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루쇼프 산업분할 서기국의 중공업 담당 서기
1962년 11월 23일 밤, CPSU 중앙위 플레눔이 흐루쇼프의 제안으로 당 조직을 산업계열과 농업계열로 분할하면서, 루다코프는 소련 전역의 공장·광산·건설 현장을 아우르는 산업 담당 서기로 선출되었다.
도네츠 탄광의 광부로 출발해 흐루쇼프 시대 소련 중공업 정책의 최고 실무자가 된 당 간부다. 우크라이나 당 기구에서 20년 가까이 석탄·중공업 부문을 관장한 뒤 1962년 흐루쇼프의 산업·농업 분할 개혁으로 산업 담당 중앙위 서기에 선출되었고, 개혁이 폐기된 후에도 사망 시까지 브레즈네프 체제에서 서기직을 유지했다.
경력 연표
- 1927–1936도네츠 탄광 광부
- 1936–1938우크라이나 콤소몰 기구에서 활동
- 1938–1942우크라이나 공산당 중앙위 기구: 지도원, 석탄공업부 차장·부장
- 1942–1944CPSU 중앙위 기구 근무
- 1944–1954우크라이나 공산당 중앙위: 서기보, 석탄공업부장, 중공업부장, 당·노조·콤소몰기관부장
- 1954–1962CPSU 중앙위 중공업부장
- 1962–1966CPSU 중앙위 서기 (산업 담당)
관련 역사 사건
중공업 부문과 당 조직 분할 개혁
1954년 CPSU 중앙위 중공업부장으로 기용된 루다코프는 흐루쇼프 시대 소련 산업정책의 핵심 집행자로 8년간 활동했다. 그의 임기 동안 소련은 스탈린식 석탄·철강 중심에서 석유·가스·파이프라인 수송 체계로의 전환기에 접어들었고, 루다코프가 지휘한 중공업부는 1950년대 후반 파이프 생산 증대와 대구경 파이프라인용 강관 수입 계획을 주도했다. 보관문서에는 1957년 소브나르호스(지역경제회의) 개혁으로 연방 산업부처들이 해체되는 혼란 속에서도 루다코프가 관할 부문의 생산계획 조정과 외국산 강관 도입 협상을 직접 조율한 흔적이 남아 있다.
1962년 11월 19~23일 CPSU 중앙위 전원회의는 흐루쇼프의 제안으로 당 조직 전체를 산업계열과 농업계열로 분할하는 급진적 개편을 단행했다. 루다코프는 이 전원회의에서 후보위원에서 정식 중앙위원으로 승격되는 동시에 산업 담당 중앙위 서기로 선출되었으며, 새로 창설된 'CPSU 중앙위 산업·건설 담당 뷰로'의 의장을 겸임하게 되었다. 이 뷰로는 소련 전역의 공장·광산·건설 현장에 대한 당적 감독을 총괄하는 기구로, 분할 체제에서 산업 부문의 최고 정책 조정자 역할을 수행했다. 루다코프는 산업 담당 서기로서 각 공화국과 주(州)의 산업당위원회들을 지휘하며 1964년 11월 흐루쇼프 축출과 분할 체제 폐지까지 이 체제를 운영했다.
분할 개혁 폐지 후에도 루다코프는 브레즈네프 지도부 아래에서 중앙위 서기직과 중공업부장직을 유지했다. 이는 흐루쇼프의 산업개혁을 집행했던 인물이 후계 체제에서도 전문성을 인정받아 생존한 보기 드문 사례다. 1966년 5월 분담된 서기국 업무에서 루다코프는 '중공업 문제'를 공식 담당 분야로 배정받고 중공업부를 직접 지휘했으나, 이미 중병을 앓고 있어 1966년 4월 이후 서기국 회의에 거의 출석하지 못했다. 1966년 7월 10일 55세로 사망했으며, 후임으로는 미하일 솔로멘체프가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