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이 「중상꾼」이라 부른 분트 기자에서 《프라우다》의 숙청 캠페인 필자로
키예프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나 1900년 사회민주주의 운동에 들어갔고, 1903년부터 분트에서 활동했다. 1917년 멘셰비키 성향의 신문 《덴》에서 볼셰비키를 공격해 레닌에게서 「중상꾼」이라는 비난을 들었고, 1917~1919년 분트 중앙위원을 지냈다. 1919년 볼셰비즘에 대한 판단이 틀렸다고 공개 선언한 뒤 소비에트 언론으로 옮겨 1928년 《프라우다》 편집위원이 되었고, 1934년 입당했다. 쇼스타코비치를 공격한 1936년 사설 「음악 대신 혼돈」, 파스테르나크를 겨냥한 기사 등 숙청과 캠페인 기사를 맡아 쓴 대표적인 필자였다. 대숙청과 유대인 반파시스트 위원회 사건을 모두 피했고 1965년 모스크바에서 죽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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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1919
사회운동·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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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
소련공산당·볼셰비키《프라우다》 편집위원대표
이념·선전 -
1934–
이념·선전
경력 연표
- 1903분트 가입
- 1917–1919분트 중앙위원
- 1919볼셰비즘 판단이 틀렸다고 공개 선언
- 1928《프라우다》 편집위원
- 1934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입당
- 1936.01.28사설 「음악 대신 혼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