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 수프에서 생명의 기원을 탐구한 소비에트 생화학자
"살아 있는 유기체와 무생명 물질 사이에는 근본적 차이가 없다." — 1922년, 훗날 『생명의 기원』으로 출판된 초기 논고에서.
소비에트 생화학의 제도적 기초를 닦은 생화학자이자 과학행정가이다. 1924년 지구상 생명이 무생물적 화학 진화를 통해 발생했다는 '원시 수프' 가설을 제창하여 생명기원 연구의 패러다임을 열었고, 이는 훗날 밀러-유리 실험으로 이어졌다. 1935년 알렉세이 바흐와 함께 소련 과학아카데미 생화학연구소를 창설하고 1946년부터 34년간 소장으로서 소비에트 생화학의 중심 축을 이끌었다. 1970년 국제생명기원연구학회(ISSOL) 초대 회장으로서 이 분야의 국제적 제도화에도 기여했으나, 한편으로 리센코와 레페신스카야의 유사과학을 지지하여 과학과 정치의 긴장을 자신의 경력 속에 각인시켰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17– 과학·기술 · 소련 · 과학 · 원자력 · 우주 개발
경력 연표
- 1917모스크바국립대학교 물리수학부 자연과학과 졸업
- 1925–1942모스크바국립대학교 생화학 강사·교수
- 1935A. N. 바흐와 함께 소련 과학아카데미 생화학연구소 공동 창설
- 1935–1946바흐 생화학연구소 부소장
- 1939소련 과학아카데미 통신회원
- 1942–1960모스크바국립대학교 식물생화학과장
- 1946소련 과학아카데미 정회원(아카데미크)
- 1946–1980바흐 생화학연구소 소장
- 1948–1955소련 과학아카데미 생물학부 아카데미크-서기
- 1951–1958전연방 '즈나니예' 협회 회장
- 1970–1977국제생명기원연구학회(ISSOL) 초대 회장
생명 기원 가설의 구체화와 국제적 논의
1922년 봄 러시아식물학회에서 오파린은 이미 형성된 유기화합물이 풍부한 환경에서 최초의 생명체가 생겨났다는 구상을 발표했다. 그는 초기 생명체가 오늘날 식물처럼 스스로 양분을 만들기보다 주위에 존재하는 유기물을 이용하는 종속영양생물이었으며, 생명은 단일 분자의 성질만으로 설명되지 않고 물질과 에너지를 교환하는 조직화된 체계라고 보았다. 1924년 출간된 『생명의 기원』에서 이 구상을 더 발전시켰다. 원시 지구의 환원성 대기에서 에너지원이 단순 물질의 화학적 변화를 촉진하고, 유기화합물이 점차 복잡해져 원시 생명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었다.
오파린은 이 가설을 실험적으로 검토하기 위해 코아세르베이트 방울을 초기 세포의 모형으로 연구했다. 젤라틴과 아라비아고무 같은 물질로 이루어진 방울 안에서 효소가 물속에 흩어져 있을 때보다 효율적으로 작용한다는 실험 결과를 얻었다. 이 방울이 생명체 자체라는 뜻은 아니었지만, 물질을 구획하는 구조가 대사 반응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할 수 있었다. 다른 연구자들이 복잡한 분자의 형성과 방울의 출아·성장에 관한 실험적 설명을 제시하자 오파린은 이를 받아들였다. 1957년 그는 모스크바에서 16개국 대표가 참가한 생명 기원 국제회의를 조직했고, 1963년과 1970년에도 후속 회의가 열렸다. 1970년에는 국제생명기원연구학회 초대 회장으로 선출되어 연구자들의 국제적 교류를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