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전쟁장관으로 러시아 군대를 근대 상비군으로 탈바꿈시킨 대개혁의 군사 설계자
1877년 9월 13일, 플레브나 세 차례 공격 실패 후 대공과 차르가 철수를 결정하자 군사회의에서 단독으로 포위 지속을 주장했다. 그의 설득으로 전선은 유지되었고, 두 달 후 플레브나는 함락되었다.
알렉산드르 2세 치하에서 20년간(1861–1881) 전쟁장관을 지내며 러시아 제국군의 근본적 재편을 주도했다. 1874년 전군 징병제를 도입해 25년 귀족 중심 징집을 전 계급 6년 복무로 대체했고, 15개 군관구 체제·사관학교 근대화·병사 기초교육으로 군대를 근대 상비군으로 전환시켰다. 형 니콜라이 밀류틴과 함께 대개혁 시대 자유주의 관료의 전형이었으나, 체르케스인 강제이주를 '적대적 요소를 제거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라 옹호한 어두운 유산도 남겼다. 말년에는 러시아 제국 최후의 야전원수(1898)로 임명되었다.
경력 연표
- 1836–1845근위대 장교, 캅카스 전쟁 참전, 중상
- 1845–1856육군대학 교수, 『1799년 전쟁사』(5권)로 데미도프상
- 1856–1860캅카스군 주임참모, 샤밀 체포 작전 수행
- 1861–1881전쟁장관: 전군 징병제, 군관구제, 사관학교 근대화, 병사 기초교육
- 1877–1878러시아-튀르크 전쟁에서 플레브나 포위 지속 주장, 승리 견인
- 1878백작 수여, 전후 부패 조사 위원회 설치
- 1881–1912알렉산드르 3세 즉위 후 사임, 시메이즈에서 회고록 집필
- 1898제국 최후의 야전원수 진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