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이 키릴로비치 포펠

Николай Кириллович Попель

1941년 두브노로 돌파한 정치위원, 카투코프 곁의 제1근위전차군 군사위원

헤르손현의 마을에서 태어나 1920년 붉은 군대에 들어갔고 내전에서 기병군단 수의사로 싸웠다. 정치장교로 일하다 1941년 6월 제8기계화군단 정치 담당 부군단장으로 브로디 전투에서 전차 집단을 이끌고 두브노 쪽으로 깊이 돌파했으며, 포위된 뒤 1,778명을 이끌고 빠져나왔다. 1943년 1월부터 종전까지 제1전차군(뒤의 제1근위전차군) 군사위원회 위원이었다. 전후 회고록 세 권을 냈으나 자기 역할을 부풀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제1근위전차군 군사위원과 회고록 논란

포펠은 1942년 9월 카투코프의 제3기계화군단에 군사위원(코미사르)으로 와서 처음 함께 일했고, 1943년 1월 30일 제1전차군이 만들어질 때 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되어 종전까지 그 자리에 있었다. 카투코바의 회고에 따르면 연료와 탄약 수송, 병원, 전차 수리 같은 후방 일은 포펠이 후방 담당 부사령관 콘코프와 함께 직접 챙겼다. 쿠르스크 전투 뒤 군이 최고사령부 예비로 빠졌을 때 포펠은 카투코프와 함께 전차군 사령관과 군사위원 전원이 모인 크렘린 회의에 불려 갔다. 독일 땅에 들어선 뒤 병사들이 집 안의 창과 그릇에 총을 쏘아 대자, 카투코프와 포펠이 적지에서의 행동 수칙을 담은 명령을 만들었다고 저자는 적었다.

카투코바는 포펠을 정력적이고 조직력이 있으며 일을 잘 아는 사람으로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거칠고 형식에 매여 부하들의 존경을 얻지 못했다고 평했다. 그가 부대에 온다는 소식이 들리면 지휘관들이 잔소리를 피해 숨었을 정도였고, 카투코프는 이를 알면서도 “따져 보면 다 제자리를 찾는다”며 참았다고 한다. 저자는 카투코프의 아내였으므로 이 평가는 남편 쪽에 선 시각이다. 다른 한편 포펠은 1941년 브로디 전투에서 전차 집단을 이끌고 독일군 후방 깊숙이 들어가 두브노 쪽을 위협한 지휘관으로 알려져 있다.

포펠은 전후 문학평론가 E. V. 카르딘의 도움을 받아 회고록 『고난의 시기에』, 『전차는 서쪽으로 돌았다』, 『앞에는 베를린!』을 1959~1960년에 냈다. 카투코바의 회고에 따르면 그는 일기나 문서를 지니지 말라는 명령에도 전선에서 문서를 모아 모스크바로 보냈고, 이것이 책의 바탕이 되었다. 소련 시기의 군사 언론도 이 책들이 제1근위전차군과 자기 역할을 부풀리고, 사령관 카투코프와 참모장 샬린이 전투를 지휘한 일은 거의 다루지 않았으며, 직접 겪지 않은 장면을 지어냈다고 비판했다. 카투코바도 같은 점을 지적하면서, 포펠이 이 책들을 카투코프에게 선물하며 그를 “탱크 근위대의 창설자”라고 적은 헌사를 덧붙였다고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