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르 페트로비치 루다코프

Александр Петрович Рудаков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공식 인사록 기록) · 우크라이나 소비에트·당 인물이라는 서술 병존 1910–1966 ○ 자연사

흐루쇼프 산업분할 서기국의 중공업 담당 서기

1962년 11월 19~23일 CPSU 중앙위 전원회의가 당 조직을 산업계열과 농업계열로 분할했고, 루다코프는 11월 23일 정식 중앙위원으로 승격되어 산업 담당 중앙위 서기로 선출되었다.

1910년 9월 11일(구력 8월 29일) 예카테리노슬라프 현 폴로히(현재 우크라이나 자포리자주)에서 태어나 1966년 7월 10일 모스크바에서 55세로 사망했다. 1925년 콤소몰에, 1931년 당에 입당했고 1927년부터 도네츠 탄광에서 광부로 일하다 1937년 레닌그라드 광산연구소를 졸업했다. 1954년 CPSU 중앙위 중공업부장이 되었고 1962년 11월 23일 정식 중앙위원으로 승격되며 산업 담당 중앙위 서기로 선출되었으며, 1964년 11월 분할 개혁이 폐기된 뒤에도 사망 시까지 서기직과 중공업부장직을 유지했다. 공식 인사록과 러시아 측 사료는 그를 러시아인으로 적는 한편, 우크라이나 위키백과는 우크라이나 소비에트·공산당 인물로 서술한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중공업 부문과 당 조직 분할 개혁

루다코프는 1910년 9월 11일(구력 8월 29일) 예카테리노슬라프 현 알렉산드로프스키 군 폴로히(현재 우크라이나 자포리자주 도시)에서 태어나 1966년 7월 10일 모스크바에서 55세로 사망했으며 크렘린 담장에 안장되었다. 1925년 콤소몰에, 1931년 당에 입당했고 1927년부터 도네츠 탄광에서 광부로 일했으며 1930년 레닌그라드 광산연구소 노동자학부를 거쳐 1937년 같은 연구소를 졸업했다. 1938~1942년 우크라이나 공산당 중앙위 기구에서 지도원과 석탄공업부 차장·부장을 지냈고 1938년 7월부터 흐루쇼프 제1서기의 보좌를 맡았으며, 1941년 남서전선 군사평의회 위임 대표로 활동했다. 1942~1944년에는 전연방 공산당 중앙위 기구에서 일했고, 1944~1948년 우크라이나 공산당 중앙위 석탄공업 담당 서기보 겸 부장, 1948~1953년 중공업부장, 1953~1954년 당·노조·콤소몰기관부장을 역임했다. 이후 우크라이나 공산당 중앙위 후보위원(1949년 1월 28일~1952년 9월 23일)과 위원(1952년 9월 27일~1956년 1월 17일), CPSU 중앙위 후보위원(1956년 2월 25일~1962년 11월 23일)과 정식 위원(1962년 11월 23일~1966년 7월 10일)을 지냈고, 소련 최고소비에트 6~7기 및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최고소비에트 2~3기 대의원이었다.

1954년부터 1962년 11월까지 CPSU 중앙위 중공업부장으로 재직했으며, 이 부서는 중앙위 산업·수송부를 분할해 만들어졌다. 이 시기 중공업부장으로서 1955년 2월 11일자로 대구경 강관 생산 확대 방안 문서, 즉 「기존 압연공장에서 간선 파이프라인 건설용 대구경 강관 생산을 늘릴 가능성에 관하여」를 작성했다. 이 문서는 대구경 강관 부족, 철강야금부의 관성과 니코폴·첼랴빈스크(ChTPZ)·루스타비 공장의 미활용 설비 능력을 분석하고 해외의 열간 인발 확장 관행 도입을 검토했으며, 소련이 1955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강관 250km를 수입한 사실도 다루었다. 1955년 4월 28일 철강야금부 기업들의 이음매 없는 대구경 강관에 관한 중앙위 결정은 이 부서의 역할을 뒷받침한다.

1962년 11월 19~23일 CPSU 중앙위 전원회의는 당 조직을 산업계열과 농업계열로 분할하는 개편을 단행했다. 루다코프는 11월 23일 정식 중앙위원으로 승격되어 산업 담당 중앙위 서기로 선출되었고, 같은 날부터 1964년 11월 16일까지 새로 창설된 CPSU 중앙위 산업·건설 담당 뷰로 의장을 맡았다. 분할 체제에서 산업 부문의 정점을 이루는 이 직책은 각 공화국과 주의 산업당위원회를 포괄했다. 1964년 11월 16일 중앙위 전원회의는 산업계열과 농업계열의 주·변경 당조직을 다시 합치도록 결정했지만, 루다코프는 사망 시까지 중앙위 서기직과 중공업부장직을 유지했다.

1966년 5월 16일 서기국 업무 분담에서 루다코프는 '중공업 문제'를 담당하도록 배정되었고 중공업부를 직접 지휘했다. 다만 서기국은 이 시기 전원 출석한 적이 없었고 중병을 앓던 루다코프는 서기국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가 1966년 7월 10일 사망한 뒤 미하일 솔로멘체프가 1966년 12월 13일자로 후임에 선출되었다. 한 연구사에서는 1964년 이후 지도부가 흐루쇼프 시기의 관리 개혁에서 물러서면서 당·국가 기구를 강화하고 집단지도부 서기국을 통해 운영했다고 평가하며, 루다코프가 사망 시까지 중공업 담당을 유지한 사실은 이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민족·가족 배경을 둘러싼 기록은 갈린다. 공식 인사록에 근거한다는 러시아 측 사료(Известия ЦК КПСС 1990년 7호를 전재한 hrono.ru 등)는 그를 '러시아인'으로 적고 농민 가정 출신으로 서술하며, 우크라이나 위키백과는 '우크라이나 소비에트·공산당 인물'로 규정하면서도 인포박스에는 '러시아인'을 기재하고 그를 관리(사무직) 가정 출신으로 적는다. 출생지는 민족성의 증거가 아니므로 어느 한쪽을 임의로 우선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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