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멜리얀 미하일로비치 야로슬랍스키

Емельян Михайлович Ярославский
소련 러시아 1878–1943 ○ 위암

'소비에트의 성직자'라 불린 당의 수석 무신론자

흐루쇼프의 회고: "당내에서 야로슬랍스키를 '소비에트의 성직자'라 불렀다." 그가 내건 구호 — "종교에 대한 투쟁은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이다."

야로슬랍스키는 소비에트 반종교 정책의 최고 이데올로그로, '전투적 무신론자동맹'(1925~1943) 의장으로서 조직적 무신론 운동을 총괄했다. 1898년 RSDLP에 입당, 1917년 10월 모스크바 군사혁명위원회 위원으로 무장봉기를 이끌었고 내전기에는 모스크바 군관구 군사위원을 지냈다. 1924년부터 10년간 중앙통제위원회 당규율위원회 서기로 당내 숙청을 주도했으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를 위한 성서》 등 방대한 무신론 저작을 남겼다. 스탈린의 충실한 지지자이자 공식 당사 해석자였고, 1939년 과학아카데미 정회원이 되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전투적 무신론자동맹과 반종교 투쟁의 선봉

야로슬랍스키는 소비에트 반종교 정책의 최고 이데올로그로서 그의 이름을 역사에 각인시켰다. 1925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그는 '전투적 무신론자동맹'(Союз воинствующих безбожников)의 중앙평의회 의장을 역임했으며, 이 조직은 노동자·농민·지식인을 포괄하는 대중적 무신론 운동으로 성장하여 1930년대 초에는 회원 수가 수백만에 달했다. 동시에 그는 중앙위원회 산하 반종교위원회의 의장으로서 당의 반종교 노선을 직접 설계하고 집행했다.

그의 저작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를 위한 성서》(Библия для верующих и неверующих, 1923~1925)는 성서의 내용을 고대 신화·전설·문학의 집적물로 분석하며 소비에트 무신론 교육의 기본 교재로 자리잡았다. 《신들과 여신들은 어떻게 태어나고 살며 죽는가》(1923) 또한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국제적 영향을 미쳤다. 그가 주도한 잡지 《베즈보즈니크》(Безбожник, '무신론자')와 풍자지 《베즈보즈니 크로코딜》은 대중적 반종교 선전의 중심 매체였다.

야로슬랍스키는 '종교에 대한 투쟁은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이다'라는 구호를 정식화했으며, 1929년부터 1935년까지는 크리스마스 휴일 폐지와 크리스마스 트리 박해 운동을 주도했다. 그럼에도 1941년 독소전쟁 발발 직후에는 스탈린의 지시에 따라 《신자들이 왜 히틀러에 반대하는가》라는 논조가 사뭇 다른 글을 발표해야 했는데, 이는 전시 동원을 위해 교회와의 일시적 타협이 불가피했음을 보여준다. 그의 반종교 활동은 소비에트 체제가 종교라는 사회적 제도와 세계관에 정면으로 도전한 역사적 실험의 핵심 축이었으며, 그 유산은 오늘날까지도 첨예한 평가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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