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투안 바르나브

Antoine Barnave
푀양파 왕정·왕당파 프랑스 프랑스 1761–1793 ✕ 처형

입헌군주제를 지키려 한 푀양파의 중심 연설가

1791년 7월 15일, 국왕의 불가침성을 옹호하며 “우리는 혁명을 끝내려 하는가, 다시 시작하려 하는가”라고 물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왕정이, 평등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소유가 파괴된다고 경고했다.

제3신분 대표로 국민의회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뒤포르·라메트와 삼두파를 이루었다. 바렌 도주 뒤 입헌군주제를 지키려 푀양파를 이끌고 왕실과 비밀 교섭했으며, 왕실 문서가 발견된 뒤 반역죄로 처형됐다.

다른 이름: 앙투안 피에르 조제프 마리 바르나브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혁명기의 선택과 정치적 맥락

바르나브는 혁명 초기 특권 폐지와 국민주권의 언어를 지지했지만, 바렌 도주 뒤에는 왕정을 없애기보다 헌법 속에 묶어 두려 했다. 푀양파의 선택은 혁명에 반대하는 옛 체제로의 단순한 복귀가 아니라, 재산권과 의회 정치를 보존하면서 민중 봉기를 제한하려는 입헌적 해법이었다.

왕실과의 비밀 접촉은 그 구상이 왕의 신뢰 회복 없이는 유지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1792년 이후 전쟁·봉기·공화정의 전개는 그 중간 노선을 무너뜨렸고, 발견된 왕실 문서는 그를 반역 혐의와 연결했다. 바르나브의 처형은 혁명 초기에 가능한 듯 보였던 입헌군주제의 공간이 얼마나 빠르게 닫혔는지를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