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르멘 미하일로비치 그비시아니

Джермен Михайлович Гвишиани
소련 그루지야 1928–2003 ○ 자연사

소련 계획과학과 서구 시스템 분석을 연결한 철학자

그의 이름 '제르멘'은 아버지가 근무했던 국가정치보안부(OGPU)의 두 수장 — 펠릭스 제르진스키뱌체슬라프 멘진스키 — 의 이름 첫 음절을 조합한 것이다.

소련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 경영 이론가. 알렉세이 코시긴의 사위로, 1965년부터 1985년까지 국가과학기술위원회(GKNT) 부의장을 지내며 소련의 과학기술 정책을 조율했다. 로마 클럽 회원이자 오스트리아 국제응용시스템분석연구소(IIASA)의 공동 설립자로서, 냉전기 소련 계획과학과 서구 시스템 분석 사이의 드문 가교 역할을 수행했다. 1976년 전연방시스템연구소(VNIISI)를 설립하여 소장을 맡았으며, 이 연구소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학문 분위기 속에서 시장 지향적 개혁 아이디어를 배양하여 페레스트로이카 시대 경제 논쟁의 산실이 되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전연방시스템연구소(VNIISI)

1976년 6월 4일, 그비시아니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GKNT)와 소련 과학아카데미 산하에 전연방시스템연구소(VNIISI)를 설립하여 1992년까지 17년간 소장을 맡았다. VNIISI는 소련의 RAND Corporation을 목표로 한 '싱크탱크'였으며, 국제응용시스템분석연구소(IIASA)의 소련 측 분원으로 기능했다. 연구소의 학문 분위기는 소련의 다른 기관들과 현저히 달랐다. 이념적 검열이 거의 없었고, 시장경제 전환을 포함한 급진적 경제 개혁 방안이 자유롭게 논의되었다. 1980년대 초 이곳에서 근무했던 예고르 가이다르는 훗날 "모스크바 국립대 경제학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세미나의 자유로움이 VNIISI에는 있었다. 그런 스타일로라면 모스크바 국립대 교수진은 즉시 해고되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VNIISI는 장기 국가발전 전략, 대규모 기술 프로젝트 관리 방법론, 글로벌 모델링을 연구했으며, 이곳에서 배양된 시장 지향적 개혁 아이디어는 훗날 페레스트로이카 시기 경제 논쟁의 핵심 자양분이 되었다. 1982년 VNIISI에서 분리된 응용자동화시스템연구소(VNIIPAS)는 IIASA와의 컴퓨터 통신망을 구축했고, 이 기반 위에 소련 최초의 인터넷 제공업체인 '소밤 텔레포트'가 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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