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말기의 마지막 정규 외무장관
1988년 INF 조약 비준 청문회 직후, 베스메르트니흐는 크렘린궁 복도에서 미국 기자와 편안한 영어로 조약의 정치적 의미를 논했다. 소련 고위 관료로서는 이례적인 장면이었다.
셰바르드나제 사임 후 소련 외무장관이 된 직업외교관으로, MGIMO 졸업생 가운데 처음으로 외무부 수장에 올랐다. 워싱턴 대사관에서 13년 근무하며 미국 전문가로 성장했고, 재임 7개월 동안 START-I 조약 서명과 마드리드 중동평화회의 준비를 주도했다. 소련 외무장관 최초로 이스라엘을 방문하고 주변국과의 '우호 협력의 띠' 구상을 제시했으나, 8월 쿠데타 때 GKChP 불참과 공개 침묵으로 해임되었다. 이후 러시아 대외정책협회를 설립해 분석가로 전향했다.
경력 연표
- 1991.1–8외무장관
8월 쿠데타와 해임
1991년 8월 19일 보수파가 일으킨 쿠데타(ГКЧП) 당시, 베스메르트니흐는 국가비상사태위원회 가입을 거부했다. 그러나 공개적으로 쿠데타를 규탄하지도 않았다. 그는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외무부를 지휘하지 않았고, 3일간의 위기 내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개혁파 외무장관 셰바르드나제의 후임으로 신임받던 그에게 이는 치명적인 정치적 실책이었다. 8월 23일 쿠데타 실패 직후 고르바초프는 해임령에 서명했으나, 소련 최고회의는 이 안건을 심의하지 않았다. 그 결과 베스메르트니흐는 법적으로 1991년 11월 14일 외무부가 대외관계부로 개편될 때까지 외무장관직을 유지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실무는 보리스 판킨이 대행했고, 그의 장관 임기는 사실상 7개월 만에 끝났다. 이후 베스메르트니흐는 외교 일선에서 물러나 러시아 대외정책협회 초대 회장으로서 분석가의 길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