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프리아노 메라

Cipriano Mera Sanz
스페인 공화파 아나키스트 스페인 스페인 1897–1975 ○ 사망

카사도의 마드리드 쿠데타를 공산군의 반격에서 구한 아나키스트 제4군단장

「군복을 입는다는 생각에 소름이 끼쳤지만 다른 선택이 없었다. 이제부터 내 행동이 내 성실함을 증명할 것이다」

마드리드 출신의 벽돌공으로 CNT 건설노조를 이끌다 내전 직전 투옥되었고, 반란 발발과 함께 풀려나 과달라하라·쿠엥카에서 봉기를 진압하는 종대를 조직했다. 제14사단을 거쳐 제4군단장이 된 그는 과달라하라 전투에서 이탈리아 지원군단을 격퇴하며 공화국 진영에서 손꼽힌 아나키스트 지휘관이 되었다. 1939년 3월 네그린 정부의 공산당 의존에 반발해 카사도의 쿠데타를 지지했고, 공산군이 마드리드를 장악해 가던 순간 메라의 제4군단 예비대가 시내로 진입해 3일 만에 저항을 분쇄함으로써 전쟁의 종결 경로를 결정지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마드리드 아나르코생디칼리스트 조직자 시기

시프리아노 메라는 1897년 11월 4일 마드리드 테투안 데 라스 비토리아스에서 석공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다. 열한 살에 학교 대신 갖은 일을 하며 살림을 도왔고, 열여섯 살에 건설 노동자로 들어가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노동총동맹(UGT) 산하 석공 조합 "엘 트라바호"에 가입했다. 글을 읽고 쓸 줄 알았지만 스무 살 무렵 야간 학교에 다녔고, 1920년 무렵 UGT 계열 활동에 환멸을 느끼며 아나키스트 조직과 접촉했다. 1921년 3월 8일 에두아르도 다토 총리가 암살된 뒤로는 아나키스트 운동에 전면적으로 뛰어들었으며, 프리모 데 리베라 독재기에도 석공 조합 내부의 아나키스트 그룹의 일원으로 독재 정권에 반대하는 음모에 가담했다.

독재가 무너진 뒤 그는 마드리드에서 전국노동연맹(CNT)의 건설 부문을 조직했고 1931년 그 회장을 맡았다. 연방 방위단 조직에도 관여했으며, 1933년 부에나벤투라 두루티와 함께 사라고사 혁명위원회를 구성했다. 이 일로 체포되어 부르고스 교도소에 수감되었고 1934년 5월까지 갇혀 있었다. 1936년 여름 마드리드 건설 노동자 10만여 명을 멈춰 세운 파업을 이끌었고, 그해 7월 초 건설 파업위원회 위원들과 함께 다시 투옥되었다. 그가 총파업과 반란 음모를 오가며 쌓은 조직 경험은 이후 민병대 종대와 정규군 지휘의 바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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