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년간 소련 철도를 이끈 최장수 장관
1930년대 후반, 젊은 엔지니어의 열차 편성 시간 단축 제안을 검토한 라자르 카가노비치는 이렇게 적었다: '베셰프 동지의 재능과 연구 자질을 키워줘야겠다.'
철도 전문 엔지니어 출신 최초의 소련 철도장관으로, 1948년부터 1977년까지 28년 7개월간 재임하며 소련 장관 중 최장 기간 재임 기록을 세웠다. 전후 복구를 진두지휘하여 1950년까지 철도 화물 회전율을 전쟁 전보다 45% 끌어올렸고, 이후 증기기관차에서 디젤·전기 견인으로의 역사적 전환을 주도해 철도 수송 비용을 약 3분의 1 절감했다. 재임 기간 소련 철도 화물 회전율은 8배 증가했고 2만 3,500km의 신규 간선이 건설되었으며, 56개로 분산된 철도국을 26개 대간선으로 통합했다. 바이칼-아무르 간선(BAM)의 설계·측량 작업을 재개시키고 철도 전산화와 고속 운행 실험의 선구자가 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35레닌그라드 철도운수기사 연구소 졸업, 모스크바 호브리노 역 선임기사
- 1937–1940오르조니키제 철도국장
- 1940–1941옥탸브리스카야 철도국장
- 1941–1942교통인민위원부 특별전권대표, 레닌그라드 전선 군수수송 및 대피 총괄
- 1942–1944쿠이비셰프 철도국장
- 1944–1946교통인민위원부 부인민위원 겸 운수관리국장
- 1946–1948교통부 제1차관
- 1948–1977소련 교통부 장관 (28년 7개월)
관련 역사 사건
소련 고속철도 운동의 출발 (1957~1972)
고속 운행은 베셰프가 교통부 장관으로서 가장 먼저 조직적으로 착수한 기술 과제였다. 1957년 5월 29일자 장관 명령은 모스크바-레닌그라드 구간의 속도 향상을 위한 세부 시행 계획과 기술 조치를 규정했고, 같은 해 실무 단계로 넘어가 화물열차 1,000톤을 견인한 TЭ7-001 디젤 기관차가 포크롭카-클린 구간에서 시속 134km를 기록했다. 이는 소련에서 처음 달성된 속도였다. 이후 800~900톤 화물열차를 견인한 디젤 기관차가 시속 140km까지 속도를 높였다.
1960년대에는 전기 견인으로 실험이 이어졌다. 1965년 시운전에서 ChS2형 전기 기관차가 모스크바-레닌그라드 650km를 최고 시속 160km로 4시간 59분에 주파했다. 베셰프는 1970년 A. S. 야코블레프 항공 설계국에 항공용 제트 엔진을 장착한 실험용 고속 차량 설계를 지시했고, 칼리닌 차량 공장이 이를 제작했다. 2년 뒤 드네프르 철도에서 두 량, 총중량 60톤 편성의 동역학 시험이 이루어져 시속 249km가 기록되었다. 1970년대에는 시속 140km 이상을 낼 수 있는 국산 기관차가 제작되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소련 정부는 정치적 고려에 따라 체코슬로바키아제 고속 전기 기관차를 선택했다. 베셰프가 밀어붙인 국산 고속 차량 개발 노선은 채택되지 못했고, 이는 기술 개발의 주도권을 동맹국 생산에 의존하게 만든 결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