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라 바실리예브나 아르튜히나

Александра Васильевна Артюхина
소련 러시아 1889–1969 ○ 자연사

제노트델을 전성기로 이끈 유일한 여성 조직국·서기국원

1927년 국제회의 연단에서 "우리 경제학자들조차 여성 노동을 덜 가치 있는 것으로 본다"며 당내 편견을 직시했다.

방직 노동자 출신 혁명가로서 제노트델(여성노동부)을 전성기로 이끌며 여성의 산업 진출을 추진했다. 유일한 여성 조직국원·서기국 후보위원(1926~1930)을 지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제노트델의 마지막 책임자: 여성 노동의 통합과 1930년 해체

아르튜히나는 1925년부터 1930년까지 제노트델(당 중앙위 여성노동부)을 이끌며 이 기관의 최전성기를 지휘했다. 그녀의 지도 아래 제노트델은 여성 문맹 퇴치, 탁아소와 공동 세탁소·식당 확충, 그리고 무엇보다 여성의 산업 노동 참여 확대에 주력했다. 1927년 그녀는 국제언론통신에 기고한 보고에서 "우리 경제학자들 사이에는 여성 노동을 덜 가치 있고 덜 수익성 있는 것으로 보는 경향이 여전히 만연하다"고 지적하며, 여성 노동의 숙련도를 높여 이러한 편견을 깨뜨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녀의 임기 동안 공장 탁아소는 778개로 늘었고, 여성 협동조합원은 260만 명을 넘어섰으며, 금속공업 여성 노동자 비율은 전쟁 전의 두 배로 증가했다. / 그러나 1920년대 말 급속한 공업화가 시작되면서 당은 제노트델의 독자적 여성 조직 활동을 불필요한 낭비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스탈린의 대전환 노선 아래, 1930년 1월 5일 중앙위원회는 '여성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이유로 제노트델을 공식 해체하고 그 기능을 일반 당 기구와 노동조합으로 이관했다. 제노트델의 해체는 소비에트 여성 정책의 분수령이었다. 여성의 산업 진출은 계속 확대되었으나, 당내 여성 비율은 5%에 불과했고,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을 위한 독자적 통로는 사라졌다. 아르튜히나는 이 결정에 공개적으로 반대하지 않았다. 그녀는 헌신적인 공산주의자였고, 해체 이후에도 당이 배정한 자리에서 섬유노조 위원장, 공장장으로 일하며 산업화에 복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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