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투안 바르나브

Antoine Barnave
프랑스 프랑스 1761–1793 ✕ 처형

입헌군주제를 지키려 한 푀양파의 중심 연설가

제3신분 대표로 국민의회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뒤포르·라메트와 삼두파를 이루었다. 바렌 도주 뒤 입헌군주제를 지키려 푀양파를 이끌고 왕실과 비밀 교섭했으며, 왕실 문서가 발견된 뒤 반역죄로 처형됐다.

혁명기의 선택과 정치적 맥락

바르나브는 혁명 초기 특권 폐지와 국민주권의 언어를 지지했지만, 바렌 도주 뒤에는 왕정을 없애기보다 헌법 속에 묶어 두려 했다. 푀양파의 선택은 혁명에 반대하는 옛 체제로의 단순한 복귀가 아니라, 재산권과 의회 정치를 보존하면서 민중 봉기를 제한하려는 입헌적 해법이었다.

왕실과의 비밀 접촉은 그 구상이 왕의 신뢰 회복 없이는 유지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1792년 이후 전쟁·봉기·공화정의 전개는 그 중간 노선을 무너뜨렸고, 발견된 왕실 문서는 그를 반역 혐의와 연결했다. 바르나브의 처형은 혁명 초기에 가능한 듯 보였던 입헌군주제의 공간이 얼마나 빠르게 닫혔는지를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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