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1991

당 최고 지도자

실제 권력의 중심이었던 공산당 최고 지도부.

지도부 타임라인

  1. 1922–1953 이오시프 비사리오노비치 스탈린 서기장 · 당-국가 최고권력
  2. 1953–1964 니키타 세르게예비치 흐루쇼프 제1서기 · 각료회의 의장
  3. 1964–1982 레오니트 일리치 브레즈네프 제1서기 · 서기장
  4. 1982–1984 유리 블라디미로비치 안드로포프 서기장
  5. 1984–1985 콘스탄틴 우스티노비치 체르넨코 서기장
  6. 1985–1991 미하일 세르게예비치 고르바초프 서기장 · 대통령

소속 인물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Владимир Ильич Ленин
당 최고 지도자 소련 러시아 1870–1924 ○ 병사

갈림길마다 방향을 바꾼 조타수

1917년 4월 3일 밤, 핀란드역. 망명에서 돌아온 레닌은 장갑차 위에 올라 「사랑하는 동지들, 군인·수병·노동자들이여!」라고 외쳤다. 사회주의 혁명 만세로 끝맺은 그 순간, 당의 방향은 완전히 바뀌었다.

1917년 4월에는 모두가 미쳤다던 테제로 당을 뒤집었고, 10월에는 봉기를 밀어붙였으며, 1918년 브레스트에서는 회의실에서 가장 신중한 후퇴파였고, 1921년에는 네프로 다시 후퇴했다. 확신과 유연함의 그 결합은 복제되지 못했다. 1922년부터 뇌졸중이 그를 삼켰고, 마지막 구술은 스탈린을 서기장에서 옮기라는 경고였다. 경고는 봉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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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95–1900체포, 시베리아 유형
  • 1900–05이스크라, 『무엇을 할 것인가』, 볼셰비키 분파 형성
  • 1902《무엇을 할 것인가?》 출간
  • 1909《유물론과 경험비판론》 출간
  • 1914–17치머발트 좌파,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
  • 1916《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 집필·출간
  • 1917.4귀국, 4월 테제
  • 1917.10봉기 관철, 인민위원회의 의장
  • 1918–21브레스트 강화, 내전, 전시공산주의
  • 1918《국가와 혁명》 출간(1917년 집필)
  • 1921네프로의 후퇴
  • 1922–24뇌졸중, 「대회에 보내는 편지」 구술

이오시프 비사리오노비치 스탈린

Иосиф Виссарионович Сталин
당 최고 지도자 소련 그루지야 1878–1953 ○ 자연사

「조용한 실무가」로 보였던 사람

1941년 6월 22일 새벽, 주코프가 독일 침공을 알렸을 때 스탈린은 창백한 얼굴로 빈 파이프를 쥐고 있었다. 몰로토프가 선전포고를 전하자 그는 말없이 의자에 주저앉았다 — 길고 무거운 침묵.

1917년에는 조연이었고 1924년에는 위험해 보이지 않는 서기장이었다. 그 「실무」, 곧 인사권이 권력의 본체임을 라이벌들은 너무 늦게 알았다. 집단화와 공업화, 대숙청과 굴라크, 그리고 전쟁의 승리가 모두 한 장부에 적혀 있다. 1953년 뇌일혈로 쓰러졌을 때, 곁의 누구도 감히 먼저 의사를 부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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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2–17지하활동, 체포·유형을 거듭하다 1917년 프라우다로
  • 1913논문 《마르크스주의와 민족문제》 발표
  • 1917–22민족인민위원, 내전기 차리친 전선
  • 1922서기장 취임, 인사권 장악
  • 1924강연집 《레닌주의의 기초》 출간
  • 1928–33대전환, 집단화·5개년 계획
  • 1936–38대숙청
  • 1941–45국가방위위원회 의장·최고사령관
  • 1945–53전후 재건과 냉전, 1953년 3월 사망
  • 1952《소련 사회주의의 경제문제》 출간

니키타 세르게예비치 흐루쇼프

Никита Сергеевич Хрущёв
당 최고 지도자 소련 러시아 1894–1971 ↓ 실각 1964

관 뚜껑을 연 사람 — 그리고 침대에서 죽은 첫 지도자

1956년 11월 18일, 폴란드 대사관 리셉션에서 서방 대사들을 향해 — 「역사는 우리 편이다. 우리가 당신들을 묻어버릴 것이다!」 열두 NATO 국가 대사와 이스라엘 대사가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스탈린의 궁정에서 광대 역까지 견디며 살아남았고, 1956년 비밀연설로 관 뚜껑을 열었다. 헝가리를 진압했고, 쿠바에서 물러서 세계를 구했으며, 그 후퇴의 값으로 1964년 동료들에게 해임당했다. 실각 후 이렇게 말했다고 전한다: 「그들이 나를 총살이 아니라 표결로 보낼 수 있었다는 것, 그것이 나의 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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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5–38모스크바 당 제1서기, 지하철 건설
  • 1938–49우크라이나 당 제1서기
  • 1942–43스탈린그라드 전선 군사위원
  • 1953–64당 제1서기
  • 1954–56처녀지 개간, 비밀연설
  • 1957「반당 그룹」 격퇴
  • 1961제22차 당대회, 스탈린 시신을 묘소에서 이장
  • 1964해임, 연금 생활

아크말 이크라모비치 이크라모프

Акмаль Икрамович Икрамов
당 최고 지도자 소련 우즈베키스탄 1898–1938 ✕ 처형

우즈베크 공산당 초대 우즈베크인 제1서기로 집단화와 목화 단작을 이끌고 대숙청에 희생된 중앙아시아 볼셰비키

«나는 지금 발가벗겨진 인간 형상의 짐승이다.» 1938년 제3차 모스크바 재판 최후 진술에서, 우즈베키스탄을 건설한 이크라모프는 조작된 죄목을 자백하며 이 말을 남겼다.

타슈켄트의 우즈베크 농민 가정에서 태어나 1918년 볼셰비키당에 입당했다. 내전기 페르가나·시르다리야에서 당 기관을 이끌며 반혁명 세력 진압에 참여했고, 1921년 투르키스탄 공산당 서기가 되었다. 1924년 중앙아시아 민족 획정에서 공화국별 분할을 지지하며 우즈베크 공산당 창당에 핵심 역할을 했다. 1929년 제1서기로 임명되어 강제 집단화와 목화 단작화를 이끌었고, 1934년 소수민족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전연방 당 중앙위원에 선출되었다. 1937년 '경계심 부족'으로 해임·체포되어 제3차 모스크바 재판에서 사형 후 총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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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8–1920나만간 교육국 교사·시찰관, 페르가나 농촌사업부장
  • 1920–1921나만간 혁명위 부위원장, 무슬림국 의장, 페르가나·시르다리야 지역위 책임서기
  • 1921–1922투르키스탄 공산당 중앙위 조직부장 겸 서기
  • 1922–1924모스크바 스베르들로프 공산대학 수학
  • 1924–1929우즈베크 공산당 창당 조직국원, 타슈켄트 주당위 서기, 중앙위 제2서기, 『콤무니스트』 편집자
  • 1929–1937우즈베크 공산당 중앙위 제1서기 — 집단화·목화 단작 주도
  • 1934–1937전연방 공산당 중앙위원 (소수민족 출신 유일)
  • 1937–1938해임·체포, 제3차 모스크바 재판 사형, 총살

레오니트 일리치 브레즈네프

Леонид Ильич Брежнев
당 최고 지도자 소련 러시아 1906–1982 ○ 자연사

흔들지 않는 것을 통치로 삼은 사람

1979년 10월 7일, 동독 30주년 기념식. 브레즈네프가 호네커와 나눈 '사회주의 형제의 키스'는 베를린 장벽의 가장 유명한 벽화가 되었다.

흐루쇼프를 밀어낸 「안정」의 얼굴. 프라하와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보냈고, 국내에서는 아무것도 흔들지 않았다: 간부들은 종신이 되었고, 문제들은 이월되었다. 말년의 훈장 수집벽과 노쇠는 농담의 소재가 되었지만, 그 18년의 청구서는 후임들에게 넘어갔다. 그의 장례식은 정체(застой) 그 자체의 장례식으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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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0–52몰다비아 당 제1서기
  • 1954–56카자흐스탄에서 처녀지 개간 지휘
  • 1964.10흐루쇼프 해임을 주도하고 제1서기로
  • 1968체코슬로바키아 침공, 브레즈네프 독트린
  • 1972–79데탕트: SALT I·II, 헬싱키 협정
  • 1977신헌법 제정, 국가원수 겸임
  • 1979아프가니스탄 침공 승인

드미트리 이바노비치 체스노코프

Дмитрий Иванович Чесноков
당 최고 지도자 소비에트 러시아 1910–1973 ○ 실각 1953 · 자연사

스탈린이 마지막으로 정치국에 올린 철학자

1964년 자신의 저서 《역사적 유물론》에서 스탈린의 테제를 정면으로 논박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 기간을 사회주의 전 기간으로 확장하는 독단주의자와 분파주의자들은, 본질적으로 계급투쟁 격화에 관한 스탈린의 잘못된 명제를 공유하고 있다.'

소비에트 마르크스주의 철학자이자 당 이데올로그. 역사적 유물론과 게르첸의 세계관을 전공했으며, 1948년 출간된 《게르첸의 세계관》으로 1951년 스탈린상을 수상했다. 1949년부터 《보프로시 필로소피》 편집장, 1952년에는 중앙위 철학·역사부장과 이론지 《꼼무니스트》 편집장을 겸하며 스탈린 말기 이념 기구의 핵심 축으로 부상했다. 1952년 10월 제19차 당대회에서 중앙위 상임위원회(정치국)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나, 스탈린 사망 다음 날인 1953년 3월 6일 전격 해임되었다. 이후 고리키 주당 간부와 국가방송위원장을 거쳐 모스크바 대학에서 역사적 유물론 강좌를 이끌었고, 1964년 자신의 저작에서 스탈린의 계급투쟁 격화 테제를 공개적으로 논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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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1–1943스베르들롭스크 대학 교수·학과장
  • 1943–1947스베르들롭스크 시당위 선전 담당 부장·비서
  • 1947–1948중앙위 선전선동국 과학부 부장
  • 1948–1951소련 과학아카데미 철학연구소 부소장
  • 1949–1952《보프로시 필로소피》 편집장
  • 1952–1953중앙위 상임위원·철학역사부장·《꼼무니스트》 편집장
  • 1953–1957고리키 주당위 부장·비서
  • 1957–1959국가방송·텔레비전 위원회 의장
  • 1959–1967모스크바 대학 역사적 유물론 강좌 주임
  • 1967–1970중앙위 사회과학아카데미 부총장

콘스탄틴 우스티노비치 체르넨코

Константин Устинович Черненко
당 최고 지도자 소련 러시아 1911–1985 ○ 자연사

브레즈네프 체제의 마지막 서기장

1985년 2월, 병상에서 투표용지를 받아든 최초의 서기장 — 선거운동도, 연설도 없는 승리

브레즈네프의 비서 출신으로 안드로포프 사후 서기장이 되었지만, 건강 악화로 통치 능력은 제한적이었다. 그의 짧은 집권은 고르바초프 등장의 막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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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4–1985서기장
  • 1984–1985최고소비에트 상무회 의장

미하일 세르게예비치 고르바초프

Михаил Сергеевич Горбачёв
당 최고 지도자 소련 러시아 1931–2022 ○ 자연사

체제를 고치려다 체제를 끝낸 사람

체르넨코 장례식 전날 밤, 고르바초프는 정원에서 라이사에게 말했다. "이렇게 더 살 수는 없어." 개혁은 그 한마디에서 시작되었다.

체제가 스스로 뽑은 개혁가. 글라스노스트와 페레스트로이카로 체제를 구하려 했고, 1989년 동유럽에서 쏘지 않기로 결정했으며, 1991년 크림 연금에서 돌아와 자신의 자리가 사라지는 문서에 서명했다. 서방의 갈채와 국내의 원망을 동시에 받으며, 자신이 끝낸 나라보다 31년을 더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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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0–78스타브로폴 지방 당 제1서기
  • 1978–85농업 담당 서기, 49세에 정치국원
  • 1985.3서기장 선출
  • 1986–88글라스노스트·페레스트로이카, 체르노빌 대응
  • 1987–89중거리핵조약, 아프간 철군, 동유럽 불개입
  • 1990초대 대통령, 노벨평화상
  • 1991.12.25사임 연설, 소련 국기 하강

스타니슬라프 이바노비치 구렌코

Станислав Иванович Гуренко
당 최고 지도자 소련 → 우크라이나 러시아 1936–2013 ○ 암으로 사망

소련 해체 직전 우크라이나 공산당의 마지막 제1서기

1990년 6월 우크라이나 공산당 제1서기로 선출된 직후 중앙위원회에서 한 연설: "우리는 당이 권력을 독점하던 시절로 결코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역시 우크라이나를 정치적 실험의 장으로 만들 생각은 없습니다."

기계공학자 출신으로 도네츠크 기계제작공장에서 기술자로 출발해 공장장까지 오른 테크노크라트였다. 1976년 당 관료로 전환하여 우크라이나 공산당 도네츠크 주당 위원회 서기,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각료회의 부의장을 거쳤으며,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 당시 국가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피해 수습에 참여했다. 1990년 6월 고르바초프의 신임 속에 우크라이나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1서기와 소련 공산당 정치국 위원에 올랐으나, 이듬해 8월 쿠데타 실패 직후 당 활동이 금지되면서 사임했다. 소련 해체 후에도 우크라이나 의회 의원과 경제정책위원장을 지내며 구 공산당 계열 정치세력의 재편을 주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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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8–1976도네츠크 기계제작공장 기술자 → 공장장 (1970–1976)
  • 1976–1980우크라이나 공산당 도네츠크 주당 위원회 서기
  • 1980–1987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각료회의 부의장
  • 1986체르노빌 사고 국가위원회 부위원장
  • 1987–1990우크라이나 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 → 제2서기
  • 1990–1991우크라이나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1서기, 소련 공산당 정치국 위원
  • 1998–2006우크라이나 최고 라다 의원 (제3·4대), 경제정책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