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흐루쇼프 이행기 정보총국(GRU)을 지휘한 참모, 판문점 정전 전 중국인민지원군 고문단장
1근위전차군 사령관 카투코프는 이렇게 회고했다: "샬린은 비정상적으로 일벌레였고, 정확하고 페달틱할 만큼 꼼꼼한 참모였다. 언제 사령부에 들여다봐도 그는 항상 책상 앞이었다. 민머리를 쓰다듬으며 지도 위에서 무언가를 궁리하고 있었다."
오렌부르크 농민 출신으로 교원양성소를 나온 뒤 제정군 소위, 내전기 적군 중대·대대장을 거쳐 소련군 정보총국장까지 오른 상장. 1근위전차군 참모장으로 쿠르스크에서 베를린까지 주요 공세를 기획했고, 종전 후 군사외교아카데미 원장을 지냈다. 1951–1952년 한국전쟁에 파견되어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 펑더화이의 수석 군사고문으로 복무했다. 1952–1956년과 1957–1958년 두 차례 GRU 국장을 지내며 스탈린 말기부터 흐루쇼프 집권 초까지 소련 군사정보를 총괄했고, 1954년에는 주코프 원수가 서방과 접촉해 쿠데타를 모의한다는 보고를 올려 군부 내 긴장을 부채질하기도 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18–1921 군사·지휘 · 소련 · 군사 · 국방
경력 연표
- 1916–1918제정군 105보병예비연대, 빌나 군사학교 졸업 후 소위 임관, 17시베리아소총예비연대 중대장
- 1918–1921적군 자원입대, 공산당 입당, 내전 종군 — 오르스크 연대 중대·대대장, 여단장 대리, 소비에트-폴란드 전쟁 및 크론시타트 진압 참가
- 1922–1931오르스크 현·튜멘 군관구 병무위원, '비스트렐' 과정 수료, 바시키르 자치공화국 영토관구 국장
- 1931–1936제13소총군단 부참모장, 프룬제 사관학교 동방학부 졸업
- 1936–1939정보총국(Razvedupr): 일본 주재, 제2(동방)과 과장 대리, 정보지휘관 중앙학교장, 제5국 부국장 대리
- 1940–1941제16군 참모장 — 스몰렌스크 방어전 참가
- 1941–1943제22군 참모장 — 모스크바 전투, 르제프 전투
- 1943–1946제1전차군·제1근위전차군 참모장 — 쿠르스크, 르보프-산도미에시, 비스와-오데르, 베를린 공세
- 1946–1949군사외교아카데미 원장
- 1949–1951GRU 제1국장 겸 부국장
- 1951–1952GRU 제1부국장 겸 한국전쟁 파견 — 중국인민지원군 고문단장
- 1952–1956GRU 국장 (제1차)
- 1956–1957GRU 제1부국장 (쉬테멘코 체제)
- 1957–1958GRU 국장 (제2차)
- 1958–1960국방부 감찰장군단 군사고문, 이후 질병으로 퇴역
관련 역사 사건
전전 군사정보 경력, 1936–1939: 동방부와 중앙학교
샬린의 정보 경력은 대전 이전에 시작되었다. 1932년 4월 프룬제 군사아카데미 본과에 입학해 1933년 동방학부로 옮겼고, 정보총국장 우리츠키 군단장의 청원으로 예정보다 앞당겨 1936년 3월 졸업했다. 그해 3월 소령으로 군사정보 기관에 들어가 제2(동방)과에 배속되었고, 교환 협정에 따라 일본으로 파견되어 일본 제국 육군 제15보병연대에서 연수했다. 귀국 뒤 제2과 과장을 맡았고, 1937년 4월부터 1939년 4월까지 제2과 비밀공작 담당 부과장 대리, 1938년 4월부터 1939년 6월까지 정보총국 제5국의 참모지휘관 양성 중앙학교 교장을 지냈다. 1939년 2월부터 6월까지는 제5국 부국장 대리였다. 1938년 대령으로 승진했다.
이 3년 남짓 동안 그가 맡은 자리는 대일 정보 실무와 정보요원 양성이었다. 제2과는 일본·중국 등 동방 방면을 담당했고, 중앙학교는 정보총국 참모 요원을 길러내는 기관이었다. 과장, 부과장 대리, 학교 교장을 잇따라 맡은 것은 기관 안에서 그가 빠르게 신임을 얻었음을 보여준다. 1939년 6월 시베리아 군관구 참모부 제10과장으로 옮기며 정보총국을 떠났고, 1940년 7월 제16군 참모장이 된 뒤로는 종전까지 야전군 참모장으로 일했다.
일본 근무 기간에 대해서는 기록이 엇갈린다. 한 러시아 측 서술은 그가 1936–1937년에 일본에 체류했다고 하고, 다른 서술은 정보총국 근무를 1936–1938년으로 잡는다. 이 에피소드는 동료들의 기억에도 남았다. 제1근위전차군 사령관 카투코프는 그를 전쟁 전 도쿄에서 무관으로 일한 참모로 회고했는데, 이는 교환 협정에 따른 파견과 무관부 근무를 함께 가리키는 기억으로 보인다. 1941년에는 '명예의 휘장' 훈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