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공산당
Communist Party of Germany
1918년 12월 30일부터 1919년 1월 1일까지 베를린에서 열린 창립 대회로 스파르타쿠스단을 중심으로 결성된 독일의 공산당. 코민테른 창립 회원으로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유럽 최대의 공산당이었고, 1933년 나치 정권에 금지된 뒤 지하와 망명지에서 활동했다. 전후 소련 점령지구에서는 1946년 사회민주당과 강제 합당해 독일 사회주의통일당이 되었고, 서독에서는 1956년 연방헌법재판소 판결로 금지되었다.
상세
당의 중심은 사회민주당의 전쟁 지지에 반대한 카를 리프크네히트와 로자 룩셈부르크의 스파르타쿠스단이었고, 여기에 함부르크·브레멘 등 북독일의 독일 국제공산주의자(IKD)가 합류했다. 창립 대회 장소를 영어 출처는 베를린 시의회 연회장으로, 독일어 출처는 프로이센 주의회 연회장으로 적는다. 1919년 1월 스파르타쿠스 봉기 중 리프크네히트와 룩셈부르크가 자유군단에 살해되었고, 3월에는 레오 요기헤스도 살해되었다. 뒤를 이은 파울 레비가 의회 선거 참여를 관철하자 평의회 공산주의자들이 탈당해 독일 공산주의 노동자당(KAPD)을 세웠다. 1920년 12월 독립사회민주당 좌파와 합쳐 통일 독일 공산당(VKPD)이 되면서 대중 정당이 되었는데, 당원 규모를 영어 출처는 1920년 35만~40만 명으로, 독일어 출처는 1921년 초 35만 6천 명으로 적는다.
1921년 3월 중부 독일 봉기가 실패한 뒤 레비는 당과 코민테른에서 쫓겨났다. 1923년 10월 당은 작센과 튀링겐에서 사회민주당과 연립정부를 이루었으나 정부군의 개입으로 무너졌고, 함부르크 봉기도 실패하면서 브란들러·탈하이머 지도부가 물러났다. 1924년 루트 피셔·아르카디 마슬로프의 좌파가 지도부를 잡았고, 1925년 스탈린의 개입으로 에른스트 텔만이 의장이 되었다. 1928년 텔만은 측근의 횡령 사건으로 중앙위원회에서 해임되었으나 코민테른의 결정으로 복귀했고, 이후 브란들러 등 우파를 축출했다. 당은 사회민주당을 「사회파시스트」로 규정해 주적으로 삼았고, 1932년 11월 선거에서 16%, 100석을 얻었다.
1933년 2월 27일 국회의사당 화재 다음 날 긴급명령으로 기본권이 정지되고 당 간부들이 체포되었다. 독일어 출처에 따르면 3월까지 텔만을 포함해 공산주의자 7,500명이 체포되었고, 당은 3월 5일 선거에서 12.3%를 얻었으나 의석은 3월 8일 무효화되었다. 당은 지하 조직을 유지했고, 빌헬름 피크와 발터 울브리히트 등 지도자는 소련으로 망명했다. 1937~1938년 대숙청 때 후고 에벌라인 등 망명 지도자 다수가 소련에서 처형되었다.
1945년 소련 점령지구에서 울브리히트 그룹 등이 당을 재건했고, 1946년 4월 21일 사회민주당과 강제 합당해 독일 사회주의통일당이 되었다. 서독 지역의 당은 1949년 첫 연방하원 선거에서 5.7%를 얻었으나 1953년 2.2%로 의석을 모두 잃었고, 1956년 8월 17일 연방헌법재판소 판결로 금지되었다. 1968년 일부 전 당원이 독일 공산당(DKP)을 세웠는데, 영어 출처 서두는 이를 1969년으로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