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베타의 군사 내각을 맡아 지방 군대를 조직했고 뒤에 네 차례 총리를 지낸 제3공화국 정치가
푸아의 개신교 집안에서 태어나 에콜 폴리테크니크를 나와 광산 기술자로 일했고, 남부 철도회사 운수 책임자를 지냈다. 1870년 9월 강베타에게 자원해 타른에가론 도지사가 되었고 10월 군사 내각 책임자로서 강베타가 잇달아 군대를 일으키게 한 조직력을 보였다. 그러나 현장 장군에게 작전을 지시하는 방식은 도렐 드 팔라딘과의 마찰로 쿨미에·오를레앙의 이점을 잃게 했고, 부르바키의 동부군을 무너뜨린 동부 원정에도 책임이 있었다. 1876년 상원에 들어가 철도 국유화 계획을 통과시켰고, 1879년 총리가 되어 코뮌 가담자 사면을 통과시켰다. 네 차례 총리를 지냈고 1888~1893년 민간인 전쟁장관으로 3년 복무제와 참모본부를 도입했다. 온건 공화파였다.
다른 이름: 샤를 루이 드 솔스 드 프레시네
주요 활동과 소속
- 1870–1899 정부·행정 · 프랑스 국가기관
- 1876– 입법·국가 대표 · 프랑스 국가기관
- 정치·당 지도
경력 연표
- 1858남부 철도회사 운수 책임자
- 1870–1871타른에가론 도지사, 강베타의 군사 내각 책임자
- 1876상원의원
- 1877–1879공공사업장관
- 1879–1880총리 겸 외무장관
- 1888–1893전쟁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