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월요일 지도부 전화를 수확하던 정체기 영화 총책
로마노프는 월요일 출근길마다 마음이 무거웠다. 주말 별장에서 영화를 본 지도부의 전화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한 분은 이렇게 말하고 다른 분은 정반대로 말한다. 같은 영화인데. 내가 어쩌란 말인가?"
1963년부터 1972년까지 소련 국가영화위원회(고스키노) 의장을 지낸 당 관료이자 언론인이다. 툴라현 벨료프 출신으로, 고리키주와 벨로루시의 신문 편집국을 거쳐 1955년부터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에서 일했으며, 1961년에는 중앙위원 후보와 러시아공화국 당뷰로 위원이 되었다. 고스키노 의장으로서 타르콥스키의 《안드레이 루블료프》 검열, 흐루쇼프 해빙기 말부터 브레주네프 정체기로 이행하는 시기의 영화 정책을 총괄했으며, '온건하지만 지나치게 규율적인' 인물로 평가받았다. 1972년 필리프 예르마시에게 자리를 넘기고 《소비에트 문화》 신문 주필로 옮겼다.
경력 연표
- 1926–1929건설 노동자 → 고등국립문학과정 수료(3년)
- 1929–1944신문 《스텝의 진리》(악튜빈스크), 《고리키 코뮌》 기자·부장·책임비서·부편집장
- 1944–1946《프라우다》 고리키주 특파원
- 1946–1949《고리키 코뮌》→《소비에트 벨로루시》 책임편집자
- 1949–1955부쿠레슈티 발행 공산당 기관지 부주필
- 1955–1963중앙위 선전선동부 컨설턴트 → 부부장 → 이념부 제1부부장
- 1961–1986중앙위원회 위원 후보
- 1963–1972국가영화위원회(고스키노) 의장
- 1972–1983《소비에트 문화》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