리와 자유를 짓밟으려는 모든 생각을 단죄해야만 가능하다. 나라 전체의 점령이든 일부 지역의 점령이든, 점령이 강제 병합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공공연한 것이든 위장된 것이든 어떠한 병합도 안 되며, 정치적 권리 박탈로 더욱 견딜 수 없게 되는 강제적 경제 편입도 안 된다. 민족자결권은 민족 관계를 정하는 데서 흔들림 없는 원칙이 되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여! 전쟁이 터진 뒤로 너희는 너희의 활력과 용기와 인내를 지배계급에게 바쳐 왔다. 이제는 너희 자신의 대의를 위해, 사회주의의 거룩한 목표를 위해, 억압받는 민족과 예속된 계급의 해방을 위해, 타협 없는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으로 나서야 한다.
교전국 사회주의자들의 과제이자 의무는 이 투쟁에 온 힘을 다해 나서는 것이고, 중립국 사회주의자들의 과제이자 의무는 피비린내 나는 야만에 맞선 이 싸움에서 형제들을 모든 효과적인 수단으로 돕는 것이다.
세계사에 이보다 더 절박하고, 더 높고, 더 숭고한 과제는 없었다. 그 과제를 이루는 것이 우리 공동의 일이어야 한다. 이 목표, 곧 민족들 사이의 평화에 이르기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지나치게 크지 않고 어떤 짐도 지나치게 무겁지 않다.
남녀 노동자여! 어머니와 아버지여! 과부와 고아여! 부상자와 불구자여! 전쟁으로 고통받는 너희 모두에게 우리는 국경을 넘어, 김 오르는 싸움터를 넘어, 무너진 도시와 마을을 넘어 외친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치머발트(스위스), 1915년 9월
국제사회주의대회의 이름으로
- 독일 대표단: 게오르크 레데부어, 아돌프 호프만
- 프랑스 대표단: A. 부르드롱, A. 메르앵
- 이탈리아 대표단: G. E. 모딜리아니, 코스탄티노 라차리
- 러시아 대표단: N. 레닌, 파벨 악셀로드, M. 보브로프[1]
- 폴란드 대표단: St. 와핀스키, A. 바르스키, Cz. 가네츠키
- 발칸 사회주의 연맹: 루마니아 대표단의 이름으로 C. 라콥스키, 불가리아 대표단의 이름으로 바실 콜라로프
- 스웨덴·노르웨이 대표단: Z. 회글룬드, 투레 네르만
- 네덜란드 대표단: H. 롤란트 홀스트
- 스위스 대표단: 로베르트 그림, 샤를 넨
동정 선언
치머발트 국제사회주의대회는 전쟁의 수많은 희생자들, 폴란드 민족과 벨기에 민족, 박해받는 유대 민족과 아르메니아 민족, 헤아릴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며 전대미문의 참상을 겪어야 했던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깊은 애도를 보낸다.
대회는 이 전쟁의 첫 희생자로서 배외주의에 맞서 평화를 위해 싸우다 순교자이자 투사로 쓰러진 위대한 사회주의자 장 조레스를 기리고, 피 흘리는 싸움터에서 젊은 목숨을 바쳐야 했던 사회주의 투사 투초비치와 카타네시를 추모한다.
대회는 러시아의 영광스러운 혁명적 과거를 이어 가는 시베리아 유형 중인 두마 의원들, 각자 자기 나라에서 노동자들의 성내 평화 정책에 맞서 싸움에 나섰다가 군국주의에 묶인 리프크네히트 동지와 모나트 동지, 사회주의 신념 때문에 투옥된 룩셈부르크 동지와 클라라 체트킨 동지, 그리고 전쟁에 맞서 싸웠다는 이유로 박해받거나 체포된 모든 동지들에게 깊은 형제적 연대를 보낸다.
대회는 이 용감한 투사들의 본을 따르고, 국제 프롤레타리아트 대중 속에 혁명 정신을 일깨워 형제를 죽이는 전쟁과 자본주의 사회에 맞선 투쟁으로 그들을 단결시키는 과제를 쉼 없이 추구함으로써, 산 자와 죽은 자를 기리겠다고 엄숙히 서약한다.
공식 의사 보고 발췌: 좌파 결의안과 선언 채택의 경위
폴란드 지역 집행부, 러시아 중앙위원회, 라트비아인, 스웨덴인과 노르웨이인의 대표단은 대회의 원칙적 입장을 정할 결의안 초안을 냈다. 이 결의안의 제안 설명에서는, 세계대전과 인터내셔널의 붕괴에 대해 원칙적 입장을 정하지 않고서는 평화 호소문을 내기 어렵다고 했다. 평화 운동의 전제와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하며, 무엇보다 노동계급에게 이 분명함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부르주아의 전쟁 지속 정책에서 벗어난 뒤에야 비로소 평화를 위한 투쟁이 가능하며, 이 투쟁은 내용에서나 수단에서나 혁명적이어야 한다. 평화 운동은 평화라는 목표에만 머물 수 없다. 사회적 대립이 이만큼 첨예한 상황에서 평화 운동은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으로 넘어갈 것이다. 선동 방식을 통해 평화 운동의 이러한 내용을 정하는 것이 사회민주주의의 둘째 과제다. 부르주아 사회 안에서는 제국주의의 위험을 막을 수 없으므로, 평화를 위한 투쟁은 동시에 자본주의에 맞선 혁명적 투쟁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견해에 대해 여러 참석자가 반론을 폈다. 원칙을 논하고 일반 강령을 정하는 일은 주최 측이 대회에 정해 준 목표, 각국 참가자들이 그것을 믿고 참가한 목표를 넘어선다는 것이었다. 국제 사회주의 정치의 새로운 방향 설정이 아무리 중요해도 그것이 이 대회의 과제일 수는 없다. 이 대회가 분열을 일으키고 새 인터내셔널을 세우려 한다는 인상을 결코 주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제출된 결의안을 채택하면 바로 그렇게 될 것이고, 더구나 그 결의안은 지금의 논의에서 빠져야 할 투쟁 수단을 제안하고 있다. 대회는 어느 한 경향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되며, 사회주의 세계관의 토대 위에서 성내 평화에 맞서 싸우고 각국의 군사적 상황과 상관없이 전쟁의 조속한 종결을 위해 나서려는 모든 세력이 함께할 수 있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국제 평화 운동을 시작하려고 애써야 한다. 이 토대 위에서 갈라놓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묶는 것을 내세워야 한다. 그러려면 당장은 결의안이 필요 없다. 필요한 것은 유럽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보내는 성명, 사실을 드러내고 있는 그대로를 말하며 노동계급에게 단호한 행동과 계급투쟁의 재개를 촉구하는 투쟁의 외침이다. 이런 취지라면 결의안을 준비한 쪽이 낸 초안도 이미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대회는 말없이 선언을 내기로 결정했다.[2] 토론 과정에서 성명 초안이 두 개 더 제출되었다. 세 초안은 모두 위원회로 넘어갔고, 위원회가 대회에 단일 초안을 냈다. 이 초안은 사소한 수정을 거쳐 만장일치로, 열광 속에 채택되었다. 결의안 초안을 낸 사람들도 모두 위원회 초안에 찬성했으며, 몇몇 사실을 더 날카롭게 강조하고 투쟁 수단을 더 분명히 적었으면 좋았겠지만 이것은 투쟁의 외침이므로 인터내셔널의 다른 부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우겠으며 그럼으로써 행동의 일치와 통일에 이바지하겠다고 밝혔다.
좌파 결의안 초안: 세계대전과 사회민주주의의 과제
한 해째 유럽을 황폐하게 만들고 있는 세계대전은 제국주의 전쟁이다. 이 전쟁은 세계의 정치적·경제적 착취를 위해, 판매 시장과 원료 산지와 자본 투자 지역 따위를 위해 수행되고 있다. 이 전쟁은 자본주의 발전의 산물이다. 자본주의 발전은 온 세계를 하나의 세계경제로 묶는 동시에, 이해관계가 서로 대립하는 독자적인 국민국가 단위의 자본가 집단들을 그대로 남겨 둔다.
부르주아지와 정부들이 이것이 강요된 싸움, 민족 독립을 위한 싸움이라고 주장하며 세계대전의 이런 성격을 감추려 한다면, 그것은 프롤레타리아트를 속이는 일이다. 전쟁은 바로 다른 민족과 다른 나라를 억압하기 위해 수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전쟁에서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전설도 똑같이 거짓이다. 제국주의란 대자본의 가장 무자비한 지배이자 정치적 반동이기 때문이다.
제국주의는 그것을 낳은 대립을 해소해야만, 곧 자본주의 문화권을 사회주의적으로 조직해야만 극복할 수 있다. 그렇게 할 객관적 조건은 이미 무르익었다.
전쟁이 터졌을 때 노동자 지도자 다수는 이 유일하게 가능한 구호를 제국주의에 맞세우지 않았다. 민족주의에 사로잡히고 기회주의에 좀먹은 그들은 세계대전의 순간에 프롤레타리아트를 제국주의에 넘겨주었고, 사회주의의 원칙을, 그와 함께 프롤레타리아트의 이익을 위한 진정한 투쟁을 내던졌다.
사회애국주의와 사회제국주의는 독일에서는 공공연히 애국적인 옛 사회민주당 지도자 다수와 반대파 행세를 하는 카우츠키 주변의 당 중앙파가 함께 서 있는 입장이며,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에서는 다수가, 영국과 러시아에서는 지도자 일부(하인드먼, 페이비언들, 노동조합주의자들, 플레하노프, 루바노비치, 『나셰 델로』 그룹)가 지지하는 입장이다. 이것은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부르주아 제국주의의 사도들보다 더 위험한 적이다. 사회주의의 깃발을 악용하여 깨어나지 못한 노동자들을 속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제국주의에 맞선 무자비한 투쟁은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동원과 인터내셔널 재건의 첫째 전제 조건이다.
사회주의 정당들의 과제, 그리고 이제 사회제국주의 정당이 되어 버린 당들 안의 사회주의 반대파의 과제는 노동자 대중을 불러 모아, 사회의 사회주의적 조직을 목표로 정치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자본가 정부에 맞선 혁명적 투쟁으로 이끄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한 치의 땅을 위한 투쟁, 프롤레타리아트를 강화하는 모든 개혁을 위한 투쟁을 포기하지 않고, 조직과 각성의 어떤 수단도 버리지 않으면서,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자들은 거꾸로 모든 투쟁, 우리 최소 강령이 요구하는 모든 개혁을 이용하여 이 전쟁 위기를, 자본주의의 다른 모든 사회적·정치적 위기와 마찬가지로, 더욱 첨예하게 만들고 자본주의의 토대에 대한 공격으로 넓혀야 한다. 이 투쟁이 사회주의의 구호 아래 수행될 때, 그것은 노동자 대중이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억압하자는 구호, 곧 한 민족의 다른 민족 지배를 유지하자는 주장과 새로운 병합을 외치는 소리에 넘어가지 않게 할 것이며, 프롤레타리아들을 싸움터로 끌고 간 민족적 연대의 유혹에 귀를 막게 할 것이다.
이 투쟁의 서막은 세계대전에 맞선 투쟁, 민족 학살의 신속한 종식을 위한 투쟁이다. 이 투쟁은 다음을 요구한다. 전쟁공채의 거부, 내각에서의 탈퇴, 의회 연단과 합법 언론, 필요하면 비합법 언론의 지면에서 전쟁의 자본주의적·반사회주의적 성격을 고발하는 일, 사회애국주의에 맞선 가장 단호한 투쟁, 전쟁의 결과(궁핍, 막대한 인명 손실 따위)로 일어나는 모든 민중 운동을 이용하여 정부에 맞선 거리 시위를 조직하는 일, 참호 속에서 국제적 연대를 선전하는 일, 경제 파업을 지원하고 조건이 유리하면 그것을 정치 파업으로 바꾸려 애쓰는 일. “성내 평화가 아니라 성내 전쟁이 구호다!”[*]
외교와 정부들의 어떤 결정으로 항구적 평화의 기초를 놓고 군비 축소를 시작할 수 있으리라는 온갖 환상에 맞서,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오직 사회혁명만이 항구적 평화와 인류의 해방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을 민중에게 거듭 말해야 한다.
좌파 선언 초안
전쟁은 벌써 일 년 넘게 계속되고 있다. 수백만의 주검이 싸움터를 뒤덮고, 수백만의 불구자는 평생 자신과 사회의 짐으로 남는다. 전쟁이 일으킨 파괴, 전쟁이 남길 세금의 짐은 엄청나다.
프롤레타리아트가 흘린 피로 막대한 전쟁 이윤이라는 붉은 금화를 찍어 내는 모든 나라의 자본가들은 민중에게 끝까지 버티라고 요구한다. 그들은 이 전쟁이 모든 나라의 조국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어느 나라의 자본가도 제 나라의 독립이 위협받아서, 또는 어떤 민족을 해방하고 싶어서 전쟁에 나서지 않았다. 그들이 대중을 도살장으로 끌고 간 것은 여러 민족을 착취와 억압 아래 두고 싶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직 독립해 있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민족들을 어떻게 나누어 가질지 합의하지 못했고, 이미 손에 넣은 노획물을 서로 빼앗아 가지나 않을까 의심했다.
유럽이라 불리는 이 거대한 도살장 곳곳에서 민중이 피 흘리는 것은 자기 자유를 위해서도, 다른 민족의 해방을 위해서도 아니다. 이 전쟁은 유럽의 프롤레타리아트와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민족들에게 새로운 짐, 새로운 사슬을 안길 것이다.
그러므로 민족을 죽이는 이 전쟁에서 끝까지 버틸 것이 아니라, 거꾸로 모든 힘을 모아 이 전쟁을 끝내야 한다. 그때가 이미 왔다. 너희 투쟁의 첫걸음은 이런 요구여야 한다. 너희가 자본주의와 군국주의와 민중 착취에 맞서 싸우라고 의회에 보낸 사회주의 의원들이 자기 의무를 다하라는 것이다. 러시아, 세르비아, 이탈리아의 사회주의 의원들과 리프크네히트, 륄레 의원을 빼고는 지금까지 이 의무를 짓밟고, 약탈 전쟁에서 부르주아지를 돕거나 머뭇거리며 책임을 피해 온 그들은, 의원직을 내놓든지, 아니면 의회 연단을 이용해 민중에게 전쟁의 성격을 깨우치고 의회 밖에서 노동계급이 투쟁에 나서도록 도와야 한다. 모든 전쟁공채의 거부, 프랑스와 벨기에와 영국에서의 내각 탈퇴, 이것이 첫째 요구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모자란다. 너희의 피를 마시는 맹수, 세계대전에서 의원들이 너희를 구해 줄 수는 없다. 너희 스스로 나서야 한다. 너희는 너희의 모든 조직과 신문을 이용하여 전쟁의 짐 아래 신음하는 가장 넓은 민중을 흔들어 깨우고, 그들이 전쟁에 맞서 일어서게 해야 한다. 너희는 거리로 나가 지배자들의 귀에 “학살은 이제 그만!”이라는 너희의 외침을 쩌렁쩌렁 울려야 한다. 지배자들이 못 들은 척한다면, 아직 깨어나지 못했으나 불만에 찬 민중이 그 외침을 듣고 투쟁에 함께하려고 너희 대열로 달려올 것이다.
전쟁의 즉각 중단을 거세게 요구해야 하고,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억압하는 데 맞서, 어느 자본주의 정부든 승리하여 남에게 평화를 강요할 수 있게 되면 벌일 민족의 분할에 맞서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자본가들이 민중에게 묻지 않고 전쟁을 결정했듯이 강화에서도 그들에게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 둔다면, 새로운 정복은 승전국에서조차 경찰의 주먹과 반동을 강화할 뿐 아니라 새롭고 더 끔찍한 전쟁의 씨앗을 뿌릴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가 정부의 타도, 이것이 모든 교전국의 노동계급이 스스로 세워야 할 목표다. 민족들의 삶과 죽음을 결정할 권력을 자본에게서 빼앗을 때에만 한 민족의 다른 민족 억압과 전쟁이 끝날 것이기 때문이다. 궁핍과 비참에서, 자본의 지배에서 해방된 민족들만이 전쟁 없이, 우애롭게, 합의를 통해 서로의 관계를 꾸려 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너희에게 보여 주는 목표는 크다. 그 목표에 이르기까지 너희가 들여야 할 노력도 크고, 치러야 할 희생도 클 것이다. 너희와 승리 사이의 길은 멀다. 평화적인 압력 수단으로는 적을 무릎 꿇릴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싸움터에서 자본을 위해 바치는 헤아릴 수 없는 희생의 일부를 자본에 맞선 투쟁에서 너희 자신의 해방을 위해 바칠 각오가 되어 있을 때에만, 너희는 전쟁을 끝내고, 자본의 노예인 너희를 자유인으로 바꿀 항구적 평화의 참된 기초를 놓을 수 있을 것이다. 부르주아지와 그들을 지지하는 사회주의 정당들의 거짓된 문구에 넘어가 힘찬 투쟁을 삼가고, 끝장을 볼 각오로 몸과 마음을 대의에 바칠 생각 없이 평화를 바라는 한숨에 만족한다면, 자본은 마음 내키는 대로 오래도록 너희의 피와 재산을 탕진할 것이다. 모든 나라에서 우리처럼 생각하는 노동자의 수가 날마다 늘고 있다. 그들의 위임을 받아 여러 나라의 대표인 우리가 모여, 너희에게 이 투쟁의 호소를 보낸다. 우리는 서로 도우며 함께 이 투쟁을 이끌 것이다. 우리를 갈라놓는 대립은 없기 때문이다. 각 나라의 혁명적 노동자들이 이 투쟁에서 다른 나라 노동자들에게 활력과 헌신의 본보기가 되는 것을 자신의 명예로운 권리이자 의무로 여겨야 한다. 남들이 무엇을 하는지 겁내며 기다릴 것이 아니라 본보기로 남들을 이끌어 가는 것, 그것이 전쟁과 자본주의를 끝장낼 강력한 인터내셔널이 생겨날 길이다.
두 초안에는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중앙위원회, 러시아령 폴란드·리투아니아 사회민주당 지역 집행부, 라트비아 사회민주당 중앙위원회, 스웨덴·노르웨이 사회민주주의 청년 동맹의 대표단, 독일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자의 대표 한 명, 스위스 대의원 한 명이 서명했다.[**]
주석
- 옮긴이: M. 보브로프는 사회혁명당 중앙위원회 대표로 참석한 마르크 나탄손의 가명이다. 러시아 대표단 칸에 사회민주노동당 두 분파(레닌, 악셀로드)와 사회혁명당이 함께 서명했다. ↩
- 옮긴이: 의사 보고는 표결 수를 적지 않았다. 레닌은 「첫걸음」(『사회민주주의자』 제45~46호, 1915년 10월 11일)에서 대회가 좌파의 결의안 초안을 위원회에 넘기기를 19 대 12로 거부했고, 좌파의 선언 초안은 다른 두 초안과 함께 위원회로 넘어갔다고 썼다. ↩
- [*] 이 말은 독일 반대파의 한 저명한 지도자가 치머발트 회의에 보낸 편지에서 따온 것이다. (옮긴이: 회의에 오지 못한 카를 리프크네히트의 편지를 가리킨다.) ↩
- [**] 방금 들은 바에 따르면, 얼마 전 결성된 “독일 국제사회주의자”(I.S.D.) 그룹이 치머발트 좌파의 입장에 선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