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이 라브렌티예비치 게트만

Андрей Лаврентьевич Гетман

모스크바 앞에서 베를린까지 전차를 이끌고 전후 DOSAAF를 맡은 장군

쿠르스크현 클레팔리의 농가에서 태어나 1924년 붉은 군대에 들어갔고 하산호와 할힌골 전투에 참가했다. 1941년 제112전차사단을 이끌고 모스크바 전투와 칼루가 탈환에 나섰다. 1942년 4월 제6전차군단장이 되었고, 이 군단은 1943년 1월 제1전차군에 들어가 10월 제11근위전차군단이 되었다. 1944년 8월 제1근위전차군 부사령관이 되었다. 전후 카르파티아 군관구 사령관과 1964년 DOSAAF 중앙위원회 의장을 지냈다. 1964년 육군대장, 1965년 소련 영웅이 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제1근위전차군의 군단장과 부사령관

게트만의 제6전차군단은 1943년 1월 30일 카투코프의 제1전차군이 만들어질 때 그 핵심 부대로 들어갔고, 쿠르스크 전투를 거쳐 1943년 10월 제11근위전차군단이 되었다. 1944년 8월 25일 그는 군단을 아마자스프 바바자냔에게 넘기고 예핌 바라노비치의 뒤를 이어 군 부사령관이 되었다. 카투코프는 1944년 9월 1일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 기자 유리 주코프에게 보낸 편지에서, 목을 다쳐 입원한 바바자냔이 회복하면 게트만의 자리를 맡고 게트만은 자기 부사령관이 된다며 “아직 비밀”이라고 적었다.

카투코바는 회고록에서 게트만을 매우 박하게 평가했다. 그가 서두르지 않고 조심스럽게 기다리다가 이웃 부대에 성공의 기미가 보일 때에야 움직였고, 그의 군단은 도하 지점에 제때 닿는 일이 드물었다는 것이다. 이 평가는 카투코프의 아내로서 남편과 멀어진 옛 동료를 바라본 시각이다. 그의 군단을 넘겨받은 바바자냔은 반대로, 게트만이 여단장부터 정비병 하나하나까지 군단 장병을 훤히 알고 있어 지휘관이자 교육자로서 배울 만했다고 회고했다. 1965년 게트만의 소련 영웅 칭호도 바바자냔이 발의했다.

게트만은 1973년 회고록 『전차는 베를린으로 간다』를 냈다. 카투코바에 따르면 이 책은 카투코프의 이름을 한 번도 쓰지 않고 “제1근위전차군 사령관”으로만 적어, 그의 군단이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고 스스로 결정한 듯 그렸다. 저자는 포펠과 바바자냔의 회고록도 같은 식으로 자기 공을 앞세웠다고 보았다. 카투코프가 1976년 세상을 떠난 뒤 게트만은 군 참전 용사회에서 카투코프 기념 사업에 소극적이던 장성 가운데 하나였다고 저자는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