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안위원회에서 해군 재건을 맡은 개신교 목사 출신 산악파 의원
1749년 몽토방의 개신교 집안에 태어나 상선 선장을 거쳐 목사가 되었다. 혁명이 일어나자 몽토방의 헌법의 벗 협회를 이끌었고, 국민공회 의원으로 산악파에 앉아 루이 16세의 처형에 찬성했으며, 1792년 11월 자코뱅 클럽 의장이 되었다. 1793년 6월 공안위원회에 들어가 해군을 맡았고, 브레스트에 머물며 왕당파 장교를 몰아내고 함대를 재건했다. 1794년 2월 위원회를 대표해 세로 삼색기를 해군기로 정하는 안을 내놓았다. 1795년 체포되었다가 사면으로 풀려났고, 알제·스미르나 영사로 나갔다가 오스만 제국에 3년 동안 억류되었다. 1801년 라인강 왼쪽 세 도의 총감독관, 이듬해 몽토네르 도지사가 되어 마인츠에서 일했고 1813년 그곳에서 티푸스로 죽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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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1794
군사·지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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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3–1794
프랑스 제1공화국 국가기관공안위원회 위원프랑스 국가원수 · 정부 수반대표
군사·지휘 -
1801–1813
통령정부·제1제국 국가기관몽토네르 도지사
정부·행정
경력 연표
- 1773카스트르 개신교 목사
- 1792국민공회 의원, 11월 자코뱅 클럽 의장
- 1793.06.10–1794.07.31공안위원회 위원, 해군 담당
- 1794.02.15세로 삼색기를 해군기로 정하는 안 제출
- 1795.05.28체포, 이후 사면으로 석방
- 1798–1801알제·스미르나 영사, 오스만 제국에 억류
- 1802.09–1813몽토네르 도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