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세이 안드레예비치 포스코노프

Алексей Андреевич Посконов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 1904–1969 ○ 자연사

코시긴 개혁기 고스방크를 이끈 바시키르 출신 재정 엘리트

한 번은 '인민의 적'과 사냥을 갔다는 이유만으로 당적을 박탈당하고 형사입건되었다. 바시키르 중앙집행위원회가 직접 나서 그의 무죄를 입증했다.

우파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나 열한 살부터 일하며 바시키르 재정인민위원부 세무사로 공직에 들어간 후 평생 금융계에 몸담았다. 레닌그라드 재정경제연구소 졸업 후 우파 시·주 재정과장을 거쳐 1940년 러시아공화국 재정차관, 이듬해 재정인민위원이 되었고, 전후 소련 재무차관·제1차관으로 즈베레프와 가르부조프를 보좌했다. 1963년 8월 고스방크 총재로 취임하여 코시긴의 1965년 경제개혁(이윤 지표, 국영농장 독립채산제, 콜호스 보장임금제(1966))의 신용·결제 측면을 집행했고 러시아공화국 고스방크를 신설했다. 1937년 사냥 동행을 이유로 '인민의 적' 연루 혐의를 받았으나 바시키르 중앙집행위원회 개입으로 복권된 이력이 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고스방크의 신용·결제 정책과 1965년 개혁

포스코노프가 고스방크 총재를 맡은 시기는 1965년 경제개혁을 앞두고 은행 신용을 생산·유통 과정의 통제와 연결하던 때였다. 1965년 12월 21일자 중앙위원회 보고 초안은 1959~1965년 산업생산이 1.8배, 이에 대응하는 은행 신용 투입이 거의 2배로 늘었다고 집계했다. 콜호스를 제외한 기업 유동자금의 구성에서 은행 대출 비중은 1959년 42.2%에서 1965년 45.9%로 상승했고, 자체·유사 유동자금 비중은 39.3%에서 37.9%로, 지급채무 비중은 16.1%에서 13.7%로 낮아졌다. 보고서는 자재 회전 대출과 결제대출 확대가 계획 밖 유동자금 재분배를 제한하고 미지급을 발생 지점에 집중시키는 데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개혁의 결제 부문에서 고스방크는 판매·축적 계획 이행과 기업 자율성 확대에 기반한 독립채산제를 지원하는 한편, 대금 지급 책임을 강화하려 했다. 보고 초안은 1965년 무현금 결제액이 1962년보다 약 28%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고, 상계 결제 비중은 전체 결제액의 41.1%에서 44.3%로 증가했다고 기록했다. 상계는 기업 간 상호 채권·채무를 맞춰 현금 이동을 줄였다. 은행은 지급지시서·수표·계획지급과 공급자·구매자 간 직접 결제를 확대했다. 또 1965년 10월 4일 결정에 따른 단기대출은 일시적 자금난을 겪는 구매자가 공급자 대금을 지급하도록 설계했다. 보고서는 이 조치가 미지급 연쇄를 줄일 것으로 기대하면서도, 부실 기업의 연체 채무 일부가 은행에 대한 연체 채무로 옮겨갈 수 있다고 예상했다. 고스방크가 제시한 신용정책은 생산·유통 자금 지원과 계획 이행 및 결제 규율을 결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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