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쯔후이

鄧子恢
중국공산당 마오주의 중국 1896–1972 ○ 사고사

합작화의 속도를 늦추려다 「전족한 여인」으로 몰린 농촌공작부장, 농가 생산 책임제의 선구자

푸젠 룽옌의 가난한 시골 선비 집안에서 태어나 일본 유학을 병으로 그만두고 교사와 점원으로 일했고, 1926년 공산당에 들어갔다. 1928년 민시에서 토지개혁을 실험해 장시 소비에트 토지 정책의 본보기를 만들었고, 루이진 정부의 재정을 맡았으며 항일전쟁 때 신4군의 주요 지도자였다. 1953년 초 당 중앙 농촌공작부장, 1954년 국무원 부총리가 되어 농업을 맡았다. 농민의 재산권을 지키며 강제 집단화에 반대했고, 1955년 합작사 확대 속도를 두고 마오와 부딪쳐 「우경 기회주의」로 비판받았다. 1962년 농가 생산 청부제를 주장했다가 다시 공격받았고 문화대혁명 때 모든 직책을 잃었으며 1972년 숨졌다. 죽은 뒤 복권되었다.

다른 이름: 등자회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