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 프랑수아 뒤무리에

Charles-François du Périer Dumouriez
프랑스 프랑스 1739–1823 ○ 영국에서 병사

프랑스 혁명전쟁의 장군·정치인, 1793년 오스트리아로 전향

1792년 발미와 즈마프의 승리로 혁명을 구했으나 1793년 3월 18일 네르빈덴에서 패배한 뒤 파리 진군을 기도했고, 국민공회가 보낸 위원들을 오스트리아에 인도한 뒤 전향했다. 그 전향은 지롱드파를 매장했다.

프랑스 혁명전쟁기의 장군·정치인. 왕정 시대 왕군 장교로 7년 전쟁에 참전하고 셰르부르 항만 책임자를 지냈다. 혁명 후 자코뱅 클럽에 가담했으며 지롱드파의 지지로 1792년 3월 외무장관이 되어 오스트리아에 대한 선전포고를 주도하고 잠시 육군장관을 겸했다. 루이 16세와 갈등해 사임한 뒤 북부군 사령관으로 켈레르만과 함께 발미(1792년 9월 20일)에서 프로이센군을 물리치고 즈마프(1792년 11월 6일)에서 승리했다. 1793년 3월 18일 네르빈덴에서 패배한 뒤 파리 진군과 국민공회 해산, 1791년 헌법과 입헌군주정 복고를 기도했으나 군대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오스트리아 측으로 넘어갔다. 망명 생활 끝에 영국에서 사망했고 이름은 파리 개선문에 새겨졌다.

경력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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