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시긴 개혁기 고스방크를 이끈 바시키르 출신 재정 엘리트
한 번은 '인민의 적'과 사냥을 갔다는 이유만으로 당적을 박탈당하고 형사입건되었다. 바시키르 중앙집행위원회가 직접 나서 그의 무죄를 입증했다.
우파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나 열한 살부터 일하며 바시키르 재정인민위원부 세무사로 공직에 들어간 후 평생 금융계에 몸담았다. 레닌그라드 재정경제연구소 졸업 후 우파 시·주 재정과장을 거쳐 1940년 러시아공화국 재정차관, 이듬해 재정인민위원이 되었고, 전후 소련 재무차관·제1차관으로 즈베레프와 가르부조프를 보좌했다. 1963년 8월 고스방크 총재로 취임하여 코시긴의 1965년 경제개혁(이윤 지표, 국영농장 독립채산제, 콜호스 보장임금제(1966))의 신용·결제 측면을 집행했고 러시아공화국 고스방크를 신설했다. 1937년 사냥 동행을 이유로 '인민의 적' 연루 혐의를 받았으나 바시키르 중앙집행위원회 개입으로 복권된 이력이 있다.
경력 연표
- 1915–1919제본소 견습공, 약국 창고 노동자
- 1919–1923붉은군대 복무, 제재소 노동자, 공장위원회 지도원
- 1923–1931바시키르 재정인민위원부 세무사·과장·차장·재정감독국장, 콜레기움 위원
- 1931–1934레닌그라드 재정경제연구소 수학, 경제·재정 전공
- 1934–1939우파 시 재정과장 → 바시키르 재정인민위원부 선임감사관
- 1939–1940칼리닌주 재정과장
- 1940–1941러시아공화국 재정부인민위원
- 1941–1945러시아공화국 재정인민위원
- 1945–1960소련 재무차관 · 콜레기움 위원
- 1960–1963소련 재무제1차관
- 1963–1969국가은행 총재 — 1965년 개혁 신용·결제 집행, 국영농장 독립채산제, 콜호스 보장임금제, 러시아공화국 고스방크 신설
- 1966–1969CPSU 중앙감사위원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