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비스키 사건으로 물러나고 1940년 휴전을 부추긴 급진당 총리
1885년 파리의 급진당 정치인 집안에서 태어나 변호사가 되었다. 1912년 투르 시의원을 시작으로 1919년 급진사회당 하원의원과 투르 시장이 되었고, 1934년 상원의원이 되었다. 1930년 처음 각료회의 의장이 되었고, 1933년 11월 두 번째 정부를 이끌었으나 스타비스키 사건으로 1934년 1월 물러났다. 1937년 6월 블룸을 이어 인민전선 정부를 맡아 철도를 국유화해 프랑스 국철을 만들었다. 1940년 6월 레노 내각의 부의장으로 휴전 조건을 독일에 물어보자고 제안했고, 페탱 정부에 남았다가 그해 11월 미국으로 건너가 돌아오지 않았다. 1947년 궐석 재판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가 1954년 사면되었고 1963년 워싱턴에서 죽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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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1940
입법·국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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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1940
정부·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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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1940
프랑스 국가기관각료회의 의장프랑스 국가원수 · 정부 수반대표
정부·행정
경력 연표
- 1919–1925투르 시장
- 1919–1934하원의원 (앵드르에루아르, 1928년부터 루아르에셰르)
- 1924.06–1925.04내무장관
- 1930.02.21–25각료회의 의장
- 1933.11.26–1934.01.27각료회의 의장
- 1934–1940상원의원 (루아르에셰르)
- 1937.06.29–1938.03.10각료회의 의장
- 1938.04–1940.07.10각료회의 부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