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가이트 포그롬의 불씨를 당긴 소련 부검찰총장
벨로루시 출신의 소련 군사법률가로, 1987년 소련 부검찰총장에 임명되어 우즈베키스탄 등 주요 부패사건 수사를 지휘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이 역사에 남은 것은 1988년 2월 27일 중앙텔레비전 방송에서 아스케란 인근 충돌로 사망한 두 아제르바이잔인 청년의 이름과 국적을 거론한 순간이다: 이 발표는 몇 시간 뒤 숨가이트 포그롬의 직접적 방아쇠가 되었다. 1989년부터 주임군사검사로 재임하며 판필로프 28영웅 신화의 허구성을 폭로했으나, 8월 쿠데타 이후 강제 퇴진당했다.
경력 연표
- 1950s드네프로제르진스크 야금학교 졸업, 드네프르 야금 콤비나트 노동자
- 1965하리코프 법학대학 졸업
- 1966자바이칼 군관구 수비대 검찰 수사관
- c. 1970s–1987소련 검찰청 수사관, 선임수사관, 수사부서장, 주임수사국장 역임
- 1987–1989소련 부검찰총장
- 1989–1991소련 주임군사검사 겸 부검찰총장
- 19918월 쿠데타 이후 강제 퇴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