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링

丁玲
중국공산당 마오주의 중국 중국 1904.10.12.–1986 ○ 자연사

『소피 여사의 일기』에서 『태양은 쌍간강을 비춘다』까지, 옌안과 반우파 투쟁을 모두 겪은 작가

1904년 10월 12일 후난 린리에서 태어나 1928년 『소피 여사의 일기』로 이름을 얻고, 반우파 투쟁이던 1958년 당에서 제명되어 1986년 3월 4일 베이징에서 세상을 떠났다.

후난 출신으로 1928년 『소피 여사의 일기』로 신여성의 내면을 그려 이름을 얻었고, 남편 후예핀이 1931년 국민당에게 처형된 뒤 입당했다. 1936년 산베이의 홍군 지역에 도착해 마오의 환영을 받았으나 1942년 「3·8절 유감」으로 옌안의 성차별을 지적해 정풍운동에서 비판받았다. 토지개혁을 그린 『태양은 쌍간강을 비춘다』로 1951년 스탈린상을 받았고, 1957년 반우파 투쟁에서 우파로 몰려 북대황 농장에서 20년 넘게 노동했다. 1979년 복권되었다.

다른 이름: 정령 · 장빙즈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난징 구금과 ‘역사 문제’

1933년 5월 14일, 딩링은 상하이 공공조계 자택에서 국민당에 납치되었다. 마침 방문 중이던 좌익 지식인 판쯔녠도 함께 끌려갔고, 좌익 시인 잉슈런은 체포를 피하려 창문에서 뛰어내려 죽었다. 국민당 정부는 한동안 체포 사실을 부인했으며, 친구들은 그가 죽은 것으로 여겼다. 쑹칭링·차이위안페이 등이 석방을 호소했고 루쉰은 그를 기리는 시를 썼다.

그해 9월, 권유에 따라 딩링은 “오해로 체포되었고 우대를 받았으며 재판을 받은 적이 없다”는 취지의 쪽지를 썼다. 석방을 바란 것이었으나 효과가 없었다. 이 쪽지가 훗날 그에게 덧씌워진 ‘역사 문제’의 핵심이 되어, 1945년의 ‘기개 상실’, 1956년의 ‘변절 행위, 당에 대한 불충실’, 1975년의 ‘배신자, 적아 모순’ 규정으로 이어졌다. 1936년 7월 펑쉐펑의 주선으로 난징을 탈출해 상하이를 거쳐 시안으로 갔고, 그해 11월 옌안에 도착했다.

1940년 심사에서 그는 쪽지를 언급하지 않았고, 마오쩌둥이 마지막 문구를 직접 덧붙인 결론은 그를 당에 충실한 당원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1943년 정풍운동과 심간 운동 과정에서 쪽지를 처음 실토하면서 다시 문제가 되었다. 옌안 시기와 인민공화국 초기의 여러 심사는 서로 엇갈린 결론을 내렸고, 1979년에는 1975년 결론이 취소되었으나 1956년 결론은 유지되었다. 1984년 7월 14일 중국공산당 중앙조직부의 명예 회복 통지가 이를 바로잡아, 난징 구금 중 그가 당에 충실했다는 1940년 심사 결과가 옳았음을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