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노와 함께 군수 생산을 조직한 공안위원회의 공병 장교
1763년 코트도르 도 오손에서 태어나 공병 장교가 되었고, 1790년 제헌국민의회에 도량형 통일에 관한 의견서를 냈다. 코트도르 도 선출 입법의회·국민공회 의원으로서 루이 16세의 처형에 찬성했다. 1793년 6월 지롱드파 몰락 뒤 노르망디에서 캉의 반란 당국에 체포되었다가 7월에 풀려났다. 1793년 8월 14일 공안위원회에 들어가 카르노와 함께 국방을 조직하며 군수품 공급을 맡았고, 과학자들과 손잡고 관측 기구를 전장에 들였다. 총재정부 아래 500인 회의 의원을 지냈고, 에콜 폴리테크니크 창설과 미터법 채택에 참여했다. 1808년 제국 백작이 되었고 1832년 디종에서 죽었다.
다른 이름: 프리외르 드 라 코트도르
주요 활동과 소속
-
1793–1794
프랑스 제1공화국 국가기관공안위원회 위원프랑스 국가원수 · 정부 수반대표
군사·지휘
경력 연표
- 1790제헌국민의회에 도량형 통일 의견서 제출
- 1791–1792코트도르 도 선출 입법의회 의원
- 1792국민공회 의원
- 1793.06–07캉의 반란 당국에 억류
- 1793.08.14–1794.10.06공안위원회 위원, 군수 담당
- 1795–1799500인 회의 의원
- 1808제국 백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