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희생자 수를 다시 계산한 독립 통계학자
1985년 그는 전쟁 손실을 실제 손실과 인구학적 손실로 나누어 제시했다.
보골류브 코초비치는 사라예보 출신의 세르비아계 법률가이자 통계학자로, 전후 유고슬라비아의 인구와 전쟁 손실을 분석했다. 그는 1985년 저서에서 1921년·1931년·1948년 인구조사를 비교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고슬라비아의 실제 손실을 약 101만 4천 명, 인구학적 손실을 약 198만 5천 명으로 추산했다. 그의 연구는 국가가 제시한 170만 6천 명이라는 수치와 구별되는 독립적 추계로, 전쟁 희생자 수를 둘러싼 역사논쟁의 핵심 자료가 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47–1952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 연구 조교
- 1949파리에서 법학 박사 취득
- 1956시카고 루스벨트대학교 경제학 석사 취득
- 1963–1984파리에서 미국 기업의 행정·재무 책임자로 활동
- 1985『유고슬라비아 제2차 세계대전 희생자』 출간
- 1997『과학, 민족주의와 선전』 출간
- 2005『신화의 장례』 출간
관련 역사 사건
전후 수치 논쟁과 독립 추계의 제도 밖 경로
코초비치는 제2차 세계대전기 유고슬라비아 희생자 수를 국가가 정한 수치와 다른 방식으로 처음 본격 검증한 연구자였다. 1985년 런던에서 낸 『유고슬라비아의 제2차 세계대전 희생자』에서 1921·1931·1948년 인구조사를 대조해 실제 손실 약 101만 4천 명, 인구학적 손실 약 192만 5천 명으로 추산하고 오차 범위를 25만 명으로 두었으나, 공식 수치는 170만 6천 명이었다. 그는 추계가 인구 증가율과 이주 가정에 의존한다고 명시했고, 훗날 이 가정의 타당성은 문제 제기의 대상이 되었다.
런던에서 나온 이 책은 유고슬라비아 붕괴 이전까지 본국에서 외면당하다가 1990년 사라예보에서 다시 출간되었다. 논쟁은 저자와 다른 경로에서도 벌어졌다. 수학자 블라데타 부치코비치는 1947년 희생자 산정에 참여했다고 밝히며 약 170만이라는 수치가 실제 사망자가 아니라 인구학적 손실 추계였다고 주장했고, 이 수치는 당시 외무장관 에드바르드 카르델리를 거쳐 연합국 배상위원회에 전달되었다. 코초비치는 크로아티아 인구학자 블라디미르 제르야비치의 방법과 결론을 학술적으로 타당하다고 인정했으며, 1997년 저서 『과학, 민족주의, 선전』에서는 공산주의 시기 유고슬라비아에서 통용되던 대형 희생자 수치를 복원하려는 시도를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