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의 형, 벌레를 연구하던 금메달 동물학도에서 차르 암살을 기도한 혁명가
어머니의 사면 청원 권유에: "결투를 생각해보세요, 어머니. 한쪽은 이미 총을 쐈습니다. 아직 쏘지 않은 상대에게 총을 쓰지 말라고 부탁할 수는 없습니다."
레닌의 친형.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에서 환형동물 연구로 금메달을 받은 촉망받는 동물학도였으나, 1886년 돌연 혁명에 투신하여 '인민의 의지당'의 '테러 분파'를 조직하고 알렉산드르 3세 암살 계획의 주모자가 되었다. 1887년 3월 1일('제2의 3월 1일') 암살 미수로 체포되어 5월 8일 슐리셀부르크 요새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의 죽음은 17세 동생 블라디미르(훗날 레닌)를 혁명의 길로 이끈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경력 연표
- 1883심비르스크 고전 김나지움 금메달 졸업
- 1883–1886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 자연과학 전공, 환형동물 연구로 금메달 수상
- 1886인민의 의지당 가입, '테러 분파' 조직: 이념가이자 폭탄 제조자
- 1887.02테러 분파 강령 작성, 알렉산드르 3세 암살용 폭탄 준비
- 1887.03–053월 1일 체포, 4월 15–19일 재판, 5월 8일 슐리셀부르크 요새에서 교수형
재판과 최후 진술
1887년 4월 15일부터 19일까지, 특별 상원 법정은 울리야노프와 동료 14명을 재판했다. 울리야노프는 변호인을 거부하고 스스로 변론에 나서, 러시아 전제정치 아래서 소수가 다수의 폭력에 맞설 유일한 수단은 테러뿐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이 체제와 공개 전투를 벌일 수 없다. 그것은 너무도 단단히 자리 잡고 있으며 막대한 탄압력을 지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의에 민감한 개인이라면 누구든 테러에 호소할 수밖에 없다." 그는 공동 피고인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행위까지 자백했으며, "공동의 이익을 위한 죽음보다 더 명예로운 죽음은 없다"고 말했다. 어머니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알렉산드르 3세에게 보낸 사면 청원은 거부되었고, 5월 8일 새벽 3시 30분, 울리야노프와 네 동료는 슐리셀부르크 요새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사형대는 수감자들 몰래 요새 밖에서 제작·조립되었으며, 세 개뿐인 교수대에 두 차례 나누어 형이 집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