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르 니콜라예비치 네스메야노프

Александр Николаевич Несмеянов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 1899–1980 ○ 자연사

원소유기화학을 창시한 과학아카데미 총재

1951년 총재 S. I. 바빌로프가 사망하자 정치국원 말렌코프가 네스메야노프를 불러 총재직을 제안했다. 그는 채식주의 신념과 체포되어 행방이 확인되지 않는 형제의 문제를 이유로 들었으나, 말렌코프는 이를 묵살했다. 일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네스메야노프는 1899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1980년 모스크바에서 사망한 소련의 화학자이며 과학 조직가다. 1929년 금속 할로겐화물과의 디아조 반응, 즉 '네스메야노프 반응'으로 아릴수은 할로겐화물을 얻는 방법을 개발했고, 이는 탈륨·주석·납·비소 등 여러 금속의 유기화합물 합성으로 확장되었다. 소련과학아카데미 통신회원(1939)과 정회원(1943)을 거쳐 유기화학연구소 소장(1939–1954)과 원소유기화합물연구소(INEOS) 창설 소장(1954–1980)을 지냈으며, 1951년부터 1961년까지 아카데미 총재로 재임했다. 1961년 이후에는 농업을 우회하는 합성식품 연구를 추진해 인공 블랙 캐비어 등의 공정을 개발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과학아카데미 총재, 정치 기록과 과학 학파

과학아카데미 총재와 말렌코프의 제안

1951년 총재 S. I. 바빌로프가 사망하자 정치국원 G. M. 말렌코프가 네스메야노프를 불러 총재직을 제안했다. 네스메야노프는 자신의 채식주의 신념(톨스토이주의와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1940년 체포되어 행방이 확인되지 않는 형제의 문제, 무당파 총재라는 관례와 달리 자신이 당원이라는 점을 이유로 들었으나, 말렌코프는 어떤 논거에도 흔들리지 않았고 일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그는 1951년 2월 16일 아카데미 총회 비상회의에서 총재로 선출되었고, 1961년 5월 19일 스스로 총재직에서 물러났다.

조직가로서의 기록도 남겼다. 모스크바 국립대학 총장(1948–1951) 재임 중 참새(레닌) 언덕의 대규모 대학 단지 건설이 시작되었다. 1952년 과학정보연구소를 세웠고, 1954년 원소유기화합물연구소(INEOS)를 열어 사망할 때까지 이끌었으며, 이 연구소는 지금 그의 이름을 딴다. INEOS 자료에 따르면 그는 화학과 학장(1945–1948), 소련 국가상 위원회 위원장(1947–1956), 레닌상 위원회 위원장(1956–1961)을 지냈고 세계평화평의회 위원이었다.

정치적 기록과 사하로프 서한

네스메야노프는 1944년부터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당원이었다. 1969년 5월 INEOS 학술위원회에서 그는 R. 로클린을 선임연구원으로 선출하는 데 반대하며, 로클린이 1968년 소련의 체코슬로바키아 개입에 반대하는 발언을 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이 발언은 투표 결과를 바꾸지 못했고 로클린은 선출되었다. 1973년 그는 『프라우다』에 실린 학자들의 서한에 서명한 아카데미 회원의 한 사람으로, 이 서한은 아카데미 회원 A. D. 사하로프의 '행동'을 규탄했다.

과학 학파: 디아조법, 메탈로트로피, 페로센

네스메야노프는 무기화학과 유기화학의 경계에 놓인 새로운 분야를 만들어 '원소유기화합물의 화학'이라 이름 붙였다. 1929년 그는 아릴수은 할로겐화물을 얻는 디아조법('네스메야노프 반응')을 제안했고, 이 방법은 뒤에 탈륨·저마늄·주석·납·비소·안티모니·비스무트의 유기금속화합물 합성으로 확장되었다. 그는 유기금속기가 가역적으로 이동하는 특수한 호변 이성질 현상인 메탈로트로피를 발견했고, A. E. 보리소프와 함께 올레핀 탄소에서의 친전자성·호몰리틱 치환이 기하 배치를 보존한다는 규칙(네스메야노프-보리소프 규칙)을 정식화했다. 1954년부터 모스크바 국립대학과 INEOS에서 페로센 화학 연구를 이끌어 감광 조성물과 철 결핍 질환 치료제인 페로체론, 그리고 시만트렌을 기반으로 한 새 자동차 연료 첨가제를 만들어 냈다.

가족과 숙청된 형제

네스메야노프는 모스크바에서 교사 가정에 태어났다. 형제 바실리 네스메야노프(1904–1941)는 소련 인민위원회 산하 측지·지도총국 지형측지국 부국장으로 일하다 1941년 7월 28일 간첩 혐의로 총살되었고, 1955년 9월 17일 소련 최고재판소 군사재판부에 의해 재활되었다. 형제 안드레이(1911–1983)는 방사화학자이자 소련과학아카데미 통신회원이었다. 아들 니콜라이의 사망연도는 출처에 따라 1982년(러시아어 위키백과) 또는 1992년(영어 위키백과)으로 기록되어 확정하기 어렵다. 두 출처 모두 생년을 1932년으로 적는다.

인공식품: 블랙 캐비어에서 식량 혁명까지

1961년 과학아카데미 총재직에서 물러난 네스메야노프는 전혀 새로운 연구 방향으로 전환했다. 농업을 우회하여 화학적 합성으로 식량을 생산한다는 구상이었다. 이 발상은 멘델레예프와 베르텔로의 선구적 작업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그가 설립한 원소유기화합물연구소(INEOS)를 중심으로 추진되었다. 핵심 목표는 식품의 외관·맛·향·색·질감을 자연산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재현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가장 유명한 성과는 인공 블랙 캐비어였다. 어란에서 추출한 단백질을 기반으로 젤라틴 캡슐에 천연 캐비어의 식감과 색을 재현해, 세계 최초의 상업적 단백질 대체식품으로 기록되었다. 이밖에도 감자제품, 파스타·곡물 가공품, 식물성 및 동물성 단백질을 조합한 혼합 육제품 등의 제조 공정이 개발되었다.

네스메야노프는 이 연구를 단순한 공학적 프로젝트가 아니라 인류의 식량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법으로 보았다. 1965년 펴낸 『식량 합성의 문제』에서 그는 환경 보전, 토지 이용 효율, 인구 증가에 대비한 장기 전략으로 인공식품을 제시했다. 이는 오늘날 대체육·배양육·식품공학의 먼 선구라 할 만하며, 당시로서는 급진적이었던 그의 비전은 반세기가 지나 비로소 주류 식품과학의 의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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