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단계 쿠바 전복 계획으로 소련에 침공의 확신을 안긴 몽구스 작전의 설계자
맥나마라가 전황 측정 지표에 적어둔 'X 인자'가 무엇이냐고 묻자, 랜스데일은 '베트남 농촌 서민들의 감정'이라고 답했다. 맥나마라는 연필로 그 항목을 지워버렸다.
미 공군 소장으로, 광고계에서 군 정보장교로 전향한 후 필리핀 훅발라합 반란 진압에서 심리전을 무기화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베트남에서는 사이공 군사임무단을 이끌며 응오딘지엠 정권을 뒷받침했고, 1962년 케네디 대통령에게 몽구스 작전의 6단계 계획을 제출해 그해 10월 쿠바 내 반란과 정권 전복을 목표로 설정했다. 이 문서는 소련이 쿠바 침공이 임박했다고 판단한 핵심 근거가 되어 쿠바 미사일 위기를 촉발한 고리 중 하나가 되었다. 지엠 축출에 반대하며 1963년 강제 전역했고, 말년에는 심리전과 대분란전의 선구자로 평가받았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41–1947육군 군사정보대 및 OSS 복무, 소령 진급
- 1947–1950미 공군 대위로 전군, 전략정보학교 교관
- 1950–1954필리핀 합동군사원조단, 훅발라합 반란 진압 심리전 지휘, 막사이사이 대선 승리 지원
- 1954–1957사이공 군사임무단장, 지엠 정권 수립 지원, 북부 가톨릭 남하 작전 주도
- 1957–1961국방부 특수작전 부차관보, 해외 대분란전 기획
- 1961–1963몽구스 작전 작전책임자, 케네디에게 6단계 쿠바 전복 계획 제출(1962.2)
- 1965–1968주사이공 미국 대사관 참사관, 대분란전 자문
- 1963공군 소장으로 강제 전역
관련 역사 사건
필리핀 시기와 후크발라합 진압, 1950~1953
랜스데일이 심리전의 방법론을 처음으로 실전에서 다듬은 곳은 필리핀이다. 1948년까지 필리핀에 남아 군 정보 체계 재건을 도운 그는 1950년 엘피디오 키리노 대통령의 요청으로 필리핀 미군 지원단에 배속되어 후크발라합 반란 진압을 지원했다. 그가 동원한 수단은 심리전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이 필리핀에서 쓴 방식이기도 한, 흡혈귀 아스왕이 밀림에 풀렸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붙잡은 반군 병사의 피를 빼낸 시신을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곳에 버려 후크발라합이 해당 지역을 버리고 물러나게 만든 사례가 대표적이다. 술루의 카믈론 반란 진압에서도 미군의 지원을 주선했으며, 필리핀 군대의 심리전과 민사 작전, 후크발라합 포로의 교화와 복귀 작업을 지원했다.
이 시기 랜스데일은 국방장관이던 라몬 막사이사이와 가까워졌고, 1953년 필리핀 대선에서 그의 선거 운동을 운영한 것으로 전해진다. 막사이사이는 1953년 12월 30일 대통령에 취임했다. 반군의 심리를 파고들어 싸움의 의지를 꺾고 주민의 지지를 얻는 방식은 이후 베트남과 쿠바에서 그가 되풀이할 처방의 원형이었으며, 반혁명 진압전의 선구자로 그를 평가하는 후대의 자리 매김도 이 시기에 근거를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