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세이 이바노비치 아주베이

Алексей Иванович Аджубей
소련 러시아 1924–1993 ↓ 실각 1964 · 자연사

흐루쇼프의 사위이자 해빙기 이즈베스티야를 소련 최고의 신문으로 만든 편집인

“100루블을 가지지 말고, 아주베이처럼 결혼하라” — 1950년대 모스크바를 떠돌던 이 말은 그의 출세가 흐루쇼프의 사위라는 지위와 얼마나 깊이 얽혀 있었는지를 웅변한다.

알렉세이 아주베이는 흐루쇼프 해빙기 소련 저널리즘의 얼굴이었다. 1959년부터 1964년까지 이즈베스티야 편집장으로서 관료적 기관지를 생동감 있는 일간지로 탈바꿈시켰고 발행부수를 160만 부에서 600만 부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1959년 소련 언론인 연맹 창설을 주도했고, 1960년 『미국과 정면으로』로 레닌상을 수상했으며, 19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과의 단독 인터뷰를 성사시켰다. 1963년 알렉산드르 트바르돕스키의 금지된 시 「저승의 묘르킨」을 이즈베스티야에 과감히 게재한 판단은 그가 단순한 흐루쇼프의 사위 이상의 언론인임을 증명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실각과 가명의 삶

1964년 10월 흐루쇼프가 축출되자 아주베이는 즉시 모든 직위에서 해임되었다. 11월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중앙위원직을 박탈당하고, 사실상 이름뿐인 직책인 잡지 《소비에트 연방》의 출판부서장으로 좌천되었다. 처음에는 부하 직원조차 없었고, 이후 한 명의 보좌관이 배치되었다. 이후 20년 이상 '라딘' 또는 '로디오노프'라는 필명으로만 글을 발표할 수 있었고, 1985년에서야 본명 사용이 허용되었다. 공식 망각 속에서도 아주베이는 흐루쇼프 시절의 기록을 집요하게 보존했다. 1989년 페레스트로이카의 개방 분위기 속에서 회고록 《그 10년》을 출간해 해빙기 내부의 생생한 증언을 남겼고, 1991년에는 《환상의 붕괴》로 흐루쇼프 시대에 대한 최종 평가를 시도했다. 1992년에는 소규모 신문 《제3신분》의 편집장을 맡아 언론 현장에 복귀했으나, 이듬해인 1993년 3월 19일 모스크바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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