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르 아키모비치 이시코프

Александр Акимович Ишков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 1905–1988 ○ 자연사

소련 원양어선단의 설계자, '어류 마피아'로 퇴장하다

1978년 '어류 마피아' 사건으로 부하 리토프가 총살형을 선고받았지만, 브레즈네프가 직접 개입했다. 이시코프는 그저 연금으로 보내졌다.

소련 수산업을 거의 40년간 이끈 정치인으로, 1940–1950년과 1954–1979년 수산장관을 지내며 소련 수산업 역사상 최장수 수장을 기록했다. 그의 지도 아래 소련은 북극에서 남극까지 전 해역을 누비는 원양 어선단을 구축했고 연간 어획량을 130만 톤에서 930만 톤으로 끌어올려 세계 최대 수산국이 되었다. 대형 냉동 트롤 어선(BMRT) 도입, 오케안(Okean) 전문 판매망, 수산업자의 날 제정도 그의 작품이다. 말년에 부하 블라디미르 리토프가 '어류 마피아' 스캔들로 처형됐지만 브레즈네프의 비호로 무사히 은퇴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전후 원양어업과 국제 과학 협력

전후 이시코프는 내륙·연안 어업을 원양어업으로 확대하기 위해 선단과 기반시설을 재편했다. 정부는 1946년 서부·동부 지역의 수산업을 별도 부처로 나누었고, 약 3년 뒤 다시 통합했다. 전후 독일 배상으로 받은 선박 일부는 수산업용으로 개조되어 부유식 어류 처리기지와 포경선, 운반선으로 활용되었다. 이시코프의 제안에 따라 1940년대 말부터 1950년대 초까지 동독과 발트해 항구에서 중형 어업 트롤선이 연속 건조되었다. 이 선박들은 북대서양과 극동 해역에서 조업했고, 1960~70년대에는 북서대서양의 먼 어장으로 진출하는 기반이 되었다. 1956년 그는 대형 냉동 트롤선 스베르들롭스크호를 타고 무르만스크에서 캐나다 세인트존스까지 북대서양을 건너 캐나다와 어업 관계를 모색했다. 같은 해 3월에는 전문가와 해양 연구자를 포함한 소련 대표단을 이끌고 노르웨이를 방문했다. 노르웨이의 수산장관 닐스 뤼쇠가 이끈 답방단은 5월 소련을 찾아 16일간 회의와 수산 가공시설 방문, 바렌츠해 트롤선 승선, 무르만스크 극지 수산·해양학 연구소 방문을 했다. 노르웨이·소련 연구자들은 바렌츠해와 노르웨이해에서 공동으로 이용하던 어족자원의 상황을 논의했고, 1965년 첫 공동 치어 조사로 협력이 확대되었다. 한편 노르웨이 연구자들은 소련의 촘촘한 그물 트롤이 어린 대구를 잡는 문제를 우려했고, 이시코프와 소련 연구자들은 노르웨이 피오르의 어린 청어 남획을 비판했다. 양측의 협력은 공동 수산과학뿐 아니라 어획 방식에 대한 이견도 포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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