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 러셀 브라우더

Earl Russell Browder
미국 미국 1891–1973 ○ 자연사

공산주의는 20세기 아메리카니즘이라 선언하고, 당을 스스로 해산한 미국 공산당의 지도자

“공산주의는 20세기 아메리카니즘이다.” — 1938년 7월 4일 독립기념일 연설에서 성조기와 적기를 함께 걸며

캔자스 출신으로 15년간 미국 공산당을 이끈 얼 브라우더는 '공산주의는 20세기 아메리카니즘'을 내걸고 1944년 당을 해산하는 '브라우더리즘'을 추진했으나, 1946년 제명 후 결별했다.

경력 연표

뒤클로 서한과 추방

1944년 1월, 브라우더는 당 전국위원회에서 미국 공산당을 '공산주의정치협회'(CPA)로 전환할 것을 결의했다. 테헤란 회담 이후 미소 협력이 절정에 달한 시점에서, 그는 전후에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평화공존이 가능하며 미국 공산주의자들은 이를 지지하는 압력단체로 재편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 결정은 만장일치로 통과되었으나, 오랜 경쟁자 윌리엄 Z. 포스터와 필라델피아 조직책 샘 다시는 이에 반대하는 서한을 당 지도부에 보냈다. 브라우더는 이 서한의 유통을 극소수 간부로 제한했고, 다시는 결국 제명되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냉전이 시작되자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바람은 급변했다. 1945년 4월, 프랑스 공산당 이론지 『카이에 뒤 코뮈니슴』에 자크 뒤클로의 '미국 공산당 해산에 관하여'라는 논문이 실렸다. 그는 브라우더의 노선을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악명 높은 수정'이며 '노동계급 독자 정당의 청산'이라고 맹비난했다. 핵심은 이 논문이 포스터-다시 서한의 문장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극소수만 보았던 내부 문서였기에, 미국 공산주의자들은 이 비판이 모스크바에서 직접 기획된 것임을 즉시 알아차렸다. 소련 붕괴 후 공개된 기록에 따르면, 이 '뒤클로 서한'은 실제로 1945년 초 모스크바에서 러시아어로 작성되어 전쟁 중에 이미 작성되었으며, 일본 항복 후 프랑스어로 번역되어 뒤클로에게 출판 지시가 내려진 것이었다.

미국 공산당은 즉각 브라우더 노선을 폐기했다. 1945년 6월 그는 실권을 박탈당했고, 7월 긴급 전당대회에서 당이 재건되었으며, 포스터가 당 의장, 유진 데니스가 서기장에 취임했다. 1946년 2월, 브라우더는 경제 분석 주간지 『디스트리뷰터스 가이드』를 독자 발행하기 시작했는데, 당은 이를 심각한 당 규율 위반으로 간주했다. 1946년 2월 5일, 얼 브라우더는 미국 공산당에서 공식 제명되었다. 그는 모스크바에 복권을 호소하러 갔으나 몰로토프는 그를 만나주었을 뿐 거부했고, 대신 소련 국영출판사의 미국 대리인이라는 자리만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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