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즈네프부터 고르바초프까지 소련 검찰을 이끈 법률가, 사하로프에게 추방령을 전달한 검찰총장
1980년 1월 22일, 레쿤코프는 사하로프 앞에서 최고회의 칙령을 낭독했다: 사회주의 노동영웅 칭호와 모든 국가 훈장을 박탈하며, 폐쇄도시 고리키로 추방한다.
돈 강 유역의 농민 가정에서 태어나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중상을 입은 후 검찰에 투신했다. 로스토프 지역 검사를 거쳐 1976년 소련 검찰 제1부총장, 1981년 루덴코의 후임으로 검찰총장이 되었다. 안드로포프 시기에는 '우즈베크 면화 사건'과 통상부 비리 수사를 진두지휘하며 대규모 반부패 캠페인을 주도했고, 1980년에는 사하로프에게 국가 훈장 박탈과 고리키 추방을 직접 통고했다. 퇴임 후에는 정치적 탄압 피해자 재활 부서에서 일하며 소련 검찰 제도의 복잡한 유산을 몸소 구현했다.
경력 연표
- 1945–1946로스토프주 베르흐네돈스코이 지구 검사 보좌관
- 1947–1952로스토프주 콘스탄티놉스키·아조프 지구 검사
- 1960–1966브랸스크주 검사
- 1966–1971보로네시주 검사
- 1971–1976러시아 SFSR 검찰 제1부검사장
- 1976–1981소련 검찰 제1부총장
- 1981–1988소련 검찰총장
- 1981–1989CPSU 중앙위원회 위원
- 1979–1989소련 최고회의 대의원
- 1992–1994러시아 연방 검찰청 정치탄압 피해자 재활부 검사
사하로프 추방령 낭독 (1980)
레쿤코프의 검찰 경력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장면은 1980년 1월 22일, 안드레이 사하로프에게 추방을 통고한 사건이다. 당시 소련 검찰 제1부총장이었던 레쿤코프는 사하로프를 검찰청으로 소환하여 소련 최고회의 간부회의 칙령을 낭독했다. 칙령의 내용은 사회주의 노동영웅 칭호와 레닌 훈장을 비롯한 모든 국가 훈장의 박탈, 그리고 '체계적인 반소비에트 활동'을 이유로 폐쇄도시 고리키(현 니즈니노브고로드)로의 강제 추방이었다.
사하로프는 1979년 12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공개 비판한 직후였으며, 크렘린은 더 이상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수소폭탄의 아버지인 그를 모스크바에 둘 수 없다고 판단했다. 레쿤코프의 낭독은 단 몇 분에 불과했지만, 소련 검찰이 단순한 법 집행 기관이 아니라 정치적 통제의 도구로 기능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순간으로 기록되었다. 사하로프와 그의 아내 옐레나 본네르는 곧바로 KGB 특별기로 고리키로 이송되었고, 7년간의 감시와 고립 속에서 강제 거주 생활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