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레르보 아킬레스 만네르

Kullervo Achilles Manner
핀란드 핀란드 1880–1939 ✕ 옥사

1918년 핀란드 적색혁명 정부의 수반, 이후 망명 공산당과 코민테른을 오간 혁명가

1917년 7월 만네르의 "자유로운 핀란드로!"라는 외침과 함께 에두스쿤타는 '최고권력법'을 가결했고, 방청석은 핀란드 국가로 화답했다.

핀란드의 사회주의 혁명가. 1918년 내전 당시 핀란드 인민대표단 의장으로 적색정부를 이끌었고, 패배 후 소련으로 망명하여 핀란드 공산당을 공동 창당하고 14년간 당을 이끌며 코민테른 집행위원으로 활동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17년 최고권력법과 의회 의장 시절

1917년 2월 혁명으로 러시아 제국의 지배가 약화되자, 핀란드에서는 최고 권력의 소재를 둘러싼 헌정 투쟁이 격화되었다. 같은 해 4월 사회민주당의 다수파 의회(200석 중 103석)는 만네르를 의장으로 선출했고, 6월 당 대회에서는 그를 당 의장으로 뽑았다. 7월 18일, 만네르가 주재한 의회는 이른바 '최고권력법'(발탈라키, valtalaki)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황제-대공이 행사하던 최고 권력을 외교·군사를 제외한 모든 영역에서 핀란드 의회로 이양한다는 내용으로, 사실상 주권선언에 가까운 과감한 조치였다.

그러나 볼셰비키7월 봉기가 실패로 돌아가자 러시아 임시정부는 반격에 나서 7월 31일 핀란드 의회 해산을 선언했다. 만네르는 이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해산 선언의 낭독을 거부했으며, 사민당 의원단의 만장일치 결정에 따라 8월 29일 의회를 소집했으나 러시아 헌병대가 회의장을 봉쇄했다. 이에 의원들은 귀족원 건물로 이동해 해산 무효를 결의했다. 만네르는 9월에도 재차 소집을 시도했으나 이는 상징적 제스처에 그쳤고, 10월 새 총선에서 사민당은 92석으로 다수당 지위를 상실했다.

이 패배는 만네르의 정치적 전환점이 되었다. 그는 보수파의 선거 승리를 사기로 간주하며 '만네르 의회'야말로 유일한 합법 의회라고 주장했고, 의회주의에서 혁명으로 방향을 선회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급진화의 연장선상에서 불과 석 달 뒤인 1918년 1월, 그는 적색 핀란드 정부의 수반으로서 내전에 뛰어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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