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스 옙세예비치 체르토크

Борис Евсеевич Черток
소련 폴란드 1912–2011 ○ 자연사

스푸트니크의 두뇌를 설계하고 소련 우주사를 기록한 코롤료프의 대리인

1945년 5월 2일, 붉은군대 소령 보리스 체르토크는 베를린 함락 직후 독일의회 의사당 벽에 자기 이름을 써넣었다. 평생 그 순간을 '가장 행복한 성취'라 불렀다. 석 달 뒤 그는 독일의 V-2 로켓 잔해 속에서 소련 우주 프로그램의 첫 페이지를 열고 있었다.

코롤료프의 최측근 대리인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 R-7부터 스푸트니크·보스토크·소유스·미르까지 소련 우주 로켓의 유도제어 시스템을 50년간 설계했다. 사회주의노동영웅(1961)이자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정회원으로, 은퇴 후 회고록 『로켓과 사람들』 4권을 펴내 소련 우주 프로그램의 속내를 생생히 기록했으며 99세까지 집필을 이어갔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코롤료프와 함께한 반세기: 소련 우주 프로그램의 내막

체르토크는 1945년 독일 노르트하우젠에서 세르게이 코롤료프를 처음 만났다. V-2 잔해를 조사하던 두 엔지니어의 만남은 소련 우주 시대의 출발점이 되었다. 코롤료프는 체르토크의 유도제어 전문성을 즉시 알아보고 NII-88로 불러들였고, 이후 1966년 코롤료프가 사망할 때까지 체르토크는 그의 가장 신뢰받는 부수석 설계자로 남았다. R-7 대륙간탄도미사일의 유도 시스템, 스푸트니크의 무선 송신기, 보스토크 우주선의 자동 착륙 시스템. 모두 체르토크의 손을 거쳤다. 은퇴 후 그는 4권의 회고록 『로켓과 사람들』에서 이 시절을 생생히 재구성했다. 코롤료프의 카리스마와 냉혹함, 실패한 발사 직후 설계국에 감도는 침묵, 달 경쟁에서의 패배가 남긴 상처까지. 체르토크는 냉전 승리 서사에 가려졌던 소련 우주 프로그램의 내밀한 인간 드라마를 기록했다. 2002년 코롤료프 독회에서 행한 강연 「우리 우주개발, 승리와 비극」에서 그는 "우리는 우주에서 이겼지만, 지구에서는 많은 것을 잃었다"고 말했다. NASA가 그의 회고록을 영어로 번역·출판한 것은 패배한 경쟁자의 이야기라서가 아니라, 우주 시대의 탄생을 내부에서 목격한 한 과학자의 정직한 증언이었기 때문이다.

← 카드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