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1년 12월 3일 쿠데타에 맞선 생탕투안 바리케이드에서 죽은 산악파 의원
1811년 낭튀아에서 군의관의 아들로 태어나 리옹과 파리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군의관으로 알제리에 보내졌다가 1838년 사직하고 파리 몽마르트르에서 「가난한 이들의 의사」로 13년을 지냈다. 1848년 혁명 뒤 정치 클럽을 이끌었고, 1849년 5월 13일 엔 도 의원에 뽑혀 산악파와 함께 앉았다. 1851년 12월 2일 쿠데타가 일어나자 위고와 함께 대통령을 「법 밖에 섰다」고 선언하는 저항위원회 성명을 썼다. 이튿날 생탕투안 변두리 노동자들과 바리케이드를 쌓았고, 깃발을 들고 올라섰다가 군대의 사격에 죽었다. 그의 무덤은 공화파의 집결지가 되었고, 1889년 유해가 팡테옹으로 옮겨졌다.
다른 이름: 장바티스트 알퐁스 빅토르 보댕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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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7–1838
군사·지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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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9–1851
프랑스 국가기관대표
입법·국가 대표 -
1849–1851
입법·국가 대표
경력 연표
- 1837–1838알제리 군의관
- 1838–1851몽마르트르의 의사
- 1849–1851엔 도 의원(산악파)
- 1851쿠데타 저항 중 바리케이드에서 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