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 바쿠의 통제를 집행한 아르메니아계 당료
자치주는 아르메니아 공화국과 가깝지만, 높은 산으로 분리되어 있다. (1977년 국제 저널 인터뷰에서)
아제르바이잔 샤마흐 태생의 아르메니아인 당료로, 1973년 헤이다르 알리예프에 의해 나고르노-카라바흐 자치주 당 제1서기로 임명되어 1988년까지 재임했다. 카라바흐 외부 출신으로 알리예프에게 전적으로 충성하며, 지역 아르메니아인들의 민족적 요구를 억압하고 바쿠의 통제력을 강화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1977년 국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카라바흐가 '높은 산으로 아르메니아와 분리되어 있다'고 주장해 동족의 분노를 샀고, 1988년 2월 소비에트가 아르메니아 통합 결의안을 통과시키자 해임되었다. 1992년 바쿠에서 체포·투옥되었다가 1993년 알리예프의 사면으로 석방된 뒤 모스크바로 이주해 중학교 역사 교사로 일하다 1998년 사망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73–1988 정치·당 지도 · 소련
경력 연표
- 1954바쿠 시 콤소몰 강사·선전부 차장
- 1954–1961바쿠 제르진스키·나리마노프 구 콤소몰 제1서기
- 1961–1970아제르바이잔 공산당 중앙위 조직·당기관부 책임조직원·감찰관
- 1970–1973바쿠 키로프 구 당위원회 제1서기
- 1973–1988나고르노-카라바흐 자치주 당위원회 제1서기
- 1974–1989소련 최고회의 민족회의 대의원 (9~11기)
- 1988당에서 제명
- 1993–1998모스크바 중학교 역사 교사
관련 역사 사건
1988년 카라바흐 운동과의 대치
1988년 2월 나고르노-카라바흐 자치주에서 아르메니아와의 통합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공개 집회와 자치주 소비에트의 결의로 확산했다. 2월 20일, 아르메니아계 대의원 110명은 자치주를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서 아르메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이전해 달라는 결의를 만장일치로 채택했고, 아제르바이잔계 대의원들은 표결을 거부했다. 당시 자치주 당 제1서기였던 케보르코프와 아제르바이잔 공산당 제1서기 캄란 바기로프는 회의 개최를 막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토머스 드 발의 서술에 따르면 케보르코프는 결의 인증에 필요한 도장을 빼앗으려 했다. 소련 지도부가 파견한 대표단은 뒤이어 자치주 당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그를 해임하고 겐리흐 포고샨을 후임으로 임명했다. 케보르코프가 바쿠의 당 지도부에 충성하는 간부였다는 점은 지역의 통합 요구를 둘러싼 위기에서 그를 운동의 지도부와 대립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