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전쟁을 내부에서 기록한 러시아 장성
그는 아프가니스탄 주둔 작전집단의 최측근 보좌관으로서의 내부 시점에서, 비공개 문서고 자료와 참전자 증언에 기초해 아프간 전쟁을 다룬 『아프간의 비극과 용맹』(1995)을 썼다.
알렉산드르 랴홉스키는 러시아 군인이자 군사 저술가로, 1946년 2월 5일 트빌리시에서 태어나 2009년 2월 3일 모스크바에서 사망했다. 1968년 바쿠 고등제병지휘학교를 금메달로 졸업하고 체코슬로바키아 사태에 참가했으며, 1977년 프룬제 군사아카데미를 우등으로 졸업한 뒤 총참모부 작전총국에서 8년간 아프리카 군사협력 업무를 맡았다. 1987년부터 1989년까지 아프가니스탄 주둔 소련 국방부 작전집단에서 바렌니코프의 최측근 보좌관으로 철군까지 복무했고, 1990년 지상군 총참모부 작전국 제1부국장을 지냈다. 2002년 예비역으로 전역했으며 장군 소령 계급을 받았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68바쿠 고등 제병지휘학교 졸업, 소련군 장교로 임관
- 1968체코슬로바키아에서 소련군 작전에 참가
- 1977프룬제 군사아카데미 졸업, 총참모부 작전총국 선임 장교
- 1985–1987보로실로프 총참모부 군사아카데미 수학
- 1987–1989아프가니스탄 소련 국방부 작전집단 근무, 바렌니코프의 수석 보좌관
- 1990소련 지상군 총참모부 작전국 제1부국장
- 1995『아프간의 비극과 용맹』 출간
- 2002예편
관련 역사 사건
아프가니스탄 전쟁, 내부의 기록자
알렉산드르 안토노비치 랴홉스키(Александр Антонович Ляховский)는 1946년 2월 5일 그루지야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트빌리시에서 태어나 2009년 2월 3일 모스크바에서 사망했다. 63번째 생일을 이틀 앞두고 숨졌으며, 사망은 가족과 가까운 소식통이 전한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군복무 연한은 1964년부터 2002년까지였다.
그는 소련과 러시아의 군인·군사 저술가로, 러시아 작가동맹 회원이었다. 1964년 트빌리시 제83중등학교를 마치고 바쿠 고등제병지휘학교에 입학해 1968년 7월 금메달로 졸업했고 카르파티아 군관구에 배치되었다. 1968년 8월부터 11월까지 체코슬로바키아 사태에 참가했고, 이후 무카체보에서 차량화소총소대장과 중대장, 사단 작전과 등으로 복무했다. 1971년 10월 소련군 독일 주둔군집단(6전차사단)으로 옮겼고 1974년 프룬제 군사아카데미에 입학해 1977년 우등으로 졸업했다. 총참모부 작전총국 선임 장교로 8년간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군사협력을 맡았으며 에티오피아(1983), 앙골라(1984, 두 차례)를 방문했다.
1985~1987년 보로실로프 총참모부 군사아카데미에서 수학한 뒤, 1987년 바렌니코프의 요청으로 아프가니스탄 주둔 소련 국방부 작전집단에 들어가 소련군 철수 완료까지 그 책임자의 최측근 보좌관으로 일했다. 1990년 지상군 총참모부 작전국 제1부국장이 되었고, 1990년대에는 아르메니아, 남오세티야, 발트 지역, 타지키스탄, 북캅카스 사태 수습에 관여했으며 체첸 전투 지원 업무를 맡았다. 2000~2001년에는 앙골라 총참모부 차장의 작전 자문을 지냈고, 2002년 3월 예비역으로 전역했다. 계급은 소장이었다.
그의 저술 활동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중심이다. 1991년 『아프간 전쟁의 비밀』(V. 자브로딘 공저), 1995년 2월 이스코나 출판사에서 『아프간의 비극과 용맹』, 1999년 『아프간의 불꽃』, 2007년 아흐마드 샤 마수드를 다룬 『시민, 정치가, 전사』(V. 네크라소프 공저), 2009년 『아프가니스탄 게임』(S. 다비타야 공저)을 냈고 다큐멘터리 영화 각본도 썼다. 1995년 9월에는 노르웨이 노벨대학 주관으로 오슬로에서 열린 미국·러시아 심포지엄에 참가했다. 『아프간의 불꽃』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복무한 병사들에게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아프간의 비극과 용맹』은 작전집단 책임자의 최측근 보좌관으로 사건의 한복판에 있던 소장이 비공개 문서고 자료와 핵심 군사 결정을 내린 사람들의 증언에 기초해 쓴 내부자적 연구로, 아프간 전쟁의 최대한 객관적인 그림을 그리는 것을 목표로 했다. 2009년 아프간 전쟁에 관한 최고의 작업에 주는 아르툠 보로비크 특별상이 이 책으로 그에게 사후 수여되었고, 상은 미망인 타티야나가 받았다.
훈장으로는 적성훈장, 조국에 대한 봉사 3급 훈장, 아프가니스탄 공화국 훈장 3개와 훈장(메달)을 받았는데, 메달 수는 러시아어 위키백과가 16개, 『NVO』 부고가 15개로 서로 다르며 이 불일치는 확정되지 않았다. 그는 2009년 2월 3일 아침 모스크바에서 갑작스럽게 사망했으며, 사형이나 구금 중 사망, 다른 사망 연도를 시사하는 사료는 없다. 국적 표기는 소련에서 러시아로 이어지는 국가 소속을 가리키는 '러시아인'이며, 트빌리시 출생은 민족적 출신의 증거가 아니므로 별도의 민족적 기원은 확인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