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 말기 '레닌그라드 사건'의 원인을 지도부의 부패에서 찾은 역사가
수시코프는 '레닌그라드 사건'의 진짜 동인이 파벌 항쟁이 아니라 레닌그라드 지도부가 비밀투표 제도를 무력화한 데 있다고 주장했다.
안드레이 수시코프는 소련 시기 당·국가 권력체계와 지역 노멘클라투라의 통치 실천을 연구해 온 러시아 역사가다. 우랄 연방관구 기록보존소를 비롯한 여러 지역의 문서고에서 발굴한 1차 자료를 바탕으로, '레닌그라드 사건'의 주된 동인이 엘리트 간 권력투쟁만이 아니라 레닌그라드 지도부의 만연한 부패와 공적 자원의 사적 유용이었다는 대안적 해석을 제시했다. 2018년 저서 『'레닌그라드 사건': '혁명의 요람'에 대한 총숙청』은 이 문제를 가장 체계적으로 다룬 연구로 평가받으며, 전후 스탈린주의 정치사 연구의 주요 논쟁점을 재구성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93–1998니즈니타길 국립사범대학 역사학부 학생
- 1998–2001러시아과학원 우랄분원 역사·고고학연구소 박사과정
- 2003역사학 후보자 학위 취득 (논문: 1957~1964년 소련공산당 중앙위 간부회 구성)
- 2003–2004니즈니타길 국립사회사범아카데미 전임강사
- 2004–2006러시아과학원 우랄분원 역사·고고학연구소 연구원
- 2007–현재러시아과학원 우랄분원 역사·고고학연구소 선임연구원
관련 역사 사건
우랄 지역 노멘클라투라와 '지방의 작은 스탈린' 연구
수시코프의 또 다른 연구축은 우랄 지역 당·국가 노멘클라투라의 일상과 통치 실천이다. 그는 소련 우랄 지역 당 관료층의 '정치적 일상'과 관리 관행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고, 2019년 저서 『동지 카바코프의 제국: 1930년대 우랄 지역 당 노멘클라투라』에서 그 성과를 집대성했다.
이 연구는 1929~1937년 스베르들롭스크주를 이끈 이반 카바코프와 그 측근을 중심으로 한다. 수시코프는 지역 문서고 자료를 근거로, 카바코프가 공석에서는 당의 노선을 지지하면서도 실제로는 친인척·지연 중심의 인사로 요직을 채우고, 스스로에 대한 개인숭배를 조장하고 후원-피후원 관계를 체계화했으며, 당·국가 재산을 사적으로 유용했다고 서술한다. 별장과 연회, 특권적 급여 체계, '검은 금고'와 차명 회사·계정을 통한 자금 세탁 등이 그 사례로 제시된다. 코노넨코는 이 책이 1937~1938년 '대테러'의 그늘에 가려졌던 지역 차원의 인사 숙청, 이른바 '간부 혁명'을 다룬다는 점을 의의로 꼽았다.
수시코프의 해석에서 지방 당 우두머리들의 부패와 자체 숭배는 스탈린 체제와 무관한 일탈이 아니라, 오히려 중앙 권력과 충돌하게 된 조건이었다. 그는 지역 '작은 스탈린'들의 횡포가 1930년대 중반 이후 국가 존속을 위협할 정도로 확산되었고, 이 때문에 지역 엘리트가 대규모로 숙청되었다고 본다. 코노넨코는 이런 정황이 스베르들롭스크만의 특수성이 아니라 여러 지역에서 관찰된 일반적 경향이었다는 점을 확인한다.
이러한 시각은 레닌그라드 사건 연구에서 그가 제시한 문제의식과 같은 계열에 있다. 즉 부패한 지역 지도부의 관리 실천을 억압의 배경으로 분석하는 관점이다. 다만 이 해석은 사료 접근의 제약과 사료 자체의 성격 때문에 논쟁적이며, 수시코프 본인도 서문에서 피고인들에게 신체적 강압이 가해졌음을 인정해, 조사 기록 일부가 자백 강요에 의한 허위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