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즈네프의 개인 조종사에서 항공원수가 된 민간항공 수장
1961년 지중해 상공, 납치된 프랑스 전투기가 브레즈네프의 Il-18기에 발포했을 때 조종간을 잡은 부가예프는 급선회로 공격을 회피했다. 착륙 후 브레즈네프는 "네 덕분에 살았다"고 말했다.
브레즈네프의 개인 조종사로 발탁되어 1970년부터 17년간 민간항공부 장관을 지내며 아에로플로트를 제트기 중심의 세계적 항공사로 성장시켰다. 1977년 항공원수로 진급하여 모든 병종을 통틀어 소련 최후의 원수 계급 보유자가 되었다.
경력 연표
- 1941–1943항공훈련대대 생도, 악튜빈스크 항공학교 교관
- 1943–1947215항공대 조종사·편대장, 당파운동 중앙참모부 임무 수행
- 1948–1957브누코보 공항 기장·교관 조종사, 아에로플로트 최초 장거리 노선 개척
- 1957–1966제235특별항공대대장, 브레즈네프 전용기 조종사
- 1966–1970민간항공부 차관, 제1차관
- 1970–1987민간항공부 장관, 아에로플로트 제트화·세계적 확장 주도
- 1987–1992국방부 감찰총감
관련 역사 사건
아에로플로트의 황금기: 부가예프 체제의 민간항공 (1970–1987)
부가예프가 1970년 5월 민간항공부 장관으로 취임했을 때 소련 민간항공은 이미 성장 궤도에 있었으나, 그가 17년간 이끄는 동안 아에로플로트는 세계 최대의 항공사로 도약했다. 그의 임기 중 핵심 사업은 항공기단의 전면적인 제트화였다. Tu-134A, Tu-154/B/M, Il-62M, Il-76, Il-86, Yak-42 등 신형 여객기와 화물기가 연이어 도입되었고, 초음속 여객기 Tu-144도 제한적으로 운항했다. 1987년 기준 아에로플로트의 항공기 등록 대수는 14,595대에 달했으며, 이 중 2,634대가 간선 여객기였다.
지상 인프라도 대대적으로 확충되었다. 하바롭스크 신공항, 카잔-2, 크라스노야르스크 예멜랴노보, 민스크-2 등 주요 공항이 신설되거나 재건축되었고, 1987년까지 총 1,300개의 범주화된 공항이 운영되었다. 1973년에는 군·민간 항공 관제를 통합한 통합항공교통관제시스템(ЕС УВД) 구축이 결정되어 유럽 지역 상공에 단계적으로 도입되었다.
부가예프의 주도로 소련은 1970년 11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 가입했고, 러시아어는 영어·프랑스어·스페인어와 함께 ICAO 공식 언어가 되었다. 또한 자동화된 항공권 예약 시스템과 항공교통관제 자동화 체계가 업계 최초로 도입되었다. 1980년에는 연간 여객 수송량 1억 명을 돌파하며 아에로플로트가 운송 실적 기준 세계 선두에 올랐고, 시베리아·극동·극북 지역의 항공 연결망도 크게 확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